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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좇지 않고도 풍요로운 삶, 정상희 '나무에게 나를 묻다'

등록 2018-04-04 07:24:00   최종수정 2018-04-16 09: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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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플라스틱과 콘크리트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무를 통해 시간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묵묵히 채워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인의 대표적 욕망 분출구인 부동산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가 느리고 기다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무의 목소리를 전하는 책이 나왔다.

 정상희는 새 책 '나무에게 나를 묻다'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지만 나무라는 공통된 매개체를 통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는 다섯 사람을 만나 자연 그대로의 나무, 인간과 분리할 수 없는 나무, 침묵으로 이야기하는 나무의 메시지를 전한다.

 제주 환상숲 곶자왈 공원의 이지영 숲해설가,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운영하며 나무의 빛을 담는 원종호 사진가, 괴산 알마기타 공방에서 수제기타를 만드는 김희홍 명인, 단양 정향나무 농장에서 멸종위기 토종 라일락을 복원하고 있는 김판수 전 기자, 서울에서 우드카빙 공방 '어제의 나무'를 운영하며 나무를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남머루 나무작업가가 바로 그들이다.

돈을 좇지 않고도 인간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아는 이들이다. 저자는 이들과 함께한 짧은 여행에서 갈등·외로움·쓸쓸함·용기·소통에 어울리는 나무의 일생을 읽어내는 한편.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에 허우적대는 현대인에게 발 밑과 등 뒤를 돌아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한다.

 곶자왈공원에서는 숲은 고요하기만 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갈등하며 삶을 완성해가는 장소임을 알게 된다. 흙이 아니라 용암이 흘러 쌓여 생겨난 특이한 생태 환경에서 이뤄지는 사계절이 식물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는지, 우리는 얼마나 한 곳만 고집하며 살고 있는지를 일깨운다.
 
 자작나무숲에서는 정형화되지 않은 나무와 오직 침묵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쓸쓸함을 직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알마기타공방에서는 오랜 시간을 살아낸 나무가 아름다운 소리를 울리는 악기가 되기 위해 다시 숱한 기다림을 견뎌야 함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 최고의 소리에 다가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단양 정향나무농장에서는 토종 정향나무 복원에 힘쓴 남자의 고집을 통해 경제적 풍요를 위해 놓치고 살아온 작은 역사를 되돌아본다. 낮은 곳으로 내려와 부끄러워하며 슬며시 자라는 토종 라일락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있다. 공방 '어제의 나무'에서는 쉼 속에서도 목적과 노동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제대로 쉬는 게 무엇인지 나누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하루하루 '버틴다'는 말이 더 어울릴 팍팍한 일상에서 이 글을 펼쳐든 누군가 숲의 생명력에 조금이라도 감동할 수 있다면, 평생 행복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다는 말에 잠시 고개 끄덕일 수 있다면, 좋은 소리를 위해 수백 년을 기다린 나무에 슬며시 경외심이 든다면, 올 봄 길가에 핀 라일락을 보고 토종 라일락 한 그루 심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면, 나뭇결을 조금씩 덜어내다가 나중에는 숟가락이든 도마든 손에 쥐어지는 경험이 슬쩍 궁금해진다면…, 나무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도 될 것 같다고 고백한다. 246쪽, 1만3800원, 아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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