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 연예일반

정은혜, 美 재즈레이블서 '놀다'…"판소리, 새로운 영감 줬죠"

등록 2021-12-03 14:57:00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최근 신작 '놀다' 호평…ESP-Disk 레이블 발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재즈 피아니스트 정은혜. 2021.11.30. (사진 = 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재즈 피아니스트 정은혜(35)의 연주에선 판소리 성음(聲音)이 들린다.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손가락이 아닌 몸으로 연기를 해내는 듯한 연주. 50분여의 즉흥 피아노 독주를 담은 그녀의 신작 '놀다(NOLDA)'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증명한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재즈 명가 'ESP-Disk' 레이블을 통해 나온 음반이다.

최근 충무로에서 만난 정은혜는 "판소리 성음엔 뜻과 맛이 동시에 담겼고, 그 성음이 짙다는 건 서사에 맞는 감정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이라면서 "그 부분에 대한 고찰이 연주에 새로운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미국 재즈 트레일의 펠리페 프리아타스는 '놀다' 타이틀곡 '루티드'에 대해 "판소리 미학의 특징으로 보이는 동적 신체성과, 극적인 발성·타악 특성에서 비롯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며 국악적 원형을 발견하기도 했다.

정은혜는 2009년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피아노와 영화음악을 공부했다. 2011년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국악의 매력에 빠졌다. 서양 학제에서 배우기 힘들었던, 개인 감정에 '서브텍스트(Subtext)'를 포함시키는 방법을 감각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버클리에 사물놀이 동아리 '시김새'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불협화음적인 음을 덩어리 식으로 소리내는 건, 배음(倍音)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내장 기관을 비롯해 몸의 여러 부분을 다양하게 건드리면서 거칠게 나오는 판소리가 피를 끓는 감동을 주는 동시에 숭고함까지 차용하는 이유죠."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재즈 피아니스트 정은혜. 2021.11.30. (사진 = 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은 정은혜의 화두인 '뿌리 찾기'와도 연결된다.

"항상 '나는 누군가'에 대한 존재론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엔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관심사가 저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통시적인 관점'으로 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시간적 문화적 특성이 저를 이룬다는 생각에 고대적인 흐름을 좇아가게 된 거죠. 제 뿌리가 든든해야 어떤 음악적 선택을 해도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음악 스승을 찾아 나선 이유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 멤버인 전통 타악연주가 김동원을 직접 찾아 만났다. 2010년대 후반엔 배일동 명창을 사사했다. 작년에 정은혜가 발매한 앨범 '존재들의 부딪힘, 치다'에 배일동과 함께 첼리스트 지박, 드러머 서수진도 참여했다. 이 역시 명반으로 꼽혔다.

그럼에도 정은혜는 지난해까지 작업 방식과 형식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아이슬란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비요크, '현대 재즈의 거장' 로스코 미첼 등 다양하게 음악을 들으며 앙상블 구성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응축된 무엇을 한 악기로 표현을 해보자는 생각"을 한 뒤 이번 음반을 발매했다.

지난달 20일 JCC 아트센터에서 들려준 즉흥 솔로 피아노 연주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었다. 정은혜는 "인위성이 없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존재를 드러내는 걸 추구하다보니까, 연주도 그렇게 되더라"고 설명했다.

정은혜는 전통음악을 존중하는 동시에 현대예술을 사랑한다. "예술과 철학을 담는 동시에 사회와 인간에 대해 굉장히 본질적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껴안은 전설의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인 셀로니어스 몽크를 듣고 "재즈가 해볼 만하다고 느껴진" 이유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재즈 피아니스트 정은혜. 2021.11.30. (사진 = 본인 제공) [email protected]
"현대예술에서 이상적인 충격은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정과 의미를 실어 구성해나가는 것이더라고요. 서양 미술에서는 그림 재현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잖아요. 자신의 몸·마음·의식이 매개가 돼 그대로를 체험하려고 하고, 제가 원하는 음악 역시 그런 방향이에요."

정은혜는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최근엔 건축에 흥미가 생겼다. "다앙한 영역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싶어요. 제가 음악만 이야기하면 생경하거나 한정적일 수 있잖아요.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많은 분들과 더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정은혜는 17일 부암동 쌀롱 드 무지끄에서 소규모 공연을 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