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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주비행 생명체인 개도 무서웠다…'로드킬 인 더 씨어터'

등록 2021-10-27 12:58:15   최종수정 2021-10-28 19: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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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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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2021.10.27.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지구를 네 바퀴 돌며 우주 공간에서 발생할 지구 생명체의 맥박, 호흡, 체온, 생리적 반응 등 여러 데이터를 나 잡종 개 라이카가 제공한다. 나, 개는 일년 후 다시 지구로 돌아올 때, 우주선과 함께 타 버릴 거 알고 있었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우주선을 탄 생명체는 인간이 아닌 개다. 모스크바 시내의 떠돌이개였던 '라이카'다. 그 개는 지난 1957년 러시아가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졌다.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캡슐 안에서 죽었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이 탑승하기까지 개를 이용한 시험 발사가 계속됐다.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 이 라이카가 등장한다. 동물들의 속마음을 동물들의 시각을 빌어 재현한 작품. 이 연극에서 라이카는 "조금은 무서웠어.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아무도 모르잖아"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 연극은 '신파 서사'가 아니다. 동물 희생의 수혜자인 인간이 죄의식을 느끼고, 반성하도록 만드는 '빤한 이야기'가 아니다. 새끼를 낳기 위해 혹은 독립을 위해 길을 건너는 고라니, 기차길 옆 작은 집에서 울고 있는 비둘기들의 말들은 극화되지 않고, 그냥 발화될 뿐이다.

동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인터미션 포함 세 시간가량 독특한 어조로 고함치듯 대사를 내뱉는다. 이런 식의 극 전달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동물권을 생각하지 않은 관객이 자기연민에 젖어들거나, 죄의식을 해소할 수 있게 만들지 않는다.

이런 극작법은 구자혜 연출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그녀에게 동아연극상 연출상·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을 안긴 작품으로 성소수자를 톺아본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 등에서 서사보다 발화에 집중하며 화두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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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2021.10.27.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 방식은 관객이 극에 빠져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용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좀 더 냉철하게 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부제인 '동물의 고통을 인간의 극장에서 재현함에 대하여'만 봐도 이런 의도를 알 수 있다. 구 연출은 극의 이야기를 객석에 전달하기보다, 발언의 무늬를 관객의 머리에 새긴다.

특히 '로드킬 인 더 씨어터'가 공연되고 있는 장소가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점에서 이런 방식은 더 유의미하다. 명동예술극장은 전통적인 서사가 있는 드라마극이 주로 올려진 장소다. 이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에 대해 일반 관객이 기대하는 안전정인 서사가 있다.

하지만 구 연출은 서사가 파편된, 냉정한 현실 인식을 통한 투쟁극으로 명동예술극장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국립극단이 이런 성격의 작품을 자신들의 주 극장 중 하나인 명동예술극장에 올렸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구 연출이 몸 담고 있는 극단의 이름은 '여기는 당연히, 극장'(여당극). 어느 극장이든 자신들만의 인장을 새긴다는 건 이 극단의 개성이 그 만큼 특출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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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2021.10.27. (사진 =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구 연출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일부 반복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은 한번 말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동물권, 존재의 대상화 등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송곳이 돼 계속 머리와 심장을 동시에 찌른다. 

'알고리즘으로 인한 건너뛰기' '이 광고는 5초 후 스킵할 수 있다' 등 일부 유튜브 형식을 따온 장면은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센터 스트리밍서비스공연'에서부터 구 연출이 고민해온 온라인 공연에 대한 화두를 반영한 듯하다. 

배우 백우람·성수연·이리·전박찬·최순진·이상홍·이유진 등이 출연한다. 구 연출과 작업해온 배우들, 국립극단의 시즌 단원들이 빚어내는 시너지도 좋다.

전 회차에 배리어프리(무장애) 서비스를 도입한 점도 이번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특징이다. 수어통역, 한글자막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대의 생김새나 배우의 동작 등 시각정보를 설명하는 개방형 음성해설도 진행된다. 모든 존재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 연출의 태도가 반영됐다. 오는 11월14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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