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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 모인 고단한 삶①]"일당 3300원"…'폐지 할머니' 대신 나섰지만…

등록 2017-01-23 13:50:51   최종수정 2017-01-23 13: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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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1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창진고물상에서 본지 박성환 기자가 폐지 수거 체험을 했다. 종일 수거한 폐지와 리어카의 무게는 78킬로그램. 리어카의 무게를 빼니 30킬로그램이다. 박 기자는 이날 3300원을 벌었다. 2016.12.19.  [email protected]
도시는 깨끗하다. 감추고 싶은 것을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한 덕이다.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도시는 늘 깨끗하다. 그렇게 보여야 한다.

 도시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은 자질구레하다. 함부로, 혹은 아무렇게나 버린 흔적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 몫으로 돌아온다. 

 '표' 나는 일을 해야만 시선을 끄는 도시의 생리 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도시는 자정 능력을 잃은 지 오래다.

 도시는 지나간 것을 쉽게 버린다. 새로, 또 사면 그만이다. 무심코 내다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도시에서 버리는 일은 너무 사소한 것이라 표나지 않는다. 버린 것을 다시 줍는 것은 더 사소한 일이어서 좀처럼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불러 모으지 못한다.

 눈살을 찌푸린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이 유일한 생계인 사람이 지나갈 때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불편한 시선이 아무렇게나 꽂힌다. 연민인지 경멸인지 모를, 곱지 않은 시선은 손수레에 실은 고물 무게만큼 묵직하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다니는 '어르신'에게 쏟아내는 일갈까지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감내하는 도시 빈민은 누군가 쏟아놓은 배설물이나 이름 붙일 수 없는 욕망이 토해낸 흔적들을 모아 고물상에 파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고물상은 더럽고 하찮다. 도시에 사는 우리의 욕망이 어지럽게 모여 그렇다. 그래서 도시의 욕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 욕망의 끝이 얼마나 허무한지도 보여준다.

 고물상은 도시의 욕망을 정화한다.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닦아낸 도시의 온갖 더러운 흔적들이 널브러진다.

 고물상은 결코 더럽거나 하찮지 않다. 도시의 '오아시스'다. 보이지 않는 노동을 지켜야 하는 도심 빈민들에게 유일한 안식처다.   

 묻고 싶다. 목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시선을 보내는지. 누구도 대답하기 힘들다. 나도 그렇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생강차 한 잔씩 드세요."

 안양역 앞 전광판이 최저기온 영하 12도를 가리키던 지난 14일 오전 6시 '창진자원'. 여주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동장군에 얼어붙은 고물상의 새벽을 깨웠다.

 고물상 안쪽 연탄난로 위 노란 주전자가 허연 김을 연신 토해내며 한겨울 쨍한 새벽 공기에 오들오들 떨던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눈코입만 내놓은 '현우 삼촌'이 주전자를 기울이자 허연 김이 주전자를 집어삼킬 듯 넘실댔다. 현우 삼촌은 고물상 사장 내외가 지어준 별명이다.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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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영하권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일대에서 본지 박성환 기자가 폐지 수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은 360도 VR카메라로 촬영했다. 2016.12.19.  [email protected]
 두꺼운 옷과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한 현우 삼촌과 '박씨 아저씨' '정씨 할아버지' '경비 할아버지' '박씨 할머니' 등 주간조원 10여 명이 연탄난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생강차를 나눠 마시며 몸을 데웠다. 조원들은 40대인 현우 삼촌과 박씨 아저씨를 빼고는 대부분 칠순을 한참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조원들은 처음엔 일면식도 없는 기자를 어색해하면서도 한마디씩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건넨 말들은 모두 당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조원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골칫덩이'에 가까웠을 터.

 "도로를 다닐 때는 꼼꼼하게 사방을 살펴야 해요. 손수레 무게를 못 이겨 교통사고가 날 수 있으니 천천히 다니고, 절대 무단횡단하면 안 돼요."

 현우 삼촌이 어눌한 목소리로 이렇게 당부했다.

 "조심하라"는 한 마디와 함께 친절한 안내도 잊지 않았다. 어디에 폐지가 많은지, 고물 종류가 무엇인지, 재활용이 안 되는 고물은 무엇인지 등 많은 얘기가 오갔다. 

