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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6년째…‘열린 감옥’에 사는 사람들

등록 2016-03-15 09:39:10   최종수정 2016-12-28 16: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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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혁명위원·AP/뉴시스】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돼 수개월째 고립된 반군점령 마을 마다야에서 기아사태가 발생하면서 한 소년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사진은 현지 조직인 혁명위원회가 AP에 제공한 것이다. 다마스쿠스에서 북서쪽으로 25㎞, 레바논과의 국경으로부터 불과 11㎞ 떨어진 마다야는 지난해 7월 초부터 시리아 정부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에 포위돼 고립됐었다. 마다야에 인도적 지원품이 전달된 것은 지난해 10월이 마지막이었다. 시리아 정부는 7일(현지시간) 마다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반입에 동의했다고 유엔이 밝혔다.2016.01.08
【서울=뉴시스】강지혜 기자 = “우리 마을에 갓 태어난 여자 아기가 있었는데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곧 죽고 말았어요. 이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마을을 떠나 다마스쿠스 병원으로 옮겨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라얄, 고우타 동부 지역 거주)

 “폭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해요. 두려움에 떨다가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적십니다. 폭격에 맞아 목숨을 잃은 아이도 4명이나 봤어요. 팔 다리를 잃은 아이도 여럿이에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에요.” (하산, 데이르에조르 거주)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6년째에 접어들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인도주의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4개월에 한 번 꼴로 결의안을 통과했지만 봉쇄 지역의 상황은 나날이 악화됐다.

 이곳 주민들은 검문소에 가로막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모든 물자와 사람의 통행이 차단돼 식량, 의약품, 불을 땔 연료가 바닥났다. 병원과 학교와 같은 기본 시설도 파괴됐다.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지난해 말,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마다야 주민 사진이 공개되면서 ‘봉쇄 지역’이 집중 조명되기 시작했다.

 봉쇄 지역은 ▲무장 인력이 포위했고 ▲인도주의적 지원이 정기적으로 민간인과 환자, 부상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주민들이 해당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을 의미한다. 봉쇄 지역에 갇힌 시리아 주민 숫자는 지난 1년간 2배 가까이 늘었다. 유엔은 현재 시리아 내 봉쇄 지역 18곳에 주민 48만6700여 명이 갇혀있다고 추정한다. 15곳은 정부군이 포위했고 2곳은 반정부군, 1곳은 테러 단체 ‘이슬람 국가’(IS)가 둘러싸고 있다.

 ‘국제적시리아지원그룹(ISSG)’을 이끄는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달 27일 자정을 기점으로 시리아 전역에서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휴전에 돌입하기로 합의했다. 유엔과 국제 기구는 시리아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최우선에 두자는 ISSG의 합의에 따라 봉쇄 지역에 식량과 의약품 등 긴급 구호품을 추가 지원했다. 그러나 필요한 수준에 한참 못 미쳤고 일부 물품은 아예 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국제 구호개발 비영리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시리아 봉쇄 지역 주민을 소규모로 집단 인터뷰한 포커스그룹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8일(현지시간) 발간했다. 봉쇄 지역에 사는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 의사, 간호사, 교사 등 모두 126명의 주민을 22개 그룹으로 나눠 심층 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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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야=신화/뉴시스】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이 장기화하면서 고립돼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던 마다야에서 주민들이 유엔과 국제적십자사의 구호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있는 가운데 아이를 안은 한 어머니가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16.01.12
 ◇ 테이블 1개, 거즈 몇 개로 수술…마취약, 진통제 없이 하기도

 “우리 엄마는 2~3개월 동안 심하게 아팠어요. 심장병을 앓고 있었거든요. 우리는 포위됐고 엄마를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어요. 엄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됐어요….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쉬었으면 좋겠어요.” (자나, 10대 소녀, 데이르에조르 거주)

 다른 곳이었다면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 봉쇄 지역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면담에 참여한 주민들은 병원과 의료 시설에 총탄이 빈번하게 날아들고 의약품은 반입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환자가 봉쇄 지역 검문소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한 여성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들을 다른 마을의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검문소에서 제지당했다. 검문소에서 5시간을 기다린 뒤 들은 대답은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치료를 받지 못한 아기는 오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의사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역부족이다. 전깃불이 없어서 촛불에 의지해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엑스레이와 산소 탱크는 일체 쓸 수 없다. 환자 가족은 누군가가 버린 담요로 오래된 수술 도구를 닦거나 낡은 천을 붕대 대신 사용한다.

