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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탄소중립·미래차 전환, 속도보다 내실 챙겨야

등록 2021-10-15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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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전기차 전환 목표에 맞추기 위해 준비없이 속도만 내다보면 국내 부품산업이 무너지고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만 겪고 내실을 잃을 수 있어요. 속도에만 치중하지 말고 부품업계 사업전환, 인력양성, 전력망 구축 등을 꼼꼼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

정부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고점 대비 40% 줄이겠다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하고, 수송 부문에서 급진적인 목표치를 제시하며 업계의 근심이 깊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전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경쟁력 있는 신차를 대거 출시,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내실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계획과 실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탄소중립위원회와 관계부처는 지난 8일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전기·수소차를 450만대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완성차업계 1위 현대차그룹 역시 미래차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동화 계획을 구체화하며 적극적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소 부품업계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엔진·동력기관 등 내연기관 부품의 경우 수요가 점차 감소하면서 부품기업 4185곳(근로자 10만8000명)이 사업재편 상황에 처했고, 엔진오일·필터 등 소모품 감소로 정비업계 3만6247곳(고용인원 9만6000명)이 고용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연기관 부품업계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빅데이터·인공지능·자율주행 등 미래차 분야에서는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미래차 기술인력 수요는 2015년 9476명, 2018년 5만533명에서 2028년 8만9069명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력양성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나마 있는 인력들까지 정부 지원을 받고 주요국 업체들이 고임금을 무기로 영입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기로 충전해야 하는 전기차의 특성상 전력 확보와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 전체 자동차 대비 전기차 등록 비율이 1% 미만임에도 탈원전 정책으로 매년 여름 블랙아웃을 걱정하는 상황인 만큼 전동화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않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급격한 에너지 전환에 나서면서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부족과 가격 급등현상 등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는 중국의 일부지역에서는 전기차 충전소가 운영을 멈추는 일까지 발생했다.

전기 설비 역시 문제다. 내년부터 아파트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 개정이 이뤄졌지만 오래된 공동주택이 많은 국내 주거환경의 특성상 전기차가 늘면 30년차에 접어든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 등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공동주택 2만5132개 단지 중 15년 이상 된 주택은 1만3995개 단지(약 56%)이며, 세대별 설계용량이 3㎾ 미만으로 변압기 용량이 부족한 단지는 무려 7921곳(약 32%)에 이른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목표와 속도에 치중하느라 내실을 놓치면 안 된다. 2030년까지는 불과 9년 밖에 남지 않았고, 준비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다. 목표와 속도에 치중하기보다는 성공적인 전기차 전환과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쳐 꼼꼼하게 준비하고, 치밀하게 시행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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