 고물상 앞 일렬로 나란히 서 있던 손수레 밑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척에 잠이 깨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생강차를 다 마신 현우 삼촌이 고양이의 쭈뼛한 발걸음을 따라 나무판을 얼키설키 붙인 낡은 손수레를 이끌고 발걸음 옮겼다. 이내 다른 조원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황금'처럼 여기는 사람들

 검붉게 녹슨 손수레의 손잡이는 얼음장처럼 차디찼다. 손이 얼세라 고무로 코팅된 목장갑을 두 겹으로 꼈지만, 싸늘한 쇠 손잡이를 부여잡자 찬 기운이 그대로 전달됐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새벽에 내린 진눈깨비가 녹으면서 도로는 미끄러웠고, 48㎏짜리 손수레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웠다. 막상 운전을 하자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싣지 않아도 무거운데 여든이 가까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끌고 다닌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출발할 채비를 이미 마쳤지만, 어디부터 가야할지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다.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가 발걸음을 한참동안 붙잡았다. 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빈 짐수레를 끌고 안양 최대 번화가인 안양 1번가로 향했다. 안양1번가 안으로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기대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들이 몰리는 번화가인 만큼 손쉽게 빈 박스나 폐지를 주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거리는 깨끗했다. 하다못해 얇은 전단지 한 장도 찾기 어려웠다.

 안양 1번가에는 이미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구역을 정해놓고, 공짜로 매장을 청소해주거나 쓰레기를 치워주면서 '단골'까지 확보해 놓은 터라 초짜인 기자의 눈에 빈 박스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이들이 샅샅이 다 훑고 지나간 거리에는 빈 박스나 폐지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물 나오는 양이 예전 가지 않은데, 줍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더 늘었으니 이 짓도 이제 형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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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영하권 한파가 시작된 1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일대에서 본지 박성환 기자가 폐지 수거 체험을 하고 있다. 2016.12.19.  [email protected]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빈 박스에 테이프를 뜯어내던 작은 체구의 한 할머니는 뭔가를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빈 박스나 고물을 줍기 위해 안양1번가를 이 잡듯 뒤졌지만, 빈 박스를 한 개도 줍지 못했다. 일을 시작한지 1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손수레는 여전히 텅 비었다.

 전날 김씨 할머니가 일러준 안양 3동 주택단지로 손수레를 끌었다. 단지 입구로 들어서자 차량들이 양쪽에 길게 주차돼 혼자 걷기에도 비좁은데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이 이어졌다.  

 조심스레 손수레를 끌었다.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허탕이었다. 기약 없는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골목길을 한참을 헤맨 끝에 보일 듯 말 듯 전봇대에 걸쳐있는 빈 라면 박스 하나를 겨우 발견했다. 비닐봉지를 뜯고, 박스를 잘 펴서 손수레에 실었다. 

 골목길을 따라 구석구석 살폈다. 누런 박스들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종이 박스나 폐지 등 고물이 있는 곳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목길 전봇대마다 종이 박스와 빈 병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덩달아 손이 바빠졌다. 빈 손수레가 조금씩 채워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쓰레기 더미를 뒤져 재활용이 가능한 고물을 찾는 것도 예삿일이 됐다. 쓰레기 더미에는 밤새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누군가 취중에 실례를 했는지 지린내가 진동했다. 냄새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또 다른 쓰레기 더미에서 피자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 박스 뚜껑을 열자 먹다 남은 피자 조각에는 언제 피었는지 모를 푸른색 곰팡이가 가득했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찮은 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박스에서는 먹다 남은 닭 뼈는 물론 깨진 그릇조각과 숟가락, 조개껍질, 아기 기저귀 등이 나왔다.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들은 비닐봉지에 일일이 구분해 따로 담았다. 종이 박스만 줍는 것이 아니었다.

 고물을 줍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허리를 굽혀 빈 박스를 줍는다는 것이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실제 그렇지 않다.

 전봇대 주위에서는 종이박스와 빈 병 등을 골라낼 때마다 심한 악취가 진동했다. 박스에 단단하게 붙어있는 테이프를 제거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은 쉽게 떼어낼 수 있었지만, 어떤 것은 본드를 붙인 것처럼 단단하게 붙어 있어 발로 세게 밟고 나서야 뗄 수 있었다.

 그래도 작업이 어느덧 손에 익었는지 이전보다 더 열심히 빈 박스를 줍고 뜯고 펴서 손수레에 차곡차곡 쌓았다.

 골목 이곳저곳을 돌며 빈 박스와 각종 고물을 줍고 나르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등줄기를 타고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하나같이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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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1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창진고물상에서 본지 박성환 기자가 폐지 수거 체험을 마친 뒤 빗자루로 자잘한 폐지를 쓸어담고 있다. 2016.12.19.  [email protected]
 ◇'꼴에 나이키 운동화라니'…가는 곳마다 곱지 않은 시선 꽂혀

 고물을 줍는 일은 고된 일이다. 일이 고된 만큼 마음도 고되다. 가는 곳마다 곱지 않은 시선이 아무렇게나 꽂혔다.

 주택가 골목길 끝에 다다르자 한 슈퍼 앞에 소주병을 담았던 빈 박스가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빈 박스 가져가도 될까요?"

