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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통령의 시간, 이때가 지나면…"

등록 2017-11-15 14:00:25   최종수정 2017-11-21 08: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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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7.11.15.  [email protected]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위원장직 걸고 노사정 대화 제안...대통령이 주재해야”
“귀족노조 비판은 시대착오적...비정규직 포용할 것”

<김현호의 넛지 인터뷰>
 
【서울=뉴시스】김현호 기자 = 김주영 한국노총위원장은 명실상부한 한국 노동계의 지도자다. 전력 노조위원장을 네 번 연임하고 전국공공산업노조(공공노련) 위원장을 연이어 세 번 지낸 뒤 지난 1월부터 한국노총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그의 무기는 부드러운 성격과 겸손이라고 주위에서 말한다. 거친 노동운동판에서 자칫 무기력한 리더십으로 비칠 수 있는 온건함과 합리성으로 그는 많은 걸 이루어냈다. 한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 냈고, 한전 자회사의 민영화를 막아냈다. 때론 삭발을 마다않는 야성도 갖고 있지만 가능한한 대화와 인내로 목적한 것을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그는 ‘노동운동 9단’이라 할만하다.

 김 위원장은 최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건배하고, 이어 박용만 대한상의의장과 치맥을 함께 했다. 그가 환히 웃으며 술잔을 들고 있는 사진은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면서 노-사-정의 앞날을 상징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한국 노동계에 봄날은 온 것인가. 웃음 속에 숨겨진 그의 고민을 건드려보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친노동정책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제, 비정규직 제로, 근로시간 단축, 이른바 ‘양대지침’ 폐기, 게다가 통상임금관련 판결... 노조가 할 일이 없어진 것 아닌가.

“그간 우리 노동계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온 내용들이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을 통해서 나온다는 건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이 실린 거다. 그간 우리도 줄기차게 외쳐왔지만 실현이 잘 안됐다. 지금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우리가 무슨 합의를 하려면 매우 어렵다. 이럴 때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이루어내야 한다. 하여튼 대단한 변화이고 희망을 갖게 됐다.”

-노동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한편에서는 한국노총과 민노총같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귀족노조라는 말도 식상할 정도인데.

“귀족노조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게 아마 노동자들이 그랜저를 타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때 내가 그랬다. 아니 노동자들은 그랜저 타면 안되는가. 나만 하더라도 15년동안 (전력노조 위원장 때) 매년 6만Km 이상 다녔다. 우리도 사장보다 바쁜 일을 하면서 차 안에서 자료도 봐야하고 생각도 해야 하고 휴식도 취할수 있는 거 아닌가. 또 (고임금의) 조종사들이 파업한다고 귀족노조라고 하더라. 시대착오적 비판이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도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 나가야할 과제라고 본다”

-비판의 요지는 결국 노조의 도덕성과 사회적 연대성에 관한 것 아니겠나. 재정은 투명한가, 기득권 고수에 연연해 비정규직이나 중소 하청기업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일 것이다.

“재정 상황과 예산집행은 다 공개된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내부에서 즉각 불거진다. 어느 조직보다 투명하다고 자신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에만 떠넘기고 있지 않나. 문제 해결하려면 정규직의 양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04년에 (전력 노조위원장 당시) 비정규직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을 때 제가 850명을 노조에 가입시켜서 회사와 교섭을 했다. 그리고 2007년에 47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들에게 직급과 호칭을 만들어주고 정년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승진 사다리도 제공했다. 그 일을 10년에 걸쳐서 완성했다. 아웃소싱 업체에도 노조를 만들어 원청 회사와 교섭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올해 2월1일 (한국노총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1주일만에 조직개편 통해 미조직비정규직사업단 만들었다. 지금도 전국을 다니면서 순회토크쇼를 하고 있는데 핵심은 비정규직의 조직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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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김현호(오른쪽) 뉴시스 상임고문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17.11.15.  [email protected]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키고 조직화해서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더라도 정규직의 양보가 없다면 이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지 않겠나.

“정규직 노조가 양보할 수 있는 거는 그렇게 큰 부분이 아니다. 가령 노조가 사회연대기구를 만들고 급여의 일정부분을 반납해서 비정규직에 도움을 준다든가 하는 방식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수는 없다. 원하청간 공정거래 등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한다. 정규직들도 제대로 권리를 확보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독일은 원청기업과 1,2차 하청기업 노조가 함께 임단협을 하면서 서로 인상폭 등을 조정하지 않나.

“독일은 철저히 산별노조 체제라서 그게 가능하다. 우리도 산별노조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임단협은 기업별로 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산별교섭 체제로 법제화되면 우리도 독일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게 IMF사태 이후다. 사용자 쪽에서야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노조에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느라 이를 너무 쉽게 묵인한 것 아닌가하는 비판이 있다.

“노조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본다. IMF라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정리해고나 파견근로 이런 게 다 도입이 된거다. 경제위기가 끝나고 사실 안정적으로 갈 제도들을 마련했어야하는데 그 이후에 마련을 못했다. 더군다나 기업들도 신자유주의 공세에 적극 동조했고, 정부도 모범 사용자로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 정부 공공기관을 보면 설비와 업무량이 예전에 비해 엄청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줄이면 가점을 주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우리나라 노조가 노동자간 연대, 나아가 국제적 연대의식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한국 노조들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배타적이다. 치열한 투쟁끝에 임금수준 올렸는데 저임금 노동자가 몰려오면서 임금 낮추는 것 아닌가하는 적대감까지 드러낸다.