 기본적인 의약품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마취약과 진통제가 턱없이 부족하고 심장병과 당뇨 등 만성 질환을 치료하는 약도 없다. 수술 도구를 소독하지 않고 사용하는 일은 다반사다. 사용 기한이 지났더라도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약이 있으면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면역력이 약한 5세 미만 아이들은 설사병에 힘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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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야=신화/뉴시스】유엔과 국제적십자사의 구호식량을 실은 트럭들이 11일(현지시간) 시리아 마다야로 향하고 있다. 이날 국제기구들은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으로 인해 장기간 고립돼 아사자가 속출했던 마다야 등 3곳에 긴급 구호식량을 전달했다. 2016.01.12
 ◇ 먹을 것 없어 잡초 뜯어 먹고…구호 식량도 제대로 지원 안 돼

 “우리 가족은 음식이 없을 때마다 잡초를 뜯어 먹었어요. 아이들에게는 식용 풀이라고 거짓말했지요. 당연히 그 풀은 먹을 수 없는 것이었어요. 애들이 의심할 때마다 내가 먼저 잡초를 뜯어먹으면서 설득했어요. 날이 갈수록 살이 빠지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하산, 데이르에조르 거주)

 봉쇄 지역 아이들은 단 몇 ㎞ 밖으로 나가지 못해 기아에 시달린다. 심층 면담에 참여한 대부분 주민은 지역이 봉쇄된 이후 하루에 3끼 이상 먹던 식사를 1~2끼로 줄여야 했고,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양도 적으며 영양도 부실하다고 전했다. 하루에 한 끼조차 못 먹는 날도 빈번했다. 아이들은 육류와 과일, 야채를 먹지 못해 비타민과 무기물이 항상 결핍돼 있다. 교사들은 수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기절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식료품 값도 비정상적으로 올랐다. 지난 1월 마다야 시장의 쌀과 밀은 1㎏에 200달러(약 24만 원)였다. 분유를 탄 우유는 100g에 31달러를 받았다. 홈스 북부 지역의 빵 한 묶음은 1.25달러였다. 포위되지 않은 시리아의 다른 지역보다 9배나 높은 가격이다. 유엔은 지난해 7~12월 봉쇄 지역에 구호 식량을 들여보낼 수 없었다. 10월에 주민 1만500명에게 식량을 전달한 것이 전부다. 봉쇄 지역 아이들은 절반 가까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ISSG 합의 이전에는 국제 구호 기구가 봉쇄 지역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해 유엔이 마련한 긴급 구호 식량이 주민에게 전달된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마다야에서만 50명이 넘는 주민이 아사하고 있었다.

 ◇ 폭격이 두려운 아이들…교육 못 받고 폭력 성향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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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AP/뉴시스】시리아 동부 구오타 지역에서 지난 해 12월 24일 한 남자가 아들로 보이는 두 어린이의 손을 잡고 무너진 건축물 잔해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사진(세이브 더 칠드런 제공). 8일(현지시간)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의 내전지역 어린이들은 장래에 대한 희망도 잃은 채 매일 연합군의 공습과 음식물 부족, 의료 혜택 부족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의 나날을 살고 있다. 2016.03.09  
 “매일 매일이 거의 똑같아요. 유일하게 새로운 것이 있다면 폭격이 언제 떨어지느냐는 거예요. 나는 폭탄에 맞을까봐 하루 종일 집에 숨어 있어요. 봉쇄 지역에서 사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폭격에 무감각해질 수는 없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요.” (아나스, 남자 아이, 고우타 동부 지역 거주)

 면담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폭격에 상시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학교와 집, 놀이터는 모두 공격을 받아 황폐해졌다. 지난해 9월에는 알와에르의 한 운동장에 폭격과 포격을 퍼부어 아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 노출된 아이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등 폭력 성향을 보였다. 연구에 참여한 성인들은 봉쇄된 이후 아이들이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반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우울해하거나 내성적인 성향이 된 아이도 있었다. 침대나 교실에서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거나 언어 장애를 겪는 아이들도 발견됐다.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4년간 학교를 겨냥한 공격이 4000차례 이상 발생했다. 공습으로 학교 건물이 무너졌고 무장 세력이 교실을 점령해 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유엔은 시리아 학교 네 곳 중 한 곳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보고 있다. 전쟁 전에는 100%에 가까운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지만, 지금은 200만 명이 넘는 학생이 수 개월~수 년 동안 학교 밖으로 쫓겨나 있다.  

 시리아 주민과 국제 구호원은 봉쇄 지역 아이들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될 거라고 우려한다. 한 국제 원조 기구 관계자는 “지금 상황은 단지 식량과 의료품만 차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들의 지식과 가르침을 통째로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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