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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와 고락 같이한 장인들...다시세운 프로젝트 기대감↑

등록 2017-10-23 09:00:00   최종수정 2017-10-30 09: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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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1968년 국내 최초 주상복합타운으로 세워져 한때 대한민국 전자 메카로 불렸던 세운상가. 지금은 낙후되고 침체된 이 세운상가에는 긴 세월을 묵묵히 지키며 기술 개발에 힘써온 장인들이 있다.

 서울시가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이곳 세운상가를 제조업 기반 4차 산업혁명 거점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하자 장인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며 감회에 젖고 있다. 세운상가의 과거와 현재에 이어 미래를 만들어갈 장인들을 직접 만났다.

 ◇'백남준의 손' 이정성 "세운상가 전세계에서 '유일'"

 세운상가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활동에 참가하며 '백남준의 손'으로도 불렸던 이정성(73)씨가 있다.

 세운상가에서 전축 조립과 텔레비전 수리를 하던 이씨는 백남준과 인연을 맺은 뒤 '다다익선' 등 숱한 작품활동에 참가했다. 이씨는 지금도 세운상가 내 사무실에서 각종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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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세운상가 이정성 장인.2017.10.23

이씨는 뉴시스와 만나 세운상가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백남준 선생을 만나서 인생 후반기를 외도를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발을 끊지는 못했다"며 "여기는 내 기술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온갖 세상의 전자제품이 다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작가(백남준)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나는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거기 소요되는 부품은 다 여기서 조달해야 했다"며 "뭐가 필요하든 여기 오면 다 찾을 수 있다. 나는 어느 골목 누구네 집에 가면 뭐가 있는지를 다 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외국 전시를 위해 백남준과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지만 세운상가만한 곳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백 선생님과 해외를 다니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세운상가만큼 편한 동네가 없다는 것"이라며 "세운상가에서는 부품이 필요하면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사는데 외국은 그런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은 데이터북을 뒤져서 매일 (부품을) 주문해야 한다. 데이터북에 나와 있는 스펙을 보고 주문하면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고 헷갈릴 때가 많다"며 "그리고 특히 외국은 (부품을) 주문하고 도착하는 데 10일이 걸린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리옹에서 백남준 비디오아트 전시회를 준비하다 3만원짜리 부품이 없어 당황했을 때 인편에 비행기로 공수한 세운상가 부품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이야기는 지금도 잊기 힘든 짜릿한 경험이다.

 이씨의 세운상가 자랑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친구들이 한국을 오면 제일 좋아하는 곳이 세운상가다. 뭐든지 눈으로 보고 흥정하고 살 수 있고 깎을 수도 있고 없는 것을 오더하면 다음날 아침이면 다 해결되는 곳이 세계적으로 어디에도 없다"며 "일본에 아키하바라가 비슷했는데 지금은 신품 매장으로 전부 바뀌어서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세운상가를 바라보면서 마음 아팠던 적도 많았다.

 이씨는 "원래 세운상가는 청계천이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손님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쇠락의 길을 걸었냐면 시가 개입해서 그런 것"이라며 "시에서 개입해서 교통 체증 문제를 이유로 용산으로 가라고 내쫓았다. 그래서 반 이상이 가니까 여기는 슬럼화될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슬럼화돼서 지금도 2층과 3층은 빈 가게가 더 많다. 지금 있는 사람들은 죽어도 못나간다고 버틴 끈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씨는 세운상가를 되살리려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환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 부활을 위해 입주자들에게도 새로운 각오로 임할 것을 주문했다.

 이씨는 "세운상가 내부가 너무 무질서하다. 점포 앞에다가 물건을 늘어놓고 도떼기시장처럼 해 놨다. 이기심에 나만 잘되려고 한다"며 "무질서하면 하류시장밖에 안 된다. 폐습은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봇에서 스크린골프까지' 류재용 "젊은 메이커들과 협업 기대"

 세운상가 내 류재용(71)씨 사무실에 들어서면 20개에 달하는 특허증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진공관 앰프 스피커, 상수도 누수 탐사, 협소공간 탐사로봇, 스크린골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을 지닌 류씨는 원자력연구소 등에서도 일했던 능력자다. 1978년 10월 중앙정보부 주도로 진행된 우리나라 최초 미사일 발사 실험에 참가했던 기억은 류씨에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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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세운상가 류재용 장인.2017.10.23

