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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in워싱턴]"'정책 집행' 임명직 진출 늘려야…선출직과 순환 구조"

등록 2021-10-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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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기 메릴랜드 주행정법원 수석행정판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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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밸리=뉴시스]김난영 기자 = 박충기 메릴랜드 행정법원 수석행정판사가 지난 9월9일 헌트밸리 집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10.07.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뉴시스]김난영 특파원 = 지난해 코로나19 전 세계 확산 이후 한국인에게 메릴랜드는 어딘가 친숙한 주가 됐다. 이른바 '한국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 주지사 덕분이다.

2020년 기준 인구 617만7000여 명이 거주하는 메릴랜드. 그곳의 선출직 지도자가 한국의 사위라면, 임명직 요직에는 한인 판사가 독립적인 법원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 수석행정판사 임명…또 다른 기회였죠."

60여 명의 판사를 보유한 메릴랜드 행정법원의 수장인 박충기 수석행정판사. 그는 코로나19가 미국을 한창 강타했던 지난해 7월 호건 주지사의 임명으로 현재 자리에 올랐다.

취임 당시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한창 이뤄지던 시기로, 박 판사는 제대로 된 취임식도 치르지 못한 채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자칫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마다 정부와 사법 기관 구성이 다른 미국에서, 메릴랜드는 행정법원이 특정 기관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센트럴 패널스 제도를 채택한다. 그만큼 수석행정판사의 권한도 막강하다.

그가 가진 권한 중 하나가 소속 판사 임명권이다. 박 판사는 "취임 후 판사 일곱 명을 새로 임명했다"라며 "코로나19 때문에 일부 판사들이 은퇴 시기를 앞당겼다. 그래서 실력 있는 사람들을 선택할 공간이 넓어졌다"라고 말했다.

당시 박 판사가 임명한 일곱 명의 신임 판사 중 네 명은 비백인 소수 인종이다. 한국계 판사 한 명, 그리고 무슬림 판사 한 명과 흑인 판사 두 명이 박 판사의 임명으로 행정법원 소속이 됐다. 신임 판사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여성이었다.

법원 구성을 다양화하면 주민들의 만족도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다양한 인종을 배치하면 더욱 공정하게 보일 수 있다"라며 "행정법원을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라고 했다.

◆"동양인 싫어했던 첫 상사…소수 인종이 성공했으면"

그러면 박 판사는 왜 인종적 다양성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동양인을 싫어하는 상사를 만나서 고생을 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박 판사는 지난 1982년 미국 특허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첫 상사의 성향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쫓겨나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일을 슬쩍슬쩍 하는 나쁜 버릇이 안 생겼다"라고 그는 회고했다.

이후 내부 승진 인터뷰 과정에서도 감독관들로부터 의도적으로 특허 심사와는 관계없는 질문을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판사는 "감독관이 내게 '보수적으로 심사를 하는 것 같다'라며 '너의 철학을 알고 싶다'라고 질문하더라. 말을 잘못하면 트집을 잡으려는 의도로 보였다"라고 했다.

당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던 박 판사는 "당신은 보수적이나 진보적으로 사례에 접근할지 모르지만 나는 법을 따른다"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불쾌감이 남았다. 박 판사는 이후 1990년 특허청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때의 기억이 박 판사에게는 비백인 소수 인종의 입지를 중히 여기는 계기가 됐다. 1994년 특허청 특허심판원에서 특허행정판사 일을 시작한 그는 새로 임명된 흑인 판사가 동료로 오자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성심성의껏 도와줬다고 한다.

당시의 도움은 작지만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졌다. 박 판사는 "같은 소수 인종인 만큼 그 동료가 성공하기를 원했다"라며 "그런데 그 판사가 그때를 기억했는지, 이후 부하직원을 한국 사람으로 뽑더라"라고 설명했다.

◆"정책 '집행'은 임명직 몫…한인 진출 많아야 억울함 줄어"

이런 일련의 경험으로, 박 판사는 공직에 한인들이 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물론 최근 미국에서는 연방의회에 역대 최다인 네 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진출하는 등 한인의 입지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직을 차지하는 '선출직' 외에도 자신과 같은 '임명직' 진출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의회에서 법을 만들지는 않지만,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건 임명직"이라고 강조했다.

박 판사는 "집행을 맡는 임명직에 한인이 많이 없으면 한인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다"라며 "한국적인 문화를 아는 한인들이 임명직에 진출해야 정책 집행에도 반영이 된다"라고 역설했다. 또 "그래야만 억울한 일이 줄어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선출직과 임명직은 순환한다"라며 "선출직에 동양인이나 동양인에게 친밀감을 가진 이들이 많이 진출하면, 임명직에도 동양인을 많이 지명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임명된 이들이 정책을 올바르게 집행하면 그 결과가 다시 선거 표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박 판사는 "임명직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중요한 자리에 한인이 많이 진출하면 한인 2세들이 진출할 문도 열어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취임식 없이 일을 시작한 박 판사는 올해 6월에야 취임식을 치렀다. 그는 1년이나 지나 취임식을 치른 소감을 묻자 "실력 있는 판사들과 법원 업무의 질을 높이고 싶었다"라며 "이런 기회를 준 호건 주지사에게 정말 감사한다"라고 했다.

선출직과 임명직이 순환한다는 박 판사 본인의 말처럼 선출직 한국 사위가 한인 수석행정판사를 임명하고, 그 임명직이 다시 소수 인종 신임 판사 배출로 이어진 셈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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