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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여름 록페스티벌, 한국에서는 사실상 끝났다

등록 2019-07-24 11:30:37   최종수정 2019-08-05 09: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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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2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형 록 페스티벌이 개막 사흘을 앞두고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26~28일 경기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9 지산 락 페스티벌’을 주최·주관사 디투글로벌컴퍼니가 23일 돌연 취소했다.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업계와 록 팬들은 분통을 터뜨리지 않았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록 음악의 하향세는 세계적인 추세지만, 국내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지산 락 페스티벌’ 취소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면서,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한국형 록페스티벌이 열린 지 20주년을 맞는 해다. 소수의 록 팬들은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잊을 수 없다. 악천후로 첫 날 몇 팀 공연만 열리고 나머지가 취소되는 등 공연 환경은 엉망이었지만, 한국 록페스티벌에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이후 몇 년 간 열리지 못하다가 2006년부터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라는 이름으로 재개됐다. 그러나 이 축전을 함께 치러온 두 공연기획사가 이견을 드러내면서 2009년 페스티벌이 2개로 쪼개졌다.

이때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라는 양대 록 페스티벌 구도가 형성됐다. 인천 펜타포트는 하드록, 출연자 섭외력이 뛰어난 지산 밸리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록 팬들을 끌어모았다. 그러다가 2012년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가 지산 밸리에 헤드라이너로 나서면서 한국 록 페스티벌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2013년 수도권의 여름 대형 록 축제가 5개가 난립한 이유다. 하지만 섭외 경쟁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솟은 외국 톱 밴드의 출연료, 한정된 수요 등으로 인해 상승세는 이내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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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2018
록페스티벌들이 색깔·메시지 전달 능력을 상실, 청중과 공감대를 이루는 데 실패하면서 ‘록페스티벌의 종언’이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렸다. 이 음악산업적 논리에 동의하느냐 여부와 별개로 피로감이 가장 컸다.

결국 2010년부터 지산 밸리 주최사로 나섰던 콘서트 업계 큰손 CJ ENM은 2017년을 끝으로 축전을 내려놓았다.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는 건너뛰었다.
 
규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록밴드가 아닌 EDM과 힙합 팀을 대거 라인업에 올리면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소 콘서트기획사인 디투글로벌컴퍼니가 올해 새로 맡았다. 하지만 대형 페스티벌을 운영한 경험이 적어 업계의 우려가 컸다. 제작사간 소통 문제, 투자금 미지급 등 중간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음악계 메인 스트림에서는 아예 관심을 접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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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 브라더스
게다가 굵직한 해외 록밴드를 불러오려면 지난해부터 섭외에 들어갔어야 했다. 눈에 띌 만한 팀들의 섭외에 실패했고 국내 팀 위주로 라인업을 꾸렸다. 록 팬들이 이천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티켓 값을 대폭 할인했으나 관객은 요지부동이었다. 출연 예정이던 팀도 취소 사실을 몰랐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디투글로벌컴퍼니는 티켓 값을 전액 환불하고 인근 숙소 예약을 한 관객들에게 취소 수수료도 지불하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당분간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집단소송을 당해도 싼 페스티벌"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상 올해 수도권 대형 록페스티벌은 8월 9∼11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펼쳐지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하나다.

하지만 펜타포트가 순항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밴드 ‘위저’와 ‘더 프레이’, 일본 밴드 ‘코넬리우스’를 헤드라이너로 내세웠지만 예년보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수년간 펜타포트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기획사 예스컴 대신 경기일보가 공동주관사로 들어왔다. 오랜 기간 이 축전을 공동주관한 인천관광공사는 여전히 함께 한다.

지역 록 페스티벌의 대표격으로 27, 28일 부산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리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록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20회를 맞은 올해부터 유료로 전환하고 라인업을 강화했다. 1.5세대 그룹 ‘god’, 영국 전자음악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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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

록페스티벌이 록밴드가 아닌 EDM과 힙합 팀을 대거 라인업에 올리면서 축제 성격이 변질됐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록 음악은 이미 하락세라 축전 주관사들의 고육지책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대중음악 시장이 음원에서 공연으로 재편되면서 정작 페스티벌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꽤 괜찮은 이유다.

27, 28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펼쳐지는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HLF)에는 영국 덥스텝 아이돌 제임스 블레이크, 해외 팝으로 드물게 국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한 ‘2002’의 주인공 앤 마리, 올해 그래미상에 빛나는 H.E.R.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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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8월15일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올해 처음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유어썸머’ 라인업이 가장 화려하다. 세계 최정상급 DJ 제드를 비롯해 신스팝 밴드 ‘처치스’, 영국 팝 밴드 ‘프렙’, 다국적 밴드 ‘슈퍼올가니즘’ 등이 나온다.

이미 화려한 라인업보다 콘셉트와 정체성이 분명한 음악 축전들은 인기였다. 정통 재즈와 대중음악이 고급스럽게 섞인 ‘서울 재즈 페스티벌’, 우리음악의 고수들을 내세운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 등이 주목 받고 있는 이유다.

휴식을 콘셉트로 삼은 프라이빗커브의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는 올해 3회째를 앞두고 있는데 급격하게 인지도를 쌓았다. 10월 5, 6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이번 축전에는 그래미 18회 수상에 빛나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스팅, 덴마크 팝 솔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등이 나온다.

록 밴드는 한국의 록 축전 대신 단독으로 내한공연하는 일이 잦아졌다. 라디오헤드의 프런트맨 톰 요크는 28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으로는 첫 내한공연한다.

아일랜드 록 밴드 'U2'는 결성 43년 만에 첫 내한공연한다. MBC와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주최·주관으로 12월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 팬들을 처음 만난다.

지난해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재조명된 영국 밴드 '퀸'도 단독 공연으로 한국을 다시 찾는다. 퀸은 결성 43년 만인 2014년 8월14일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펼쳐진 록 페스티벌 '슈퍼 소닉 2014'의 헤드라이너로 첫 내한공연했다. 이번에는 2020년 1월 18, 1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5 퀸'을 통해 한국 팬들을 만난다.

콘서트 업계 관계자는 “이제 록밴드만으로 라인업을 꾸리는 축전은 힘들 것”이라면서 “힙합과 전자음악 스타가 어우러지거나, 대형 록스타의 단독 공연으로 콘서트 시장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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