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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폭 리포트①]"조폭 낙인, 문신처럼 평생 후회"…'○○파' 前 행동대장의 때늦은 '참회'

등록 2016-12-05 13:16:38   최종수정 2017-01-09 1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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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전직 조폭 동아파 행동대장 출신 A씨가 위클리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A씨는 "폭력조직에 몸담은 것을 후회한다"고 전했다. 2016.11.28.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철지난 영화부터 언급해야겠다. 영화 '신세계(감독 박훈정·2013년)'의 핵심은 '조직폭력배'다. 국내 최대 기업형 조직폭력단체인 그룹 '골드문'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경찰이 개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속 골드문은 건설을 비롯해 유통·엔터테인먼트, 제2금융권 등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그룹이다. 골드문 조직원은 다르다. 도심 유흥가에서 깍두기 머리와 검은 정장 차림으로 위력을 행사하는 구시대 조폭 모습이 아니다.그들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외국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마치 대기업 사원 같다.

 겉만 봐서는 이처럼 건실하지만, 실체는 몇 개 계파가 합친 '기업형 조폭'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것이 아니다. 현실이다.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닌 탓이다. 얼핏 과거보다 조폭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는 형태만 합법적으로 보이도록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실제 모습을 감추거나 위장한 채 교묘하게 스며들고, 뿌리내리고 있다. 

 조폭은 늘 그렇듯 불의한 권력과 이권을 매개로 잇닿아 있다. 그 뿌리 역시 꽤 깊다. 오죽하면 사상 초유 국정마비 사태의 주역 최순실씨도 조폭에게 손을 뻗었을까.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통령 뒤에 숨어 대통령을 쥐락펴락한 대한민국 최고 실세가 도움의 문을 두드린 게 고작 조폭이라니. 그것도 딸 정유라씨가 동거 중인 남자를 떼어내 달라고 요청했다니.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조폭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놀랍지 않다. 어지간히 감쪽같이 숨길 수 있다지만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극복할 수 없다.

 혹자는 조폭이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때깔'이 '맛'까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래봐야 조폭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시무시한 협박과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다.

 착각하기 쉬운 것이 조폭의 '의리'다. 예나 지금이나 조폭에게 의리는 없다. 이것도 본질이다.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애써 외면했던 2016년 대한민국 조폭의 실체를 밝힌다. [편집자주]

 사내가 목이 몹시 마른 듯 연신 술을 들이켰다. 가족에게조차 하지 못했을 법한 과오를 털어놓는 것이 벅찬 탓일까. 아니면 애써 잊어버렸거나 묻어뒀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듯하다. 

 기억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기억이 고통스러울 때는 더욱 그렇다. 이미 지나가 버려 손조차 쓸 수 없는 기억은 기어이 후회를 남긴다.

 인터뷰는 3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는 입이 바싹바싹 말랐나 보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에 연신 술잔을 갖다 댔다. 그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술잔을 놓지 못했다.

 궁금한 물음이 넘쳤다.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뿌리박힌 채 기생하는 조폭에 관한 지레짐작과 모르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서다. 이런 것도 분명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그와 만남이 느닷없이 성사된 탓도 있다. 

 기자는 A씨(신변 보호를 위해 나이와 성을 밝히지 않습니다)를 그의 후배가 운영 중인 서울 강남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만났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그는 늘씬한 몸매, 날카로운 콧날에 인상적인 눈매를 지녔다. 제법 시간이 흘렀어도 싸움꾼 티가 완연했다. 그는 광주와 나주 등 호남을 기반으로 전국적으로 세(勢)를 과시하며 이름을 날린 'OO파' 행동대장 출신이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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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전직 조폭 동아파 행동대장 출신 A씨가 위클리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A씨는 "폭력조직에 몸담은 것을 후회한다"고 전했다. 2016.11.28.

 chocrystal@newsis.com
생면부지 기자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계보가 있는 건달이든 양아치든 다른 누군가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일반인을 상대로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범행을 하지 않았지만, 나로 인해 그동안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을 것 같아 죄책감에 많이 시달렸다. 지금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답했다.

 당황스러움에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마음에 켜켜이 묻어놨던 얘기들을 풀어냈다.

 시간은 30여 년 전 철없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달은 분명히 그가 원했던 길이 아니었다. 폭력은 또 다른, 아니 더 큰 폭력을 낳았다. 그때 누가 옆에서 잡아줬다면 지금의 그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중학교 때부터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특유의 묵직한 직구를 잘 던지는 투수라는 호평 속에서 유망주로 성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만난 선배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거의 매일 맞다시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의 강도는 세졌다. 맞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운동부여서 으레 몽둥이 몇 대 맞는 것으로 여겼지만, 매일 아무 이유 없이 맞다 보니깐 너무 힘들어 도저히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는 틈만 나면 폭력을 행사하던 한 선배에게 반항하다 손가락 인대가 완전히 끊어지는 부상을 했다. 손가락 감각으로 공을 채고, 제구하는 투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야구선수 생활도 그렇게 끝났다. 운동밖에 모르던 그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태 타이거즈' 입단이라는 소년의 꿈은 그렇게 산산 조각났다.

