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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화 감독 "불신·의심 가득 찬 세상 희망 발견하고 싶었다"

등록 2016-11-11 09:35:31   최종수정 2016-12-28 17: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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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려진 시간'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엄태화(35) 감독의 데뷔는 자못 화려했다. 엄 감독 또한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장편극영화 데뷔작 '잉투기'(2013)는 제목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B급 정서와는 달리 그 자체로 강렬한 영화였다. 신인감독이자 젊은감독답게 세태를 철저히 반영한 영화적 설정, 그 설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통찰이 있었다. 그는 '잉투기'를 뛰어난 코미디이자 비극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두 번째 장편영화 '가려진 시간'을 내놨다. 이번엔 판타지다. 그런데 이 영화, 겉모습만 봐서는 도무지 '잉투기'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갑자기 성인이 된 소년과 이 소년의 말을 유일하게 믿어주는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배우 강동원까지. 이건 흡사 순정만화가 아닌가. '잉투기' 속 '날 것'의 느낌은 분명히 이 작품에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가려진 시간'은 '잉투기'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은 영화였다. 영화적 설정과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잉투기'를 흐르던 감성과 세계에 대한 철학은 엄 감독의 것이 맞았다. 그는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야 하고,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곳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결과물이 '가려진 시간'이다. 엄 감독의 말을 들어봤다.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생각보다 실감이 안 난다. 담담하다. 관객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요즘에 시사를 하고 있는데, 반응 찾아보는 게 재밌다. 좋게 본 분도 있고 별로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그렇게 의견이 나뉘는 것도 재밌다. 그런 게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좋다는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다행이다. 첫 번째 시사였던 언론 시사회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날 유독 지루하게 느껴지더라. 다행스럽게도 그날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안도했다."

 -왜 지루하게 느껴졌나.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전날까지 보고 또 보면서 수정했다. 긴장감도 있었다. 배우들과 함께 보는 긴장감 같은 게 있더라."

 -제작보고회 때, 어른 남성과 소녀가 큰 파도 앞에 서있는 이미지를 보고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 이야기만 들으면 대강 이해는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인 '잉투기'와 이번 작품은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영화가 탄생한 것인지 궁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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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도 이야기했는데, 현실과 비현실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잉투기'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잉투기'는 소재를 잡은 후에 실제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취재를 거쳐 현실적인 이야기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시공간이 멈춘다는 설정을 처음에 생각하고, 이 설정에 어울릴 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그 이미지를 보게 됐다. 저 두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멈춰버린 시공간이라는 설정이 이 두 사람의 사연에 들어가면 어떨까를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그 이미지는 어디서 본 건가. 누구의 작품인가?

 "'핀터레스트'에서 봤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모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눈에 들어왔다."

 -그 설정과 이야기, 이미지를 결합해 만든 '가려진 시간'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나. 첫사랑이라는 단어도 언급되지만, 결국 믿음고 신뢰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다.

 "음…테마를 잡아놓고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뒤에 (주제를) 찾는다. '가려진 시간'을 쓰면서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봤을 때, 결국 믿음이었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는 내 무의식이 투영되지 않겠나. 그때 현재 이 세상이 무엇을 믿고, 무엇에 기대며 살아야 하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신과 의심이 더 익숙한 세계에 대한 피로감이 있었고, 그래서 그것과 반대로 믿음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잉투기'와 '가려진 시간'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기도 하지만, 또 유사하기도 하다. '잉투기'는 코미디 터치가 있지만, 그 속은 매우 우울하다. '가려진 시간'은 판타지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판타지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판타지로 인한 슬픔과 쓸쓸함이 가득하다.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가족과 친구 등 주변에 사람은 있지만, 인간은 결국 혼자가 아닌가. 혼자 살아야 하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내 영화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염세적인 사고를 가진 건 아니다. '잉투기'는 물론 새드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주 작은 희망을 남겨 놓는 영화다. '가려진 시간'도 마찬가지다. '수린'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고, 나름의 성장을 한다. 이정도의 희망은 붙잡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가려진 시간'의 주인공인 '수린'과 '성민'은 사건 전에도 매우 외로운 아이들이다. '잉투기'도 마찬가지다. '칡콩팥'과 '젖존슨'만큼 외로운 사람도 없다.

