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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KTX, 법은 완행열차"…악취 배짱 배출 이유 있었네

등록 2021-09-20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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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동의 없는 시료 채취 법적 효력 없어…법 개정 시급

고정식 포집기도 업체 동의해야 사업장 내 설치 가능

단속 공무원들 "현행 법령으론 효과적인 악취 단속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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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빛가람혁신도시 인근 축사를 대상으로 이뤄진 악취 점검 장면. 2021.09.20 (사진=나주시 제공) [email protected]

[나주=뉴시스] 이창우 기자 = 국민 생활에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는 고질적인 악취 배출 업소에 대한 단속행정이 정주여건 개선이라는 공익적 가치보다 기업의 사익을 우선시하는 관련 법령 때문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기술 발달로 '악취 포집기' 등 장비는 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관계 법령 때문에 단속 현장에서 제대로 손을 못 쓰는 경우가 속출해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일 전남 나주시에 따르면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빛가람혁신도시 악취 민원 해소를 위해 지난 3월 상습 악취배출 사업장 인근에 '고정식 악취 자동 포집기'를 설치했다.

이 장비는 1대당 1800만원으로 빛가람혁신도시와 가까운 유기질 비료생산 업체와 왕곡면 가축분뇨 처리업체 인근에 각각 1대씩 설치했다.
 
특히 빛가람혁신도시의 경우 직선거리로 3km 인근에 소재한 동물성 부산물을 이용해 비료를 제조하는 A업체에서 발생하는 초강력 악취 때문에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혁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세상 냄새가 아니다"고 표현 할 정도로 악취의 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나주시가 보다 적극적인 단속을 위해 민원 발생 시 담당 공무원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악취를 포집할 수 있는 자동 포집기를 설치했지만 허술한 법령 때문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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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전남 나주시가 악취 민원 해소를 위해 설치한 '고정식 무인 원격 악취 포집기' (사진=나주시 제공) 2021.09.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민원 발생 시 야간에 수차례 포집을 실시했지만 배출 기준치를 초과한 현장 적발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원인은 엉성한 법령 때문이다. 현재 악취방지법 등 관련법령에서는 단속 공무원이 악취 시료를 채취(포집)할 경우 반드시 사업장 대표 또는 관계자가 입회한 가운데 동의서에 서명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의서 서명이 누락된 시료 채취와 악취 측정 분석 자료는 과태료 부과와 영업정지 명령 등의 행정 처분을 위한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자체 단속 공무원들은 "고의·상습적으로 악취를 배출하는 사업장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할 경우, 강제 단속을 뒷받침하는 법령과 규정이 없어서 속수무책"이라고 하소연 하고 있다.

이러한 법의 맹점 때문에 단속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에게 '업체와 유착해서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등의 오해를 받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자체 조례 제정을 통해 강제 단속을 실시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만 조례가 상위법을 침해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실행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또 있다. 고정식 포집 장치 설치 시에도 업체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장 안에 설치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악취 민원이 빈번한 사업장과 가장 가까운 국유지 또는 시·군 소유 부지를 물색해 어렵게 설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근의 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저강도 악취와 섞일 경우 시료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단속 행정의 손길이 원활하게 미치지 못하는 심야 시간과 새벽녘에 업체들이 비료와 퇴비 혼합을 위한 교반기를 집중 가동할 경우 악취 민원이 빗발치지만 현장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원격 무인단속'을 실시해야 하지만 이 역시 업체의 '사전 동의서 서명' 없이는 포집한 시료를 행정처분을 위한 법적인 근거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단속 행정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빛가람혁신도시 주민 김모씨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혁신도시 악취 민원 해소를 위해서는 현실을 못 따라가는 낡은 법령 개정이 시급한 만큼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국회가 나서서 법령 정비를 서둘러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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