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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영감의 도구…'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등록 2019-12-17 06:00:00   최종수정 2019-12-23 09: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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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젊은 창작자들의 연필 예찬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사진 = 자그마치 북스 제공) 2019.12.16.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스마트폰과 컴퓨터 키보드가 더욱 익숙한 시대, 여기 여전히 연필을 쓰는 젊은 창작자들이 있다. 시인, 만화가, 매거진에디터, 공간디렉터, 북에디터, 에세이스트, 작곡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등 이들에게 연필은 곧 '영감의 도구'이자 치열한 창작 활동 속의 '한 숨 돌릴 여유'이다.

최근 출간된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는 이들의 연필 예찬을 담고 있다.

"연필을 쓰면서는 소리에 집중하게 됐다. 슥슥삭슥삭 소리가 나야만 했다. 이 사운드는 흡사 ASMR이라 보아도 무방해서 쓰다보면 마음 속 고민의 파도는 이내 잠잠해진다." (시인, 태재)

"연필은 나무로 된 부분 덕에 더욱 연필다워지는 것 같다. 깎아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강제적으로 그림의 진행을 잠깐씩 멈추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번거로움과 불편함으로 인해 정서적 치유, 재충전, 측정 및 각성, 추억 소환, 설렘 등의 효과가 생겨나기도 한다." (만화가, 재수)

단순히 이런 감성적인 부분도 언급되지만 자신들의 창작 활동에 있어 연필 사용으로 인해 도움 받는 부분, 연필을 씀으로써 배워 온 부분도 담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는 앞으로 노트에 쓰게 될 글자들과 그려질 선을 떠올린다. 서두르지 말 것. 완벽한 모양을 기대하지 말 것. 부러져도 상심하지 말 것. 그리고 언제나 써야 할 말보다 더 많은 연필을 준비할 것. 연필을 깎아 온 수많은 시간 동안 그런 것을 배웠다." (공간디렉터, 최고요)

"연필을 들이대는 동안 나는 안전했다. 얼마든지 틀리고 게으름 부릴 수 있었으며, 무언가를 확정하지 않았으니 책임을 질 일도, 무너질 일도 없었다. 무언가를 적어 놓았더라도 언제든 철회하면 그만이었고 지우개로 박박 지우면 흔적이 남지 않았다."(편집자·작가, 김은경)

또 연필은 이들에게 그간 노력한 시간과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내 오른손에 있는 굳은살은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입시생도 아닌 서른 살 직장인 손에 굳은살이 있다는 건 매일 연필을 쥔다는 뜻이니까."(매거진 에디터, 김혜원)

"연필로도 써보고, 샤프로도, 수성펜으로도, 유성펜으로도, 만년필로도 써 봤지만 연필이 마음을 가장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필로 글씨를 쓰는 동안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저 쓰는 행위에 집중하게 됐다." (손글씨 크리에이터, 펜크래프트)

이들에게 쓰고 긋고 그린다는 것은 작업들을 독려하는 하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좋은 문장보다는 올바른 문장. 수려한 문장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 그런 문장은 마치 그 안에 무게 추를 심어둔 것처럼 의미에서도, 형식에서도 치우침이 없다. 그 균형 감각을 나는 옮겨 쓰기를 통해 배웠다." (에세이스트, 한수희)

"연필을 쓴다는 것은 깎고, 다듬고, 쓰고, 지울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작은 연필 하나로 이토록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연필이 좋아서 연필을 수집하게 됐다." (문구 편집숍 운영·연필수집가, 흑심)

9명의 연필 예찬은 단순히 연필이라는 도구로부터 얻는 만족감이나 창작에서의 영감에 그치지 않는다.

"연필의 흔적이란 쉽게 지워질 수 있으나 정작 아무도 잘 지우지 않는 흔적이다. 심지어 지워진 후에도 으레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는다. 지워질 가능성이 있으나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연필의 흔적이자, 인간의 흔적이다." (작가·작곡가·유튜브 크리에이터, 김겨울)

연필을 쓴다는 것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추억이자 향수이다. 나아가 김겨울 작가의 해석처럼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는 일상과 누군가들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다.

연필의 새로운 쓰임을, 그 가치를 되뇌어보는 것. 그저 유행을 따라 '레트로 갬성'을 쫓는 일보다 훨씬 갚진 경험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196쪽, 자그마치북스, 1만2800원.


◎공감언론 뉴시스 jmstal0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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