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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신은 정말 있는 것일까…'사일런스'

등록 2017-03-14 09:49:13   최종수정 2017-11-15 15: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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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영화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역작 '사일런스'에는 두 가지 고통이 있다.

 첫 번째 고통은 선교를 위해 일본에 온 신부들에게 가해지는 박해 그 자체다. 그들은 정신·신체적으로 집요하고 잔인하게 신부와 신자를 핍박한다. 피해자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것인가. 우리는 그저 인간을 구원하려 할 뿐이고, 구원받으려 할 뿐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신을 못 믿게 하려는 그들의 고문에 '기리스탄'(크리스찬)들은 하나 둘 씩 신의 얼굴을 밟고 지나간다.

 두 번째 고통은 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 내면 깊숙히 자리한 신앙에서 온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간 질문이 마음 속에 자리한다. '우리는 당신을 믿기에 이런 고통도 감수하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극 중 신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돕지 않는다. 신은 어떤 간절한 요청에도 응답하는 법이 없기에 그들 또한 신의 얼굴을 밟는다.

 이 영화 제목은 '사일런스', 즉 침묵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주목하는 건 두 번째 고통이다. 이 작품은 외부 박해 속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신의 침묵 속 신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구약성서 욥기의 욥이다. 욥은 누구보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신은 최악의 고난을 선사했다. 재산을 모두 잃었고, 자식을 전부 떠나보냈고, 지독한 병을 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기에 욥은 울부짖는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러시는 거냐고. 그러나 신은 말이 없다. 욥이 고통스러워 했던 게 이부분이다. 신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으니 자신의 고통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보인다는 것. 의미를 찾을 수 없기에 이 고난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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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영화
일본 권력자들은 신부와 신자를 잡아들여 가두고, 신부에게 말한다. "배교(背敎)하라. 그러면 너희 종교를 믿는 자들을 살려주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들을 하나씩 죽이겠다." 어떤 선택이든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신을 어떻게 배신한단 말인가. 반대로, 믿는 자들이 죽는 걸 어떻게 두고만 본단 말인가. 이보다 더 결정적인 고통은 이런 상황을 아무 설명 없이 펼쳐보이는 신이다. 어떤 종교적 이론을 가져와도 이 고통의 합당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이건 욥이 겪은 고통과 같다. '무의미'가 존재한다는 것.

 영화는 신이라는 대상앞에서 네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따라간다.

 네 명 중 세 명은 신부, 한 명은 기리스탄 일본인이다. 배교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페레이라 신부(리엄 니슨), 페레이라 신부를 찾아 일본으로 간 그의 제자 로드리게즈(앤드루 가피드)와 가루페(애덤 드라이버), 그리고 두 사람을 박해의 현장으로 안내한 어부 기치지로(쿠보즈카 유스케)다. 네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가지만 관객은 충분히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건 그들의 선택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다.

 먼저 가루페. 가루페는 죽었다. 막부 권력자들은 그에게 같은 제안을 했다. 배교하지 않으면 신자들을 죽이겠다고. 강한 신앙을 가진 그는 신의 얼굴을 밟지 못했고, 신자들은 짚에 묶여 바다에 던져졌다. 가루페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구조 행위라기보다는 사실상 자살이다. 그가 죽어갈 때도 신은 침묵한다. 굳건한 믿음만큼 가루페는 자신에게 닥친 무의미를 견딜 수 없었으리라. 이 무의미한 고통이 지속되면 신앙은 끝내 흔들리고말테니, 그렇게 될 바에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더 낫다고 그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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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영화
다음은 페레이라다. 그는 배교하고, 신자들을 살렸다. 그걸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리 없다. 심적 고통은 지속되고, 질문도 변하지 않는다. 신은 왜 침묵하는가. 자신을 배신자로 만든 이 지독한 무의미를 견디기 위해 페레이라는 합리화를 택한다. '내가 믿었던 신의 말씀은 모든 곳에서 통하는 진리가 아니다.' 그는 가톨릭이 일본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이유와 함께 일본 종교 이론을 연구해 신의 침묵에 맞선다. 페레이라는 가루페보다 약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난할 수 없다. 그가 가루페처럼 죽어야 할 이유 또한 없지 않은가.

