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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백년, 한국인들 ‘죄의식과 부끄러움'

등록 2017-12-17 09:12:12   최종수정 2017-12-26 09: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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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우리는 비로소 왜 '외딴방'의 작가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저토록 망설이면서 힘들게 꺼내놓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작가는 그것이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혹은 희재 언니의 죽음이 준 충격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밑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성공서사에 대한 거부감, 그런 구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410쪽)

서영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가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냈다. '한국인'이라는 주체의 형성사를 계보적으로 추적한 책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서 교수를 사로잡은 화두는 '한국인'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나쓰메 소세키와 이광수의 소설들이다.

식민지 모국(비록 일본도 근대화가 이식된 나라이지만)의 작가 소세키와 식민지의 작가 이광수가 인물을 형상화해낸 방식이 왜 그렇게 서로 다른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근현대 한국소설들을 다시 해석하게 됐고, 그 결과 '(식민지)근대성'과 '주체 형성'이라는 짝을 도출하게 된다. 이 주제를 가지고 2011년 이후 발표한 글들을 저본으로 해 책을 썼다.

"이청준에게 원죄에 해당하는 것은 어머니/고향/가난이다. 그래서 그것은 속물적 부끄러움의 원천이면서 또한 윤리적 주체가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자긍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자랑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것이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윤리적이 된다. 오로지 그 순간이 있어야 그는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반성적 주체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정신의 지향성을 가지고 실천하는 주체가 된다. "(258~259쪽)

"그것 '자기희생의 모럴'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전이라는 드라마에 의해 조형되는 것으로서, 피해자의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능동적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또한 식민지적 집단 주체의 이상적 모델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126쪽)

'유정'의 최석, '광장'의 이명준, '당신들의 천국'의 조백헌, '백년여관'의 이진우, '외딴방'의 주인공 소녀……. 근현대 한국소설의 대표작과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그 시대 독자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독자들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벌인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혹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왜 독자들은 그런 행동들에 울고 웃고 안타까워하고 속 시원해하는가?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자 저자는 주인공과 작가의 마음속, 더 나아가 '시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한국인'들은 근대를 맞이하면서 네 개의 관문을 지나왔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 분단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정치적 압제기,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이 그것이다. 거기에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월호 이후부터 촛불집회가 있다.

이런 현실들이 작가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특히 어떻게 비틀리고 일그러지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본 책이다. 이 비틀림과 일그러짐이 개인을 넘어 그 시대 사람 다수에게 공감을 얻게 되면 그것이 바로 '시대의 마음'이 된다.

저자는 "주권 없는 주체들과 더불어 지난 백년을 통과해오면서, 한국소설은 그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기록해왔다"며 "어느 순간 죄와 책임의 일치라는 기적적인 순간을 맞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스스로를 주권자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소설 백년은, 그 쉽지 않은 단련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한 공동체의 시민 주체로 받아들이게 된 마음의 역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한 자락을 들여다본 시선의 기록이다." 476쪽, 나무나무,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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