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등록 2022-03-19 06:00:00   최종수정 2022-03-19 08:10:08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지아의 와인 항아리 ‘크베브리’. (사진=조지아관광청 제공) 2022.03.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과학자들은 인류의 유전자에 알코올분해 효소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를 대략 1천만년 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의 위나 식도, 혓바닥 등에서 발견되는 ADH4라 불리는 알코올 분해요소는 진화론적으로 같은 줄기에 있는 다른 수십종의 포유류와 영장류에서도 발견된다.

잘 익거나 너무 익어 쉰 과일에는 0.6%에서 맥주의 도수와 비슷한 4.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농도의 알코올이 포함돼 있다. 우리의 선조인 영장류는 우연히 땅에 떨어진 과일이 자연 발효되어 술이 된 것을 마시거나 아니면 알코올이 포함된 자연상태의 과일을 섭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알코올을 접했을 것이다.

인류가 술을 인공적으로 처음 양조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9000년전쯤이다. 2005년 미국과 중국의 공동 연구팀이 중국 후난성에서 9000년전의 토기 그릇에 남아 있는 알코올성분을 추출해 인류 최초의 술이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를 찾았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술은 요즘으로 봐도 상당히 고급 재료인 쌀과 꿀을 사용했다.

와인의 역사는 그것보다 1000년 정도 늦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과 조지아 국립박물관의 공동 조사팀은 2017년 중앙아시아의 조지아 지역에서 8000년전에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한 흔적을 찾았다.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와인 양조용 토기 ‘크베브리’와 양조장 터를 분석한 결과 그 당시 재배한 포도의 품종과 와인의 종류도 추정할 수 있었다. 양조에는 ‘비티스 비니페라’라는 포도 품종의 줄기와 포도를 껍질째 넣었는데, 지금의 오렌지 와인 양조 방식과 흡사하다.

현재까지 액체 상태로 용기에 보관된 채로 발견된 와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67년 독일의 슈파이어(Speyer) 지역의 고대 로마 시대 귀족 무덤에서 출토된 1700년 된 와인이다. 이 레드 와인은 병속에 온전히 봉인된 상태로 발견됐다. 와인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병 안에 허브, 송진, 올리브유를 두껍게 채워 넣고 병의 입구는 밀랍을 녹여 공기를 차단했다. 서기 325~350년 사이에 만들어진 1.5리터 크기의 와인병은 그 당시에는 매우 드문 투명 유리로 만들어졌다. 병의 어깨 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내용물은 2/3정도 남아 있었다. 150년 전 발굴된 이래 미개봉 상태로 현재 슈파이어의 팔츠 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그런데 이 와인은 마실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미생물에 의해 부패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먹는데 지장은 없겠지만, 맛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2010년 독일 함부르크 연안의 400m 해저에 가라앉는 난파선에서 1600년대 후반에 생산돼 350년간 잘 보존된 14병의 레드 와인이 발견되기도 했다. 생산지는 보르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중 2병은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각각 3500만원과 4500만원 정도에 팔렸다. 이 와인은 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직 풍미가 살아 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해에는 1821년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중이던 나폴레옹을 위해 생산됐으나 그의 사망으로 남아있던 남아공의 200년 된 그랑 콩스탕스 와인이 경매에서 3500만원 정도에 낙찰됐다. 2018년 미국 뉴저지에 있는 독립기념박물관 보수 공사에서 2대 아담스 대통령의 취임식 선물로 보내졌던 200년이 넘은 1796년산 마데이라 와인이 발견되기도 했다.

생산 후 수십년이 지나도 마실 수 있는 와인은 전체 생산량의 5~10%를 넘지 않는다. 와인은 1년 이내에 마시는 것이 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해 생산된 와인은 다음해 와인이 생산되기 전까지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위의 사례처럼 특정 빈티지나 품종, 보관 상태에 따라 100년을 넘어도 마실 수 있는 와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급 와인일지라도 30~40년을 정점으로 맛과 풍미가 점차 퇴화하면서 식초로 변한다.

오래된 것이 좋은 경우도 많지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와인도 그렇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