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마를 일 없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등록 2016-12-12 11:00:00   최종수정 2016-12-30 16: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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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및 환경단체 회원들이 주최한 '옥시로부터 부정청탁 받은 유일재 호서대 교수 1심 선고 긴급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이 발언 중 오열하며 주저앉고 있다. 2016.10.14.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나운채 기자 = 2016년 대한민국은 최순실(60)씨 등의 국정 농단 사건에 삼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운호(51)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법조로비 사건, 진경준(49)·김형준(46) 등 현직 검사장들의 비리 사건,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의 그룹 경영 비리 사건 등도 국정 농단 '블랙홀'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 사건들은 법조계나 재계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국정 농단 의혹은 결국 특검이 꾸려질 정도로 여타 사건들보다도 그 여파가 압도적으로 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매일같이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발표한지 5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수사와 옥시 등의 사과가 이어졌다. 이들은 오는 2017년 1월 예정된 옥시 전 대표 등 핵심 관계자들의 선고 등 법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해자들 법원 선고에 오열·울분

 검찰은 지난 5월~7월 신현우(68)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전 대표와 존 리(48) 전 대표, 노병용(65) 롯데마트 전 대표 등을 무더기로 기소한 바 있다. 아울러 가습기 살균제 독성 실험 결과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서울대 조모(56) 교수, 호서대학교 유모(61) 교수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재판에 넘겨진 이들 사건을 집중증거조사 재판부에 배치하는 등 재판을 신속할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재판들은 매주 연이어 열리게 됐고, 피해자들도 법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지난 9월과 10월 서울대 조 교수와 호서대 유 교수의 선고 공판에서 이들은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의 구형량보다도 가벼운 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모임은 선고 직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상징성 있는 첫 선고였기에 징역 3년을 예상했었다"며 "진실이 밝혀져야 이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A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아버지가 5년 넘게 고통을 받아오셨다"며 "(조 교수가)2년형을 받았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 피해자의 한 가정을 돌아보면 2년은 짧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다른 피해자 이옥순씨는 법원 건물 밖에서 무릎을 꿇고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의심된다고 했는데 교수님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는 바람에 더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봤다.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건가"라고 오열하기도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도 법정 안팎에서 눈물을 흘렸다. 특히나 선고가 난 직후 법원종합청사 밖에선 피해자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방호원은 "너무나도 마음아픈 일을 겪으신 분들이라 뭐라 말씀드리기조차 죄송스럽고 어렵다"며 "'시끄럽다'는 민원보다도 안타까움을 표하며 지나가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픈 기억 토해내듯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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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6.11.16.  stoweon@newsis.com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정에서 슬픔을 토해내듯 증언했다.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그들의 증언엔 한이 서려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 군은 신 전 대표 등의 형사재판을 보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법원을 찾았다. 임군의 어머니 B씨는 아들의 옆자리에서 재판을 지켜보다 피해자 신분으로 증인석에 섰다.

 B씨는 "우리 성준이 얼굴 좀 보세요. 당신들 때문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를 이 아이의 얼굴을 좀 보세요"라며 신 전 대표 등에게 절규하듯 외쳤다. 신 전 대표 등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도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문구 등을 결정한 저 사람들(신 전 대표 등)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수없이 죽어갔다"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으로 밝혀진 이 시점까지도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용납되거나 허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전 대표 등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는 피해자들이 만든 영상이 재생됐다. 이미 숨진 아이들의 건강했던 모습과 투병 중인 모습이 번갈아가며 나타나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피해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故) 최모양의 어머니 김모씨는 "아이들은 폐가 터지고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고 입을 연 뒤 피고인들을 향해 "당신들의 아이가 눈 앞에서 숨막혀 발악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엄마와 아빠를 부르지만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떠올려 봐라"고 힐난했다.

 김씨는 이어 "아이들은 성인들도 오랫동안 있으면 정신질환에 걸린다는 중환자실에서 몇 개월 동안 있었다"며 "하루에 불과 30분 만날 수 있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몸을 배배 꼬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당초 예정에는 없었으나 방청석에 앉아있던 조모씨는 재판부의 허락을 받고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우리 남편은 2주 동안 아프지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숨이 차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며 "10억을 준다한들 우리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지 마라. 숨 멎을 때까지 우리 피해자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신 전 대표에게 징역 20년, 존 리 전 대표와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세퓨의 오모(40) 전 대표에게는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노 전 대표 등에게는 금고(징역형과 같이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노역을 하지 않는다는 형벌) 5년을 구형했다.

 피해자들은 약 반년 가량 법원을 오가며 이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만 해도 방대한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 또한 이들의 마음을 달래고,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기 위해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부로서는 어떤 판결을 내린다 할지언정,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고, 민감한 사안인 만큼 신중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혐의가 모두 무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신 전 대표 등은 실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유죄가 나올 경우 양형에 있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 또한 참작 요소가 되겠다"고 밝혔다.

 na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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