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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진료기록으로 낙인 찍는 사회

등록 2015-06-09 08:53:27   최종수정 2016-12-28 1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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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한정선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고를 일으킨 최모(23)씨는 과거 입대 전 우울증 등의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 수사단이 이런 사실을 발표했고, 언론은 일제히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24일 독일의 저비용 항공사 저먼윙스 여객기가 알프스 산악 지역에 추락해 탑승자 150여 명 전원이 사망한 가운데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의 정신병력 또한 언론을 통해 앞다퉈 다뤄졌다.

 루비츠가 심각한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는 사실이 회자됐고, 심지어 해외언론에서도 ‘우울증 환자에게 비행기를 몰게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왕립정신과협회장 시몬 웨슬리는 이런 여론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조종사 몇 명을 치료해왔고, 회복한 뒤 여전히 상태를 지켜보고 있는데 몇 명은 성공적으로 업무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다고 뭐든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팔이 부러졌던 사람이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고 주장했다. 우울증 병력이 낙인처럼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발병할 수 있고, 치료하면 되는 것이지 단지 질환이 과거에 발생했다고 해서 배척하고 업무 복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조종은 허용돼선 안 된다”면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항공기 조종을 허락하는 일은 더는 발생해서는 안 될 규정상 허점이다”고 선을 그었다.

 가디언은 영국 민간항공국 조사를 인용해 현재 민간 조종사 100명이 우울증 병력이 있으며, 이 중 42명은 현재도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신과 진료기록만으로 정신질환자 낙인이 찍히는 상황은 국내에서 더욱 심각하다.

 국내에서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보험 가입이 거절되기도 한다. 가벼운 정신질환인 불면증의 경우에도 국내에서는 치료 기간이 3개월 미만으로 일시적이고, 치료가 종료한 지 1년이 넘어야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다. 이와 달리 외국은 불면증 여부가 보험가입 인수 기준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앞서 지난 2011년 ‘장애유형별 보험차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연구’에서 “국내의 경우 정신질환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최대한 보험 가입에 부정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는 “‘정신과 진료는 실비 보험 보장을 받지 못한다더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일반 환자는 정신과 진료가 진짜 안 좋은 것이라고 느끼게 되고, 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그는 “실제 젊은 환자 중 취직이나 진로에 대해 걱정될 경우 본인이나 보호자가 건강보험에 기록이 남지 않도록 비보험 진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은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1위 국가다. 유엔이 지난 4월23일 발표한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58개국 중 47번째로 행복한 나라다. 자살률이 높고, 행복지수가 높지 않은데 정신과 체감 문턱은 높은 것이다.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으면 기록이 남는다는 공포를 막기 위해 정부는 2013년 4월부터 불안증 등 가벼운 정신질환 진료는 기존 정신과 질환 코드인 ‘F’대신 보건일반상담 코드인 ‘Z’로 청구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불면증으로 인해 수면제를 처방받으려고 해도 F 코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정신과 진료 병력이 있다는 사실로 보험가입과 관련 차별이 없도록 하는 ‘정신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복지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게다가 특정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수사기관과 언론이 피의자의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앞다퉈 다루는 것은 자칫 인권 침해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진료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교수는 “충동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사건을 저지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다는 것만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진료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30년부터 우울증이 고소득 국가 질병 부담 1위 질환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2년 정신과 내원 일수는 1080만 건으로 2013년에는 1100만 건, 지난해에는 1115만 건으로 증가해왔다. 총진료비 또한 2012년 4969억여원에서 2013년에는 5139억여원, 지난해에는 5327억여원으로 늘어났다.

 조 교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문제를 만든다”며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정신과 진료 여부를 문제 삼고,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암 같은 병이니 차별을 없애자면서도 민간보험 가입 거부의 이유가 되는 현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돕는 센터에서 일했던 의사가 학생들에게 ‘진료받아 기록 남는 것이 불이익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이력서에 쓴다’는 대답을 들었다”면서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잘 극복하면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다. 어떻게 극복을 했으며, 어떤 도움을 주면 숨겨진 능력을 더 많이 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 등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js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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