 기자의 물음에 한참이나 대꾸조차 않던 슈퍼 주인은 "젊은 놈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며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는 옆에 있는 빈 박스 더미를 발로 툭툭 차 건넨 뒤, 빨던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퉁겨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꽁초는 낡은 손수레 옆으로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영하의 추운 거리를 반나절이나 헤매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탓인지 허기가 밀려왔다. 평소보다 더 배가 고픈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식당에 쉽사리 들어갈 수 없었다. 허름한 행색이 어쩐지 남우세스러워 식당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를 눈치 챈 식당 아주머니는 낡은 손수레를 끌고 온 기자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여기다 손수레 세우면 안 된다"며 연신 손을 내저었다.

 오후 2시가 넘어 결국 기자가 사는 동네라 평소 안면이 있던 동네 커피숍에서 고구마 라테 한 잔과 샌드위치로 겨우 허기만 면했다.

 잠시나마 칼바람을 털고 언 몸을 녹인 뒤 다시 폐지를 주우러 길을 나섰다. 안양 3동과 박달동(박달시장) 일대 주택가를 골목을 돌며 종이 박스나 고물을 줍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했다.

 2년 전 아내가 생일 선물로 사준 나이키 운동화가 화근이었다. 손수레를 이끌고 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 하교 시간에 맞춰 우르르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마주쳤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애써 시선과 손가락질은 피했지만, '꼴에 나이키를 신었다'는 학생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너희들이 손가락질하는 고물 줍는 일이야말로 도시를 깨끗하게 하는 힘'이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기세에 눌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속으로 분을 삭였다.

 안양 중앙시장을 지나 중앙로 왕복 7차선 중 끝 차선에서 힘겹게 나아가는 손수레를 피해 버스와 자동차들이 아슬아슬 스쳐지나갔다.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가 반복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손수레에 수북이 쌓인 파지들도 덩달아 위태롭게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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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영하권 한파가 시작된 14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일대에서 본지 박성환 기자가 폐지 수거 체험을 하고 있다. 2016.12.19.  [email protected]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지레 겁먹고 손수레를 이끌고 억지로 인도로 올라섰다. 올라서자마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가득이나 좁은 인도에 손수레가 가당키나 할까. 겨우겨우 비집고 올라선 인도에서는 지나가는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혀를 차는 소리가 수시로 교차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동의 가치는 무게로 환산…일당 3300원

 손수레가 점점 무거워질수록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생겼다. 기진맥진해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기운도 없어졌다. 종이 박스나 고물을 정리해 손수레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손목과 손가락, 어깨가 욱신거렸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30대 남자가 버틸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넘어버린 손수레는 아슬아슬 도로 위를 굴러갔다. 바지런히 손을 움직여도, 다리에 힘을 줘도 손수레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고물상으로 향했다. 결국 안양역을 지나 수북이 쌓인 손수레를 이끌고 고물상으로 들어섰다. 고물상에서는 모든 사물의 가치가 무게로 환산된다. 고물상 바닥에 설치된 '바닥 저울'에 손수레를 올려놓고, 비켜서자 컨테이너 사무실 외벽에 걸린 전광판에 '78'이라는 빨간 숫자가 들어왔다. 안쪽 사무실에서 무게를 확인한 벨소리가 뒤따랐다.

 손수레 무게 48㎏을 빼면 종이 박스 30㎏을 싣고 왔다. 소수점 표기조차 안 되는 바닥 저울은 이날 하루의 노동을 무게로 계량했다. 1㎏에 110원을 쳐주는 시세에 따라 3300원을 손에 쥐었다. 8시간 넘게 안양 일대를 훑고 다니며 종이 박스를 주운 대가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한가득 짐을 실은 손수레가 고물상으로 줄지어 들어왔다. 주간조 현우 삼촌과 박씨 아저씨 손수레였다. 200㎏이 넘는 박씨 아저씨의 손수레를 붓자 종이 박스들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고물상은 다시 무게를 재고 폐품을 정리하는 손길로 분주해졌다.

 짐승의 발톱처럼 생긴 고정 집게가 연신 종이박스를 들어 올려 산더미처럼 쌓았다. 현우 삼촌과 박씨 아저씨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정 집게 밑에서 연신 빗질을 해댔다.

 "생강차 한 잔씩 먹고들 해요."

 얼추 박스 정리작업이 마무리되자 여주인이 다시 목청을 높였다. 현우 삼촌을 따라 다시 생강차 한 잔을 마셨다. 박씨 아저씨는 생강차 대신 잘 익은 김치와 가득 눌러 담은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선한 눈매의 그들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기자에게 "애썼다"는 말을 건넸다. 그제야 손목과 발목의 뻐근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후에 마신 생강차는 오전에 마셨던 것보다 더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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