 그런 류씨에게도 30대 초반 정착한 세운상가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그는 뉴시스와 만나 "세운상가는 인기가 굉장히 좋았다. 사무실 하나 얻는 데 한달이 걸릴 정도였다"며 "여씨라고 복덕방처럼 하는 분을 통해 사무실 하나를 얻었는데 참 좋더라. 밤낮으로 일할 수 있고 규제 받는 게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랬던 세운상가에 닥친 위기는 류씨에게는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류씨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세운상가를 헌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상가 문을 닫고 피하고 그랬다. 용산상가가 생길 때는 나도 가야하냐 말아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다"며 "그래서 용산에 직접 가보니 분위기가 영 아니더라. 그래서 끝까지 버텼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털어놨다.

 류씨는 당시 정부의 등쌀에 쫓겨나듯 중국으로 떠났던 이웃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중국 정부가 10년, 20년 땅 빌려주는 것만 믿고 우리나라 같은 줄만 알고 (이웃들이) 장비니 기계니 프레스기를 갖고 갔는데 부두 도착하면서부터 망하기 시작했다"며 "돈을 줘야 짐을 내려주고 옮겨줬다고 한다. 공장까지 가는 길이 좁아서 길을 만들다시피 해서 기계를 갖다놓으면 전기가 제대로 안 나와 기계를 돌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 싸 짊어지고 갔다가 다 거덜 나고 빈 몸으로 여기 돌아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간 긴 침체기를 겪던 세운상가가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제작자(메이커)들을 수혈하자 류씨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류씨는 쉬는 시간마다 제작자들이 입주한 '메이커스 큐브'를 찾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젊은 제작자들과의 협업에도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류씨는 "큐브에 들어가신 분과 기계를 갖다 놓고 이렇게 하면 어떠냐 저렇게 하면 어떠냐 서로 얘기하다가 서로 돕는 이게 바로 협업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제점 같은 것을 서로 얘기하면 자연스럽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쳐서 얘기하다 보면 협업은 자연적으로 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황박사' 황종진 "세운상가 이미지 좋아졌으면"

 오디오기기 기술자 황종진(71)씨는 1968년 처음 세운상가를 찾은 뒤부터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오디오 수리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세운상가는 자부심과 자괴감을 주는 묘한 존재다.

 황씨는 "세운상가는 이 나라의 자타공인 전자업계 리더였다"며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이고 그 당시만 해도 과도기 때 체계화가 안 돼 있으니까 깨어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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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세운상가 황종진 장인.2017.10.23

 이처럼 황씨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세운상가지만 가끔은 마음의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황씨는 "어려운 시절에는 1인1기라고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고 했는데 가끔 '우리 애는 공부를 못하니 기술이나 가르칠까' 하는 얘기를 듣는다"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모욕감이 들었다. 나름대로 노력하는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기하면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운상가가 음란물 유통의 중심지로 소문 났던 시기 역시 황씨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이다.

 황씨는 "세운상가 이미지가 아주 나빠진 게 뭐냐 하면 3층에 이상한 것 파는 애들이 있었다. 그들이 학생들을 뒷골목으로 끌고 가서 성인물을 판매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세운상가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기사가 '거기는 도둑놈 밖에 안 산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화가 나더라"며 "나는 이렇게 하얗게 살고 있었는데 소문이 왜 이렇게 나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더라"고 말했다.

 오랜 침체기를 겪던 시기, 황씨는 이명박 시장 당시 추진한 청계천 복원공사로 세운상가가 옛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고 했다.

 황씨는 "이명박 시장 시절에 청계천을 복개할 때 나름 기대를 걸었다. 이쪽으로 휴게소나 카페 같은 게 많이 생기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며 "사람들이 많이 왕래를 해야 하는데 볼 게 별로 없고 개천 밖에 없으니 내 생각대로는 안 되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황씨가 거는 기대는 유별나다. 황씨는 세운상가 9층에 새로 조성된 서울옥상에 사과나무를 심으면 어떠냐며 제안을 할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다.

 황씨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아주 고무적이다. 나라에서 관심을 가진 것만 해도 고맙다"며 "앞으로 활성화되려면 주변환경만 조금 좋아지면 괜찮을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여기가 (서울의) 중심 아니냐"고 말했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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