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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6년 김정은號 어디로 가나⓶]김영환 “北, 핵무장 빨리 끝낸뒤 경제개발 올인”

등록 2017-12-19 0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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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북한 주체사상을 정리한 교본 '강철서신' 필자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5일 오후 서울 퇴계로 뉴시스 본사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2017.12.12.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1990년대 학생운동권을 풍미한 '강철서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김영환(54)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5일 “북한 김정은 정권은 뚜렷한 타임테이블이 있다”며 “핵·미사일 개발을 빨리 끝내고 경제개발에 집중하려고 할 것”이라며 거듭되는 핵·미사일 도발의 배경을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날 오후 뉴시스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핵무기·미사일 무력을 완성하면) 북한이 국방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군인도 줄여 개혁·개방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을 한 뒤 경제 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젊은 사람들은 다 군에 가 있다. 복무기간이 10년"이라며 "병력이 120만이고,국방비가 GDP의 24%"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도널트 트럼프 행정부를 위협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주한미군 철군과 한반도 적화를 노리는 대전략을 구사한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말도 안된다"며 일축했다.  주한 미군이 어떤 이유에서든 철군한다고 해도 남·북한 국력차가 커서  북한이 주도해 한반도를 적화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5편의 ‘강철 서신’으로 학생 운동권과 재야를 격동시킨 주체사상 이론가 출신이다. 주체사상을 국내에 소개하고, 광주민주화 운동과 미국 책임론을 제기한 이 때가 불과 23세였다. 지난 1991년 5월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지만, 주체의 나라 북한과 동구권의  남루한 현실에 실망해 전향한 뒤 북한 민주화 운동을 펼쳐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잠수정을 타고 평양에 몰래 들어가 김일성 주석을 만난게 1990년대 초반이지 않았나.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1991년 5월이었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기 직전이었고, 구소련이 무너지기 수개월 전이었다. ”


-강철서신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학생운동권의 별이 위험한 바닷길로 평양에 가 김일성을 만나야 할 절박한 이유라도 있었나.

“북한의 철학자들, 그리고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일성과  새로운 사회주의에 관해 토론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있었다. 그래서 북한에 가자마자 최고급 철학자, 사회학자들과 미래지향적 사회주의를 토론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졌다. 동구권이 붕괴되며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이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닌가는 생각을 했다. ”


-무너지는 사회주의 재건의 해법을 찾고 싶었다는 뜻인가.

“제가 대학 다닐 때  서울대에서 고전연구회 활동을 했다.  후배들에게 자본주의 국가가 무너진 경우는 있어도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진 사례가 없지 않느냐는 애기를 자주 하고 다녔다. 그런데 한 두개 나라가 아니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거의 싹 무너졌다. 아 이거는 계급론 등 사회주의 이론 자체에 뭔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렵지는 않았나.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0년대초 김일성과 만났을 때 청산가리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김일성 주석이) 말을 참 잘하더라(웃음). 기억력도 상당히 비상했다. 카리스마가 있고, (성품 또한) 온화했다.  친절하고 인간적인 공산주의 리더라고 할까. 텔레비전에서 보던 (김 주석의) 이미지와 부합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김일성이 남한에서 온 학생운동권의 스타 ‘강철’에게 당시 무슨 말을 하던가.

“(김 주석은)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앞두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우리가 반발할 것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1991년 5월은)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기 직전이었다. (남한) 운동권에서는 당시 (영구분단을 우려해) 동시 가입에 반대했다. 김일성 주석과는 당시 이틀에 걸쳐 만났다. 6시간가량 대화했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


-1990년대 초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송두리째 무너지던 격변기였다. 김 주석이 남한의 대학생을 만날 여유가 있었을까.
  
“(김일성 주석은) 자신들이 겪는 정치적 위기, 경제적 위기, 외교적 위기 등 '트리플 위기'에 대해 당시 절박함을 잘 못 느끼고 있었다. 실무를 김정일에게 이미 많이 떠넘긴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이 (그의 이러한 판단에도) 영향을 준 거 같다. 물론 고령인 나이도 무시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이도 그때 79센가 아마 그랬을 거다. 그때는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붕괴되기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김일성이 남한 운동권의 스타를 왜 북으로 불렀다고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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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실, 여관, 종합상점, 신축 주택, 삼지연 청년역, 삼지연못가역 등 삼지연군의 시설들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일 보도했다. 이날 시찰에는 최룡해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김용수 부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리상원 량강도 당 위원장, 양명철 당 삼지연군 위원장, 마원춘 국무위원회 국장이 동행했다. 2017.12.10. (사진=조선중앙TV 캡처) photo@newsis.com
“남조선 혁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김영환이라는 친구가 남한에서 뭔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 이 친구가 남조선 혁명을 이끌 핵심 리더가 돼 뭔가 큰 작품이 나오겠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 했을 것이다. ”


-북한에 다녀온 뒤 불과 3년 만에 주체사상을 버렸다. 방북이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계기가 된 것인가.

