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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③]‘면세점 상실’…재벌도 당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등록 2015-12-09 13:45:54   최종수정 2016-12-28 1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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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 신천동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석촌호수 음악분수’ 조감도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1. 최근 세칭 핫 플레이스인 서울 XX동에서 소동이 빚어졌다. 한 가게 앞에서 두 무리가 맞붙은 것.

 한쪽은 사람들이 팔짱을 낀 채 인간 띠를 만들어 진입하려는 사람들을 막으려 하고, 한쪽은 법원 영장을 앞세워 밀고 들어가려 하고….

 막는 쪽은 이 가게 주인인 세입자 K씨와 그의 지인들, 그를 돕는 영세 자영업자 단체 회원들이었다. 들어가려는 쪽은 법원 집달관과 건물주 T씨가 동원한 용역들이었다.

 양측이 이날 이처럼 사투를 벌인 것은 ‘명도’ 탓이다

. 5년 전 이 지역이 뜨기 전부터 치킨집을 운영해온 K씨는 최근 내국인은 물론 중국인 관광객까지 몰리며 이 지역이 뜨자 건물주로부터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커피숍을 임대하기 위해서다.

 이 지역 바닥 권리금은 2억~3억원을 호가한다. 그러나 건물주는 바닥 권리금은커녕 K씨가 전 세입자에게 준 권리금 5000만원마저도 자신은 모르는 얘기니 물어줄 수 없다고 해 갈등이 불거졌다.

 아무리 결사 항전해 봐도 명도소송에서 이미 패한 K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일. 결국 거리로 나앉고 말았다. 

#2. 서울 W동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Z씨. 한류 열풍을 타고 최근 유커(중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장사가 될 때쯤 계약 기간 종료가 임박했다.

 그는 적잖은 돈을 들여 가게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상품 구색을 바꾸는 등 ‘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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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지난 11월4일 서울 신천동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2015.11.04.  photocdj@newsis.com
 주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청한 Z씨. 물론 가게를 노리는 경쟁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그간 한참 동안 ‘맨땅에서 헤딩’하면서 시간과 돈을 들여 지금의 가게 아니 동네를 일궜으니 주인이 그래도 자신과 계약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주인은 그를 철저히 외면한 채 경쟁자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그는 6개월 뒤 지금 가게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권리금은 한 푼도 못 받은 것은 물론 팔지 못한 상품들, Z씨만 믿고 일한 직원들과 함께다. 애써 새로 꾸민 인테리어도 모두 뜯겨나가게 됐다. 주인은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유예기간을 뒀다”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위의 두 사례 모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사건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됐던 지역이 사람이 몰려 번성하자 임대료가 오르고, 낮은 임대료에 의지해 살던 원주민과 임차인이 밀려나는 사태를 말한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종로구 삼청동과 북촌, 용산구 경리단길, 마포구 홍대 앞과 연남동 등 요즘 서울의 핫 플레이스마다 불거지며 사회 문제가 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절대다수 ‘흙수저’는 위의 사례에서 건물주 T나 주인의 ‘갑질’에 공분하며, K씨나 Z씨를 편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주인이 정부(관세청), Z씨가 서울 신천동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나 서울 광장동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 해당 지역이 유커 덕에 한창 뜨고 있는 서울 시내 면세점 업계라면….

◇젠트리피케이션, 골목상권 영세 자영업에만 해당할까

 지난달 14일 정부는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로 두산과 신세계DF를 호명했다. 그 결과 27년을 영업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23년을 운영한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이 특허권을 잃게 됐다.

 이들은 권리금을 하나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투자비를 죄다 날리게 됐다. 또한 이미 사입했거나 주문한 상품의 재고 처리 문제, 임직원 고용 문제, 현 면세점 공간 용도 변경 문제까지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할 짐만 잔뜩 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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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민호 기자 = 연도별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옛 잠실점) 매출 (1989~2014) minho@newsis.com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워커힐면세점은 각각 1989년 1월과 1993년 개점했다. 당시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시기여서 외국인 관광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면세점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롯데면세점 잠실점이라는 이름으로 개점한 첫해 매출액은 321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다 2004년 일본에서 배용준·최지우가 주연한 KBS 2TV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히트,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서서히 나아졌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경우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오면서 매출이 2003년 1192억원에서 2004년 1448억원으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2008년 1767억원에서 2009년 2053억원으로 급증한 뒤, 계속 올랐다.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는 듯했으나 때마침 경제성장으로 부를 일구고, 한류 열풍에 흠뻑 취하기 시작한 유커가 바통을 이어받아 2013년 3355억원, 지난해 마침내 4821억원을 기록했다.