 "내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불쌍한 존재들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자꾸 그런 인물들이 나오는 게 아닐까."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었다. 역시 눈에 띄는 건 멈춰진 시간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시간이 멈춘다라는 설정이 다른 영화들에 없는 건 아니지만, '가려진 시간'의 이미지와 비슷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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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도 종종 있는 설정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일반적으로 그런 설정의 장면들이 꽤 스펙터클하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는 그렇게 할 여력도 안 되고, 또 영화의 분위기와도 맞지 않았다. 이 공간이 정서적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그 정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재밌으려면 작은 아이디어들이 필요했고, 시간이 멈췄다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 주로 동적인 순간들을 정지시켰다. 가령, 물이나 연기가 그렇고, 고양이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뛰어 드는 고양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정지시킨 거다."

 -멈춰진 공간이 정서적으로 보여지길 원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세계가 멈춰버렸다는 게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계에 점점 권태를 느끼고,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럴수록 '멈춘 세계'는 공포스러워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되는 과정을 함축하고자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세상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라는 점, 주변에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게 결국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 거다."

 -멈춰진 세계에 대한 표현도 흥미로웠지만, 반대로 시간이 흐르는 실제 세계 또한 주목해볼 만한 게 있었다. 아무도 '수린'과 '성민'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기는 하나 그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악당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매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믿지 않는 사람=악당'이라는 클리셰가 없었다.

 "'수린'의 이야기를 믿지 않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 보여야 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누가 '수린'의 이야기를 믿겠나.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관객 역시 마차가지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을 1차원적인 악당으로 그렸다면,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희원 배우가 '수린'의 아버지로 나오는데, 기존의 이미지 때문인지 왠지 '나쁜 아빠'일 것 같았다.(웃음) 그런데 막상 그렇게 표현되지 않았다.

 "(웃음)의도적인 게 있었다. 김희원 배우가 가진 악역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게 초반부에 긴장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수린'의 아빠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서툰 아빠일 뿐이다."

 -어른들이 '수린'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성민'의 친한 친구까지 '수린'과 '성민'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걸 보고 다소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두 주인공을 꽤나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

 "애와 어른의 경계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아이 또한 지극히 상식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바랐다. '수린'과 '성민'의 그 허무맹랑한 암호 책을 보고 단번에 '수린'의 말을 믿는 것 또한 이상했다."

 -강동원 배우가 포스터 전면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가려진 시간'은 결국 '수린'을 연기한 신은수 배우가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장편영화를 연기 경험이 전무한, 그것도 어린 배우에게 맡기는 데 걱정이나 부담은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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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면서 이래도 되나 싶긴 했다. 어쨌든 투자가 됐고, 강동원 배우도 합류했으니까, 나보다 영화를 훨씬 오래한 사람들도 납득을 하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였다. 또 신은수 배우를 보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감은 어디서 오는 건가.

 "일단 얼굴이 좋았다. 사연이 있는 얼굴이었고, 그러면서도 강단이 있는 얼굴이었다. 4개월 가량 트레이닝을 했는데, 습득력이 남달랐다. 연기력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트레이닝 중간 쯤에 이미 확신이 들었다."

 -강동원 배우 또한 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더라. 혹시 강동원 배우 말고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도 했나.

 "동원씨가 이 작품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잠깐 했다. 하지만 보다시피 강동원 배우가 가장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가 순정만화 느낌이 있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강동원 아닌가. 또 여자아이와 성인 남자가 함께 서있을 때 위화감이 없는 배우, 그게 강동원이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르 해보자. '잉투기' 때, 영화계와 관객으로부터 매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렇다. 강동원이 출연한다는 점을 떠나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다. 또 동생인 엄태구 배우에 대한 관심도 동시에 올라가고 있다.

 "일단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좋다. 오랫동안 백수로 지냈으니까,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담담한 마음이 크다. 영화를 한다고, 꿈을 좇는다고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실패와 성공 같은 것에 무덤덤해졌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상황이 좋은 편이지만, 앞으로 내가 할 영화가 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관심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부담이라는 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건가.

 "아무래도 그렇다. 이제 장편 두 편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전에 못 봤던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있으니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상업 장편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려진 시간'이 이른바 주류 영화계로 들어와 내딛는 첫 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기분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신나는 일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화를 만들던 때도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돈을 주니까 좋다.(웃음)"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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