“(방북 당시) 북한 학자들, 김 주석과 이틀에 걸쳐 토론을 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논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당과 국가가 정한 텍스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학자들이야 앵무새처럼 그럴 수 있지만, 김일성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사고는 30년 항일 빨치산 활동 당시에 머물러 있었다. 전략 전술 이론이 더 이상 변화 발전이 없었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공부를 안했더라. 철학적인 토론을 하기가 어려웠다. ”


-김일성조차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을 제대로 몰랐다는 뜻인가.

“(김 주석이) 철학적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공부를 안했다는 거다. ”


-주체 사상의 교조주의적이고, 획일적 성격이 결국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뒤처지는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가.

“김일성이 통치하던 북한은 모든 게 규격화되고 통제된 사회였다. 누구 집에 숟가락, 밥그릇이 각각 몇 개 있는 지 까지 철저히 알고 감시하는 사회였다. 학생들도 등하교 때 줄을 딱딱 맞춰 이동했다. 사회가 잘 조직돼 있었지만,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는 그런 사회였다. 김일성 시대에 북한은 이미 망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김정일 시대 들어 탁 터진 것이다.”


-김정일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망해가는 국가를 살려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리더십의 문제는 없었나.

“김정일의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장 문제도 그렇다. 통제하고 억압했다가 다시 풀었다를 반복했다. 대중국 정책을 비롯한 대외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정일  시대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거다. 김정일은 늘 좌고우면하는 리더였다. 물론 그 여건은 사실, 김일성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김일성 때 북한 경제는 이미 망가지고 있었다. ”


-북한은 결국 김정일 시대 들어 통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부패도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깊은 이상한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기근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북한 주민들도 그 전에는 겁이 나서 뭘 못했는데 앉아서 죽느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통행증 없이 다른데 가면 안 되는데도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 심지어는 국경까지 넘었다. 이런 현상이 사회에 만연했다. 기존의 통제 시스템이 균형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무너졌다. 그게 관료들까지 확산했다. 관료들도 굶어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살아날 방법은 뇌물이다. 그래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김일성 때라고 부패가 없었겠는가.

“(부패는) 그 이전부터 조금씩 있었지만, 1990년대에 가파르게 확산됐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기존의 통제 체제가 완화되고 제 기능을 못하면서 주민들의 자율적인 공간이 늘어났다. 외부에서는 장마당만 보지만, 사람들의 친교 관계라든지 여러 측면에서 자율적 공간이 확대됐다.”


-김정일은 우유부단한 지도자였나. 중국 선전, 주하이를 비롯해 상전벽해의 현장을 둘러보고도 과감한 개혁개방의 대해로 나가지 못했다.

“김정일은 늘 오락가락했다. 이상이 없는 리얼리스트라고 할까. 개혁개방을 하다가 북한이 망할 수 있다는 걸 생각했다. 그는 그래도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고민하다 다시 주저 앉았다. 김정일 시대는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정치적으로도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다. 행정 시스템도 붕괴된 상태였고. 그러다보니 통제도 잘 안됐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보는 사람들이 급증했지만,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꾸준히 국경을 넘었다. 현실적 문제만 자꾸 고려하다 보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게 김정일 시대였다.”


-그런 논리라면 북한경제는 지금쯤 무너졌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지난해 북한경제 성장률이 3.9%다.

“무엇보다, 김정은 시대는 시장정책의 일관성이 있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그 다음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한다.  그런 게 있어야 과감히 투자를 하고 적극적인 시장 활동도 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투자했다가 갑자기 정부가 태도를 달리하면 돈을 날릴 수 있지 않겠나. 사람들이 정책을 신뢰하고. 투자도 과감하게 하고 산업 활동도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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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2돌을 맞아 인민군 장병들과 각계층 근로자, 청소년 학생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꽃바구니를 진정했다고 11일 보도했다. 2017.10.11.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김정은 집권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가 탈북자 수의 감소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탈북자들에게 돈을 받고 국경을 통과시켜주던 국경 경비대들도 두려움을 느끼는 거다. 이들이 지역보위부에 상납을 하고, 또 군 직속 상관에게 뇌물을 주는 부패사슬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갑자기 평양에서 감사반을 보내 돈 받은 경비병을 적발해 총살을 하니 겁이 나서 그걸 못하고 있다. 월경도 300달러에서 400달러 정도를 주면 됐다. 지금은 뇌물 받는 경비를 찾는 게 어렵다. 그러다보니 위험수당이 붙어서 이제는 2000달러씩 줘야 겨우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뇌물 없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던 북한 사회가 김정은 집권 이후 달라지고 있다는 뜻인가. 