 내국인 출국자가 국내 면세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한도는 미화 3000달러(약 353만원), 이 중 국내로 반입할 수 있는 액수는 600달러(약 71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400달러에서 올해 초 200달러 오른 덕이다. 이처럼 허용액이 극히 미미하므로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 덕에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약 14~18년, 워커힐면세점은 약 10~14년 동안 관광 불모지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끌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온 셈이다.

 특히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있는 잠실 일대나 워커힐면세점이 자리한 동서울 일대는 서울에서도 외곽이나 다름없다. 명동, 동대문, 경복궁, 덕수궁, 삼청동 등 관광목적지가 즐비한 도심과 다르다.

 롯데호텔월드와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W호텔 서울과 유서 깊은 외국인 관광객 전용 카지노인 ‘파라다이스 카지노’(워커힐면세점) 등이 전부다.

 결국 두 면세점이 오랜 기다림 끝에 그토록 고대하던 외국인 관광객 무리를 맞아 과거 투자했던 목돈을 조금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후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알려졌고, 너도나도 “숟가락 좀 얹자”면서 덤벼드는 형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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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 광장동 워커힐 면세점 외부 모습.  (사진=뉴시스DB)
 여기에 일부 정치인이 가세해 들인 시간, 비용, 노력을 모두 도외시한 채 “재벌 특혜”라는 프레임에 두 면세점을 가둬둔 채 맹공을 퍼부어 세계에 유례없는 ‘5년 시한부 특허제도’라는 족쇄를 채워버렸다.

 결국 두 면세점은 오랫동안 쫄쫄 굶은 채 열심히 재주를 부리다 겨우 먹고살 만해지니 쓸개까지 빼앗기게 된 곰 처지가 된 셈이다.

◇관광상품 잃게 된 관광한국

 두 면세점은 장사할 기회를 잃었지만, 한국은 좋은 관광상품을 상실할 지경에 놓였다.

 실제 워커힐면세점은 특급호텔 2개, 카지노, 그리고 면세점으로 이뤄지는 복합리조트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면세점이 사라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은 호텔에서 묵고, 카지노를 한 뒤 대박을 터뜨려도 쇼핑을 일부러 다른 곳에 가서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마카오 ‘베네시안 마카오’ 등 복합리조트처럼 카지노 앞에 명품관을 갖춰놓고 큰손들과 그 아내들을 유혹하는 일이 어려워진 셈이다.

 SK네트웍스는 워커힐면세점이 서울 시내 6개 면세점 중 매출(2014년 2700억원)이 가장 낮다는 지적에 지난해부터 800억원대 자금을 투입해 면세점을 리뉴얼, 올해 말까지 매장 면적을 2.5배 규모(1만2384㎡)로 확대하고, 관람차·분수쇼 등 새로운 랜드마크를 들일 계획이었는데 중단할 처지에 놓였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롯데그룹은 내년 하반기에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하는 데 맞춰 타워에 초고층(해발 414m) 6성급 호텔을 오픈하고, 석촌호수에 123m 음악 분수를 만드는 등 이 일대를 세계 유일의 ‘관광쇼핑 복합단지 면세점’으로 재탄생시켜 2020년 매출액 1조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려 했다. 그러니 뜬구름만 잡은 셈이 돼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대학교수는 “특정 사업자가 이른바 대박 사업을 계속 영위하는 것이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일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그간 벌인 노력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은 채 국민감정에 편승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라며 등을 떠미는 것은 골목상권에서 벌어지는 갑질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들은 물론 기존 신라면세점까지 모든 사업자가 불과 5년 뒤에 이러한 처지에 놓일 수 있어 투자를 그만큼 소극적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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