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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완벽주의자의 러브레터…'프렌치 디스패치'

등록 2021-11-17 06:00:00   최종수정 2021-11-29 11: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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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

11월18일 국내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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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집요함은 때로 예술이 된다. 강박은 때로 이처럼 아름답다. 웨스 앤더슨(Wes Anderson·52) 감독의 영화는 흔히 동화같은 따뜻함으로 표현되지만, 이건 어쩌면 정확한 수사가 아니다. 그의 영화는 오차 없는 계산과 수없는 반복으로 이뤄진 장인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말하자면 완벽주의와 근성이 앤더슨 영화의 미학이다. 새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The French Dispatch)는 그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이건 누가 봐도 앤더슨의 영화다.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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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는 잡지에 관한 영화다. 배경은 20세기 중반, 프랑스 가상 도시 '블라제'. 이곳을 기반으로 제작·유통되는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는 수십년 전 미국에서 건너온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리)가 만든 주간지다. 뛰어난 기자를 한 데 모아 시대를 풍미했던 이 잡지는 편집장인 하위처 주니어의 사망과 동시에 폐간된다. 편집장과 잡지의 동반 죽음을 애도하는 차원에서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일한 위대한 기자 4인이 각각 한 편의 특종 기사를 써 마지막 호(號)를 완성한다. 영화는 그들의 기사를 영상화 한 것이고, 말하자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4편의 기사를 영화화 한 옴니버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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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그랬던 것처럼 앤더슨 감독은 이번에도 노스탤지어에 푹 빠져 있다. 온라인 기사가 대세인 시대, '프렌치 디스패치'는 종이 잡지와 그 지면을 채우기 위해 현장을 누비던 저널리스트에 대한 헌사다. 앤더슨 감독은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의 애독자로 알려졌다. 텍사스대학교 시절 룸메이트였고, 앤더슨 감독과 오랜 세월 영화를 함께 만들어온 배우 오언 윌슨은 "도서관에 가면 앤더슨은 항상 뉴요커를 읽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앤더슨 감독 역시 이 영화를 "저널리스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한다. '프렌치 디스패치' 속 기자와 그들이 쓰는 기사는 「뉴요커」의 실제 기자와 기사가 모티브가 됐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수평·수직·대칭의 미장센, 정중동(靜中動)하는 촬영 방식은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여전하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잡지에 관한 작품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는 듯, 마치 지면 레이아웃을 짜는 것처럼 구성한 화면 구도가 러닝타임 내내 인상적이다. 잡지 속 사진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숏(shot)이 있고, 특유의 색감을 더 돋보이게 하는 흑백과 컬러의 시의적절한 전환이 있으며, 위트 있는 화면 분할도 있다. 이건 분명 앤더슨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이다. 극 종반부 마치 「뉴요커」 표지에 실릴 법한 그림체의 애니메이션 시퀀스까지 보고나면 다시 한 번 앤더슨 감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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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 세계에 매료된 수많은 슈퍼스타를 볼 수 있는 것도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는 즐거움이다. 틸다 스윈턴, 에이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레아 세두, 프랜시스 맥도먼드, 티머시 섈러메이, 오언 윌슨, 빌 머리, 크리스토프 발츠, 에드워드 노턴은 영화 한 편을 홀로 책임질 수 있는 배우들이다. 러닝타임을 나눠가져야 해서 출연 분량이 많진 않아도 영화 한 편으로 이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다. 가장 빛나는 건 델 토로와 섈러메이다. 델 토로는 광기의 화가 '모세스 로젠탈러'를 특유의 카리스마로, 섈러메이는 학생운동의 리더 '제피렐리'를 산뜻함과 퇴폐미라는 상반된 매력으로 연기한다.

다만 명확한 스토리 라인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불친절해보일 수 있다. 일례로 전작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마담 D 살해'라는 명확한 사건 위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장르물이라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네 가지 이야기를 다루는데다가 대체로 다수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기승전결을 갖고 있지 않다. 또 일부 에피소드가 다루는 소재 역시 국내 관객에겐 익숙하지 않은 면이 있어 자칫 어렵게 느껴질 측면이 있다. 또 이 영화가 앤더슨 감독이 가진 매우 개인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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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프렌치 디스패치'는 웨스 앤더슨이 웨스 앤더슨에 관해 만든 영화다. 세공에 세공을 거듭하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본인을 지지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위대한 잡지로 만들었던 그 뛰어난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한 데 모아 「프렌치 디스패치」를 매월 완성해간 하위처 주니어처럼, 마지막 호에 담긴 각 기사 속 인물들처럼, 앤더슨 감독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며 그렇게 영화를 완성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프렌치 디스패치'는 앤더슨 감독이 자신에게 보내는 헌사일까. 어찌됐든 '프렌치 디스패치'가 앤더슨 영화의 정점이라는 건 분명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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