 그는 거리를 맴돌다 만난 고향 선배의 권유로 폭력 조직에 발을 들였다. 불과 18살이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방황하던 그에게 조직은 유일한 희망이자 안식처였다.

 '선배가 시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조직의 행동강령에 따라 그는 조직끼리 세를 과시하다 싸움이 붙으면 사시미칼(회 뜨는 칼)이나 쇠몽둥이 등 '연장'을 들고 앞장섰다. 그때부터 그의 손에는 때 묻은 야구공 대신 날카로운 사시미칼이 늘 들려 있었다.

 "젊은 혈기에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허리나 다리에 사시미칼을 차고 다니면서 선배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꺼내 무작정 휘둘렀습니다."

 그 해, 그는 다른 조직과 유흥업소 이권 다툼으로 '전쟁'을 벌이던 중 상대 조직원을 크게 다치게 했다. 피해자와 합의한 뒤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처음으로 수형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 이후로 조직 생활 20여 년간 6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조직원이 교도소에 다녀오면 흔히 '학교(교도소의 은어) 다녀온다'고 표현하는데 당시에는 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었어요. 또 조직 내에서 승진을 의미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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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전직 조폭 동아파 행동대장 출신 A씨가 위클리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A씨는 "폭력조직에 몸담은 것을 후회한다"고 전했다. 2016.11.28.

 chocrystal@newsis.com
'학교'를 무사히 다녀온 그는 이듬해 서울에 있는 중간보스에게 전화를 받는다. 서울 강남 요지를 속칭 '나와바리(영역)'로 둔 선배였다. 부랴부랴 짐을 싸 들고 상경한 그는 '행동대원' 노릇을 하며 차츰 '이름값'을 쌓았다.

 "당시에는 운동선수 출신 조폭을 선호했어요. 조폭에게는 '깡'이 있거나 '힘'이 있어야 하는데 운동선수는 둘 다 갖췄고, 무엇보다 단순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거든요."

 서울에서 조직 생활은 화려하고, 풍족했다. 서울 강남 요지의 유흥업소 서너 곳과 이태원의 성인 나이트클럽 한 곳 등을 운영했다. 돈과 사람이 모이는 강남에서 하루 2000만원 넘게 버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기아자동차가 1989년 수입해 판매한 미국 포드자동차의 '머큐리 세이블'을 타고 강남 일대를 누비기도 했다.

 폭력이 너무도 쉽게 용인되던 그때, 세간에 숱한 강력 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한 그는 '내로라하는 주먹들' 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 사이 유흥업소 나와바리와 각종 이권을 두고 상대 조직과의 전쟁은 계속됐다. 협박과 폭력이 일상화했다. 무감각해졌다.   

 반복되는 폭력과 생사를 다투는 전쟁에서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상대 조직이 휘두른 사시미에 심장 부위를 깊게 찔려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집중 치료를 받았다.

 돈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벌고 누구나 앞에서 설설 길 정도로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가슴 속에는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가 켜켜이 쌓여갔다.

 영원할 것 같던 그의 시대도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조폭 소탕전'이 전개됐다. 그와 선후배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갔고, 조직은 와해했다. 그러는 사이 '강호의 의리'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아니 곤두박질쳤다.

 "조폭 사이에 의리는 애당초 없습니다. 돈이 의리고, 돈만 되면 물불 안 가립니다."

 그의 단단한 마음도 서서히 금이 가더니 기어이 두 동강이 나고야 말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교'를 다녀온 뒤 그 길로 건달 생활을 청산했다.

 "조폭이 좋은 검은색 양복 빼입고, 외제 차 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돈 한 푼 없고, 쥐뿔도 없어요"

 그는 또 조직에 몸담았던 그 날을 돌아보며 말했다.

 "열여덟 혈기와 어쭙잖은 객기로 조직에 몸담았지만, 평생 가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정말 남는 건 후회밖에 없어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저처럼 모든 것을 잃고, 평생 후회만 남는 어리석은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열여덟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가족에게 떳떳이 사는 남편, 아빠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습니다. 한 달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면서 적은 돈이라도 적금을 붓고 주말에는 가족들하고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는, 그런 평범한 회사원처럼 살고 싶네요."

 그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술병 다섯 개가 모두 비었다. 시나브로 오후 11시가 가까워졌다.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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