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지상의 모든 꽃이 아름다운 까닭, 최수철 '독의 꽃'

등록 2019-05-13 10:59:59   최종수정 2019-05-20 09:37:25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수철(61)의 '독의 꽃'이 나왔다.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몽구'는 특이한 질병 때문에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정권 주변을 맴도는 어용 문인인 아버지와 병약한 체질인 어머니 사이에서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낸다. 어머니라는 둥지 안에서 안주하려 하지만, 그것조차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휘두르는 정신·육체적 폭력 탓에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다.

급기야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독의 세계에 심취되어 몰두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삼촌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와의 동거는 두통이 발생한 원인이 아니라 두통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두통이라는 독에 맞서 싸우는 대신 독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도록 이끈다.

 몽구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구급차에 실려 종합병원으로 옮겨진다.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위에서 보툴리누스균과 프토마인균이 검출됐다. 그 균들로부터 방출된 독소가 몸에 흡수되면서 혈액을 통해 장기를 공격했는데, 말하자면 몸 전체가 독성 물질에 감염된 상태였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몽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던 그는 같은 병실 안에서 한 남자를 발견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강한 독성 물질에 감염됐다. 신경·면역계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던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듯이 웅얼거린다.

저주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한 그 소리에 괴로워한다. 처음에는 두 귀를 틀어막고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고, 밤마다 그 소리가 독물처럼 나의 귓속으로 흘러드는 듯해 섬뜩해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점점 사로잡힌다. 그리고 어느 새벽에 몽구는 온몸이 부드러운 털 모양의 가시로 덮이고 긴 이빨에 뱀처럼 갈라진 혀를 가진 존재를 목격하게 된다. 다음 날 그는 돌연 사라져버린다.

 이 소설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독인 동시에 약이다. 독을 한 가지 개념으로 규정하지 않고, 수많은 보조관념들로 은유하며 독에 관한 인식을 확장시킨다. 물질로서의 독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 증오심, 분노, 공포, 탐욕, 교만, 호색, 탐욕, 나태, 시기, 거짓된 신념, 진부하고 편협한 사상 등 의식에 침투하는 온갖 정신적 작용을 독으로 규정했다.

최 작가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곧 한송이 '독의 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살아 있는 매 순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외부의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다른 생명체를 공격적으로 섭취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하나하나야말로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말 또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모든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548쪽, 1만5000원, 작가정신


snow@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텝진으로 위클리 기사를 읽어보세요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