“북한에는 뿌리 깊은 부패의 사슬이 있다. 그러니까 (관료들이) 뇌물을 과감히 받을 수 있는 것도 (더 윗선에) 상납을 주기적으로 잘 했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다 걸려도 위에서 또 봐준다는 얘기다. 부패가 심한 나라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김정은이 그 권위를 과감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무 잔혹하게 사람을 처형하니 상납을 받던 관리들도 위축됐다. 겁이 나지 않겠나. 이걸 봐주다가 정치범 수용소에 가는 정도가 아니라, 화염방사기로 죽을 지도 모르는 그상황이니까 뇌물을 못 받는 거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비해 행정 시스템이 많이 정상화됐다. ”


-북한이 지금까지 핵실험을 6차례 했고, 이 가운데 4차례가 김정은 시대 들어와 이뤄졌다. 경제가 중요하다면 이럴 수 있는건가.

“일단 핵무기가 있어야 못 쳐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선의만을 어떻게 믿겠나. 김정은은 분명한 타임플랜이 있다. 북한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핵과 미사일을 하루빨리 완성해 국면 전환을 해야지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젊다. 최소한 40년~50년을 더 다스려야 하는데, 북한을 언제까지 낙후된 상태로 내버려두려고 하겠나. 미국이 (핵 동결을) 수용할 리 없겠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안 한다고 나오면 한국 중국 양국은 그래도 경청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김정은 타임 플랜의 마지막 칸은 무엇인가. 

“북한의 젊은 사람들은 다 군에 가 있다. 복무기간이 10년이다.  인구가 얼마 안 되는데. 병력이 120만이다. 국방비가 GDP의 24%다. 사실 아주 돈이 막 넘쳐나는 나라도 국방비가 GDP의 24%면 아주 힘들다. 경제개발이 되겠나. (핵·미사일 무력을 완성하면) 북한이 국방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군인도 줄여 개혁개방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임플랜이 분명하다. 빨리 끝내자. 그 다음에 경제개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가 실패한 지점에서 풀어나가야 하지 않겠나.

“백약이 무효다.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북한이 핵과 ICBM개발을 안하도록 그 의지 자체를 분쇄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안이나 당근을 줘서 그것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다. 김정은은 결코 그럴 의사가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를 위협하는 상대에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의 발전된 사회상 그 자체가 북한에는 위협이다. 그래서 한국과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아하는 그런 생각이 있다.  한국정부가 북한에 우호적 태도를 취한다고 해도 남북관계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한국과 미국 양측이 북한의 핵 동결 제안을 거부한다면  김정은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있는가.

"북한이 국면 전환을 시도했을 때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외면하거나 그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어쨌든 북한을 괘씸하게 보고 뭔가 교훈을 줘야 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이 나라를)  완전히 버리자는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중국에는 많지 않다고 본다.”


-북한이 핵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손발을 묶은 뒤 장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적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말도 안된다. 지금 북한 실력가지고 우리랑 뭔가 한판 붙어보자 이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거다. 주한미군이 없다고 해도 김정은이 뭘 생각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먼 미래에  돈도 모으고 기술도 발전시켜서 엄청나게  고도화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그 때가서는 모르겠다.  한 20년후나 30년후가 될까. 그때 가서 (남한과) 한판 붙자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


-끝으로 김일성 일가 삼대를 평가해달라. 할아버지는 결국 과거에 머물렀고, 아버지는 우유부단하지만, 아들은 결단력이 있다고 볼 수 있나.

“김정일을 보자. 농업개혁도 김정일 시대는 말뿐이었다. 김정일 때는 농업개혁을 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농업개혁을 얘기하면 반동분자로 몰았다. 일관성이 없었다. 농업개혁 한다고 떠들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관료들도 그러니까 못했다. 김정은 시대에는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집단 농장에서 가족농으로 가는 농업개혁도 확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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