 가루페와 페레이라의 선택은 안타깝지만 이해할 수 있다. 의아한 건 기치지로의 행동이다. 그는 반복해서 신을 저버린다. 기리스탄들이 신념을 지키고 불에 타 죽을 때 그는 홀로 배교해 살아남았다. 그는 또 권력자들이 협박하자 로드리게즈를 팔아넘기고 또 생존했다. 그는 수도 없이 신을 배신한다. 기가 찬 것은 곧바로 회복되는 그의 신앙이다. 그는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빌고 다시 신에게 다가간다. 기치지로는 심지어 자신이 밀고한 로드리게즈에게 가 죄를 용서해 달라며 고개를 숙인다. 이런 그는 그저 징글징글한 배신자일 뿐인 것인가.

 그에게는 가루페처럼 죽을 용기도, 페레이라처럼 자신의 배교를 합리화할 수 있는 지적 능력도 없다. 배교한 뒤 페레이라가 직면한 문제를 기치지로 또한 대면하겠지만, 역시 신은 침묵하기에 기치지로는 이 무의미를 이해 못한 채 그저 견딜 수밖에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우리 머리로는 이해 못하는 신의 뜻이 있다고 여기고 다시 신에게 무릎 꿇는 게 낫지 않을까. 이게 바로 기치지로가 보여주는 배교와 고해성사의 순환 과정이다. 그는 분명 저열하고 나약하지만 그를 비난할 수 없다. 그게 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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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영화
마지막은 로드리게즈. 그는 결국 페레이라의 길을 간다. 다만 페레이라처럼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지 못한다. 그는 삶의 모든 의욕을 잃고, 분노를 속으로 삭히며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여전히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로드리게즈는 배교자의 대명사가 돼 늙어간다. 흥미로운 건 그의 곁은 지키는 게 기치지로라는 점이다. 기치지로는 로드리게즈를 오랜 세월 극진히 모셔온 것으로 보이는데, 두 사람의 이 질긴 인연은 로드리게즈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한다.

 어느 날 기치지로는 난데없이 로드리게즈를 "신부님"이라 부르며, 고해성사 한다.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용서를 빌 사람이 없다고. 기치지로는 삶의 무의미를 배교와 고해성사로 견뎌왔는데, 이제 일본에는 신부가 없으니 자신에게 닥친 이 고통을 오직 홀로 짊어져야 한다. 한 없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기치지로의 행동에 로드리게즈는 당황하나 그는 곧 기치지로를 용서한다. 그리고 여전히 신을 갈구하는 기치지로를 보면서 신앙을 회복한다.

 기치지로는 독실한 기리스탄처럼 내세의 천국을 원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는 현재 자신의 삶에 닥친 고통들을 견뎌내기 위해 신앙을 '활용'한다. 그의 행동은 가톨릭의 교리에 들어맞지 않지만, 최소한 그의 마음에 잠시나마 평화를 안긴다. 이건 신이 기치지로를 살게 한다고 볼 수도 있는 증거가 아닌가. 그렇다면 신이 침묵한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 '신이 결코 침묵하지 않으며 늘 곁에 있다.' 로드리게즈는 그렇게 신이 존재한다고 다시 믿고, 모든 고통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일본에서의 천주교 박해를 다룬 영화 '사일런스'는 실화는 아니다.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1966년에 발간한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소설은 선교사 페레이라 신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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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영화
'사일런스'는 원래 성직자를 꿈꿨던 마틴 스코세이지가 1980년대부터 영화화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판권문제로 미뤄지다가 각색하는데 15년, 작품을 완성하는데 30년이 걸렸다.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과정을 차분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따라가는 영화는 영상미가 빼어나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후보에도 올랐다.

 영화는 BGM 사용이 최소화됐지만 다양한 소리로 화면을 장악한다. 고문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소리, 물속에서 익사하는 소리등이 더 큰 공포로 다가오게한다. 침묵은 고통과 고뇌속에 찾아온다. 무엇이 진정한 신앙이며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신은 정말 있는 것일까.

 하지만 영화 '사일런스'는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영화다. 태어났으니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 관한 영화다. 고통은 반복해서 찾아오고 그 중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 또한 존재한다. 우리가 바로 가루페이고 페레이라이며 기치지로다. 그리고 로드리게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 이 영화를 보는 일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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