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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어느 북한영화 연구자의 발자취, ‘남북한 영화의 풍경’

등록 2022-12-02 14:03:58   최종수정 2022-12-02 14: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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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북한 영화의 풍경 (사진=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 제공) 2022.11.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해방기 영화운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쓸 때였다. 38선 이북 지역의 영화 활동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해 당시 광화문우체국 6층에 자리한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를 종종 찾았다. 자주 그곳을 들르다보니 익숙한 얼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같은 영화연구자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몇번이나 마주쳤던 이가 북한영화 연구자로 이름이 알려진 이명자 선생이었다. 이 무렵 이명자 선생은 ‘북한영화의 근대성’(역락, 2005)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북한영화 전문가로 주목받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꽤 흘러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러나 동국대학교 출신인 이명자 선생이 한양대에 와서 내 논문 지도교수인 정태수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안부를 묻고, 정 선생님이 이끌던 ‘남북한비교영화사’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던 일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석사논문을 다 쓰고 나서도 한동안 북한자료실에서 자료를 찾았다. 북한영화로 석사논문을 쓴, 지금은 한국영상자료원에 근무하고 있는 김승경과 함께 북한에서 발행한 ‘문학신문’의 영화 관련 자료들을 찾아 그것을 타이핑하던 것이 그때 우리의 주된 일이었다. 북한영화 관련 자료가 드물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도 한두 번 이곳을 들렀던 이명자 선생을 만났던 것 같다.

이명자 선생과 얼굴을 익힌 후 그 당시 내가 간사로 있던, 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에서 발행하던 학술지 ‘현대영화연구’에 논문을 투고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받아 실은 논문이 ‘통일주제 북한영화의 변화: ‘우물집 녀인’ 읽기’이다. 그 후에도 이명자 선생은 뛰어나고 부지런한 북한영화 연구자로 다수의 저작들을 발표했고, 부족한 북한영화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몇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2014년 겨울이었다. 여느 때처럼 무심히 메일함을 열었는데 한국영화학회에서 보낸 부고가 있었다. 뜻밖에도 이명자 본인상이였다. 메일 내용을 몇번이나 읽었음에도 이명자 선생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한동안 그의 죽음이 마치 나의 죽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후에 알게 됐지만 그는 오랜 지병이 있었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자료를 앞에 두고 손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유고작이 된 ‘신문·잡지·광고로 보는 남북한의 영화·연극·방송’(2014)을 볼 때마다 힘들게 자료를 읽고 타이핑을 하며 극심한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면 다행이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즈음 북한영화에 관한 논문을 쓰며 이명자 선생의 책을 찾아보고 있다. 북한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보이는 글을 볼 때마다 그의 성실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어 반갑다. 그의 사후 한국영화학회에서는 이명자 선생이 생전에 발표한 논문을 모아 추모의 책 ‘남북한 영화의 풍경’(한국영화학회, 2018)을 발행했다. 이 책은 그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선후배 연구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담은 것이다. 이렇게 학회 차원에서 그와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 책을 만들어 그를 기억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을 보며, 2022년 초겨울에도 북한영화 연구자 이명자 선생을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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