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죄와벌]'로맨스 스캠' 인출책, 범죄 전모 몰랐어도 유죄

등록 2021-11-19 10:32:23   최종수정 2021-11-19 10:52:21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국제 조직 '스캠 네트워크' 지시…인출책 역할

"조직원과 공모한 바 없다" 주장했지만 유죄

법원 "범죄 전모 몰라도 순차·암묵 공모 인정"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법원 이미지.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불상의 인물 지시를 받고 '로맨스·비즈니스 스캠' 피해자들이 송금한 돈을 인출해 전달했지만, 스캠 범행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면 스캠 조직원들과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암묵적 공모가 있었다면, 범행의 전모를 몰랐더라도 공범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A(29)씨는 불상의 인물 B씨에게 지시를 받고, 금원을 인출해 전달하는 인출책 역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국제적인 사기 조직인 '스캠 네트워크(SCAM NETWORK)' 소속 조직원으로 알려졌다.

스캠 네트워크는 일명 '로맨스 스캠' 또는 '비즈니스 스캠' 범행을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단체로 알려졌다. 로맨스 스캠 등은 타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킹하거나 허위 인적사항으로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고, 그 계정을 이용해 국내 거주 피해자들에게 무작위로 연락해 친분을 쌓고 친구나 연인 관계로 발전되면 금전을 요구하는 등의 수법으로 금원을 탈취하는 범행이다.

B씨는 지난 3월 한 피해자에게 자신을 미국 여군으로 소개한 뒤 "시리아를 떠나 부모님 고향인 한국에 살고 싶다. 달러가 들어 있는 상자를 한국으로 보내는데 통관비가 필요하다"고 속여 600만원을 송금받았고, A씨에게 이 돈을 인출해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A씨는 지시에 따라 돈을 인출해 전달한 후 일부를 교부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월에는 또 다른 피해자에게 "시카고에 거주하며 K컴퍼니에 재직 중인데, 회사로부터 보상금을 받게 됐다"며 "보상금을 받으려면 수수료가 필요한데 이를 대신 지불해 주면 보상금을 주겠다"고 속여 지난 4월 520만원을 송금받은 것을 시작으로, 총 5회에 걸쳐 5400여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 금액 중 215만원을 인출한 혐의를 받았다. 

B씨는 지난 4월 어플로 만난 피해자에게 "미국 의사인데 성남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가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자가격리를 하게 돼 코로나 방역 비용이 필요하다"고 속여 수회에 걸쳐 총 642만원을 송금받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 금액 중 240만원을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스캠 네트워크 조직원들과 공모를 한 바 없고, 피해자들이 기망을 당해 송금한 돈을 인출한 바도 없는 등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A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편취금 600만원을 배상신청인에게 돌려주라는 명령도 내렸다.

송 부장판사는 A씨와 스캠 네트워크 사이 공모 관계를 인정하며 "체계적·조직적인 범죄는 범행에 가담하는 자들 또한 순차적인 공모를 통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른 일부 기능만을 담당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반드시 범행의 실체와 전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만 그 공동정범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범죄 실행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공범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건 로맨스 스캠 등 범행은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으로서 그 죄질과 범정이 매우 좋지 않다"며 "이 사건 피해금액이 총합계 7000만원을 상회해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