“한국 노동계는 IMF 위기를 겪으면서 초유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많은 분들이 직장에서 구조조정 됐다. 2003년에 IMF위기를 공식적으로 벗어났다고 선언을 했지만 2007년말부터 미국발 경제위기가 왔다. 우리 노동자들이 연이어 경제위기의 어려움과 공포를 겪으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임금투쟁이 생산성하고는 무관하게 가고 있다.

“생산성에 관해서는 과연 생산성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자료도 다양하다. 생산성이 단순하게 수치로 비교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그간 자기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했다. 그런데 정부와 기업이 IMF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업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그러다보니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당장의 임금 인상 등을 중요시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연간 쟁의가 일어나는 사업장은 100곳 이내이다. 전체의 1%도 안된다. 자기 회사 망하기를 바라는 노조원은 단언컨대 한사람도 없다. "

-고용의 경직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으로서는 해고의 문이 열려있지 않으면 신규채용을 꺼리게 마련이다. 청년 고용의 문도 좁아지고 있지 않나.

“한국은 고용의 유연성이 높은 편이다. 노동연구원 자료를 보면 집단해고율 등에서 OECD 국가중 4위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의 고용경직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청년 고용을 위해 해고를 쉽게 하자는 것은 아버지 내보내고 자식 채용하자는 것인데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집안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실직하면 그 가족은 재기불능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기업 문화나 관행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 가면서 접근해야 한다.”

-이쯤되면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이야기를 빌어오지 않을 수 없다. 민노총 위원장 출신인 그가 얼마전 서울대 비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문제는 대기업의 노사가 부를 독점하고 있는 사실'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양대 노총(한국노총과 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화석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의 권력을 비정규직이 잡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일일이 코멘트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가 민노총 위원장이나 민노당 대표 때라면 그런 이야기를 했겠나 싶다.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소신이 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의 발언은 노사정 위원장으로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노총도 비정규직을 안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노사정 대화의 복원을 앞장서 주장하고 있는데 복안이 있는가.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노동계 대표가 얘기 하는 건 아마 우리 노사정 관계에서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이 제안을 내놓으면서 (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쨌거나 저는 이 사회의 갈등을 줄여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그렇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노동계의 양보를 주장하는 사회적 오피니언 리더들의 목소리가 높다는 사실도 잘 안다. 각계가 양보와 희생의 자세를 가져야겠지만 노동단체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계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각계의 주장이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노동계의 대표성이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돼 있는 것이 문제 아닌가. 우리 노동운동은 대기업 노-사 간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노-노 갈등이 더 문제 아닌가. 노동권력의 집중화 문제는 갈수록 비판이 드세지는 듯하다. 

“대표성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조 조직률이 10% 정도라지만 여기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누구를 대표로 인정하느냐. 많은 분들이 노동계 대표성의 위기를 말하지만 그래도 조직화된 노동자의 총본산에 대표성을 인정 안하면 어느 조직도 대표성 가질 수가 없다.”

-비정규직의 대표성을 어떻게 반영할건가. 잘못하면 노사정위원장이 비정규직을 대표할 사태까지 오지 않겠는가.

“그게 매우 어려운 문제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경제문제에는 노동문제가 근저에 깔려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여부도 결국은 노동의 양태와 질을 어떻게 잘 바꿔나갈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노동개혁이 절박하지 않은가.

“그런 취지에서 제가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책임있는 주체들이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저 혼자 뻘쭘해진 느낌도 든다. 우선 대통령이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주재해서 주체들 간에 신뢰를 쌓아가자, 그 신뢰를 바탕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어떻게 개편할 것이며 무엇을 의제로 논의할 것인지 이야기해 보자고 한 것이다. 쉬운 것부터 합의를 해나가면서 범위를 점차 넓혀 교육 주거 의료 조세 사회안전망 등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각 분야의 종합개혁안을 만들자, 그걸 상해임시정부와 국제노동기구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 건설을 위한 사회적 대선언으로 해보자는 것이 우리의 큰 구상이고 제안이다.”

-그 정도 일을 해내려면 김 위원장부터 한국 노동계의 슈뢰더가 될 각오를 해야 할 것같다. 자신과 노조를 희생해서라도 노동자와 국가는 살린다는 각오 말이다.

“저는 스스로 노동운동가라고 생각하거나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 다만 제가 정규직으로 있지만 제 자식들이 대를 이어 정규직 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놓아야 다음 세대가 좀더 행복하게 될까 그 생각 하나로 달려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아웃소싱 업체의 고용안정, 정년안정 법제화, 이런 문제들 달려들어 해보니 가능하더라. 그래서 한국노총 위원장이 되어서 조금이나마 간극을 좁혀보고자 했다. 한국노총 70년 역사에 위원장 세 번 도전해서 당선 된 사람은 제가 처음이다. 누가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함께 사는 길을 찾는 데 저의 모든 걸 바칠 각오이다.”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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