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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진정한 한국형 창작뮤지컬을 만났다···'신과 함께, 이승'

등록 2019-06-29 11:46:20   최종수정 2019-07-09 09: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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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은 (거칠게 말하면) 판타지에 기반을 둔 장르다. 비극적 이야기라도, 지금 우리나라 현실과 거리를 둔 ‘안전장치’가 있는 극이 인기다. 한 때 뮤지컬업계를 지배한, 슬픔으로 가득 찬 유럽 중세 이야기를 떠올리면 수긍 가능하다.

작가 주호민(38)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뮤지컬) ‘신과 함께_이승편’은 우리가 외면하고자 하는 현실을 돌파하는 뚝심이 돋보인다.

웹툰은 꼭 10년 전인 2009년 빚어진 비극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삼았다. 이 원작은 1000만 영화로도 변주됐는데, 각색되면서 이 부분은 가려졌다.
 
한국형 히어로 이야기를 코믹하게 변주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가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과도하게 혹평을 받았던 영화 ‘염력’(2017·감독 연상호)의 흥행 실패에서 보듯, 대중문화에서 사회적으로 무거운 이야기는 환영 받기 힘들다.

29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신과 함께_이승편’은 어느새 우리 잠재의식의 우물에 깊게 파묻은 일들을 길어 올린다. 철거지역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는 현실들이 비수처럼 마음으로 파고든다.

집안의 운수를 관장하고 그 가정을 책임지는 ‘성주신’, 부엌과 불씨는 지키는 부뚜막신으로 통하는 ‘조왕신’ 등 집을 지켜주는 가택신이 우리집에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게 든다.

그렇다고 ‘정통 사회파 뮤지컬’은 아니다.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할아버지 ‘박석용’과 손자 ‘김동현’의 안타까운 사연을 중심으로 동네사람들의 연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신을 믿지 않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는 신쯤은 있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어둠이 긴 터널을 지나면 따듯함과 함께 뭉근한 희망이 배어난다.

“살릴 사람도 죽을 사람도 다 사라지면 신도 차사도 다 필요 없죠”(넘버 ‘누군가의 신이 된다는 것’ 중)라는 노랫말처럼, 한아름 작가의 가사와 대사는 어두운 이야기의 중력에 마냥 매달려 있지는 않는다.

 민찬홍 작곡가의 노래의 힘도 뮤지컬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음악적 기교를 부리기보다, 이승과 저승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웹툰과 뮤지컬처럼 조화와 화음을 중시하는 넘버들이 골목마다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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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공연 장르를 오가는 연출가 김태형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뮤지컬의 밸런스를 붙잡아 준다.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의 정겨운 무대도 특기할 만하다.

배우들도 조화를 이룬다. 가택신의 리더 성주 역의 고창석·철거 용역 일을 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박성호’를 연기한 오종혁·극 중에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동현 역을 아역답지 않게 소화한 이윤우 등 객원들과 김천규 역의 지도위원 박석용·조왕 역의 송문선·카리스마 넘치는 저승차사 해원맥 역 최정수·막내 저승차사 덕춘 역 김건혜 등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오래 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죽이 척척 맞는다.

국산 창작이더라도 해외의 것을 많이 차용하는 흐름에서, 진정한 ‘한국형 창작뮤지컬’을 만났다. 웹툰과 영화의 아우라에 눌리지 않고, 무대만이 할 수 있는 문법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또 기대해봄직한 것은 시즌제. ‘신과 함께’는 김용화 감독의 ‘쌍천만 영화’가 유명하지만, 웹툰을 다른 장르로 먼저 변환한 것은 뮤지컬이다. 2015년 서울예술단이 뮤지컬 ‘신과 함께_저승편’을 초연했다. 2017년 재연, 2018년 삼연까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번 ‘신과함께_이승편’은 서울예술단 ‘신과 함께’ 시리즈 2편인 셈이다. 1편에 대한 평단의 평도 좋아, 뮤지컬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게 됐다. 최정수, 김건혜는 전편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 출연했다.

‘신과함께_이승편’에는 저승편에 나왔던 저승삼차의 우두머리 ‘강림도령’이 저승일이 바쁘다는 설정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극의 마지막에서 해원맥이 웹툰에도 있는 ‘신화편’을 언급하며, 시리즈 3편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서울예술단의 신과 함께는 엄밀히 말하면 드라마식 시즌제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서울예술단은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릴 수 있는 환경과 최정수·김건혜 등 보유단원들 덕분에 이전 설정과 캐릭터를 가지고 충분히 시즌제를 이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신과함께_이승편’은 단편의 완성도와 함께 시즌제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뮤지컬에서 이해되지 못할 세계는 없다. ‘신과 함께_이승편’에서 평행선을 달릴 것 같던 저승과 이승의 세계도 공존했다. 이해하지 못할 사회에 의해 내동댕이쳐질지도 무대는 위로를 준다. 무대는 환상이자, 이곳을 투영한 현실이라는 것을 ‘신과 함께_이승편’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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