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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생충' 음악감독 정재일 "살풀이 준비 중입니다"

등록 2020-02-02 09:33:59   최종수정 2020-02-10 10: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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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서 단독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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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재일. (사진 = 블루보이 제공) 2020.02.02.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영화 '기생충'과 '옥자' 음악감독, 수퍼 밴드 '긱스' 출신으로 이소라·윤상·박효신·김동률·보아·아이유·이적 등 정상급 대중음악 뮤지션 음반의 연주자와 프로듀서, 국악 기반의 월드뮤직그룹 '푸리' 출신, 소리꾼 한승석과 함께 작업한 '바리abandoned'와 '끝내 바다에'······.

이뿐만 아니다. 연극 '그을린 사랑', 양손프로젝트의 '배신',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무용극 '어린왕자' 그리고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장민승 작가의 '보이스리스'와 아트필름 '오버 데어' 등 연극, 뮤지컬, 미술과 전시 분야에서도 정재일(38)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음악 전집 또는 음악 백과사전쯤을 거뜬히 낼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한 삼십대 후반의 이 젊은 음악가는 불혹도 안 돼 국내 음악가 역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 '전방위 뮤지션' '천재 음악가'라는 수식을 달고 다니는 그의 악보의 음표들은 사실 벼락같은 영감으로만 찍히지 않는다.  

최근 한남동에서 만난 정재일은 "피아노 앞에 앉은 것이 작곡의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사무실 책상 앞에 앉는 것을 시작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고객)예요. 그 분들이 의뢰를 해주시면 원하시는 것을 잘 반영해서 곡을 쓰는 것이 제 일이죠."

그런데 이렇게 근면성실하게 작업해온 정재일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가진 것을 많이 써서 지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쯤 살풀이를 한번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살풀이는 타고난 살(煞)을 풀기 위해 하는 굿을 가리킨다. '살'은 사람을 해치는 독한 기운이다.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했고 기점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콘서트를 열게 된 거죠."

정재일식 살풀이이자 생존을 위한 기점이 바로 콘서트인 셈이다. 공연기획사 블루보이와 함께 15일 오후 6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여는 단독 콘서트 '정재일 인 콘서트'가 그 자리다. 이 공연은 티켓 예매를 오픈하자마자 단숨에 매진됐다. 시나위 형식의 곡을 비롯해 정재일이 그간 꾹꾹 쌓아온 레퍼토리를 정리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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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2019.09.11. ⓒ페이지원
"고갈된 느낌이 들어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어려워졌어요.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 콘서트가 그 계기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있어요."

정재일은 다양한 음악작업을 하지만 독집을 낸 지는 꽤 됐다. 스무살이 갓 지난 2003년 자신의 첫 앨범 '눈물꽃'을 발표하면서 솔로 아티스트로서 존재감을 입증했다. 2010년 발매한 솔로 2집 '정재일'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재일은 당분간 솔로 활동 계획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지금 하고 싶은 건 클라이언트와 작업이에요. 아티스트와 작품을 매개로 다양한 장르를 하다 보니까 싱어송라이터로서 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욕심도 생기지 않네요. 비대중적인 음악을 만드는 제가 '내 음악을 내도 될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20대 때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야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싹 사라졌어요."

특히 "팝 음악은 그 음악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내밀한 과정이 필요한데 고갈된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는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이고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하지만 '바득바득' 자신의 음악 흔적은 기록을 하고 있다. "영화음악도 하고 있고, 연극 음악도 하고 있고 다양한 것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재일 음악을 하는 것이기도 해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음악은 연극을 위한 것이지만 정재일의 음악이기도 해서 OST를 내기도 했죠."

사실 의뢰를 받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창작가의 내밀함을 담은 소재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크기 때문이다. 정재일은 "제가 창작자의 그 내밀함을 나름 감지해서 곡을 쓴다고 해도 의뢰를 하신 분이 싫어할 수 있죠. 양측이 원하는 것이 잘 맞으면 제 곡이 통과가 되는 거죠"라고 했다.

이자람·김주원 등 스타들을 앞세운 초연을 지난해 11월 폐막한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이지나 연출과는 과거에 '클럽 살로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작업했다. 그래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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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기생충'. 2019.05.27.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칸 국제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의 '외국어 영화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 음악 역시 창작자와 정재일의 내밀함이 잘 맞아떨어진 좋은 사례다. 봉준호 감독과는 앞서 '옥자'에서도 시너지를 냈다.

'기생충'의 수록곡이자 정재일이 봉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뒤 만든 '소주 한 잔'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제가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은 불발됐지만 예비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와 별개로 '기생충'의 오리지널스 코어로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와 '청룡영화상' 음악상 후보, '부일영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생충' 음악의 주된 정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중기에 유행한 바로크 양식에서 차용했다. 우아하지만 어딘가에 애조가 깃든 것 같고, 점잖게 정색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뽕짝' 같은 분위기가 숨어 있는. 즉, 시치미를 떼고 짐짓 모른 척하는 영화 '기생충'의 태도와 기가 막히게 접점을 이뤘다. 정재일은 "결국 봉준호 감독이 만드신 크리에이티브한 화면을 받아들였을 뿐"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정재일은 올해도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이어나간다. 정동극장이 개관 25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리는 발레리나 김주원의 '사군자-생의 계절'(10월22일~11월1일) 등이다. 동시에 살풀이 같은 이번 콘서트를 기점으로 조금씩 무대에 서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는 기대도 조심히 하고 있다.

정재일에게 특기할 만한 또 한 가지는 '아티스트에 연연하지 않는' 점이다. 정재일은 "그런 부분을 늘 경계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계에 몸을 담았잖아요. 허용되면 좋지 않은 것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허용이 돼 무너지는 사례들을 봐왔어요. 예술로 포장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 예술로 포장되는 것은 질색이에요. 저를 객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객관화가 가능한 이유로는 '예술적 벽을 일찍 만났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제가 말러 교향곡 같은 곡은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계속 벽들에 부딪혔죠."

하지만 그런 지난한 삶에도 예술을 통한 기적 같은 일들은 꾸준히 찾아왔다. '종묘제례악'을 최고의 곡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그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게 되면서 음악적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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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재일. (사진 = 블루보이 제공) 2020.02.02. realpaper7@newsis.com
중동지역의 옛 악기 '두둑'과 오케스트라의 이국적 조합을 들려준 연극 '그을린 사랑'(연출 김동현) 작업은 갓 군을 제대한 상황에서 내면에 음악적 야망 대신 순수함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안개속의 풍경'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1935~2012), '현대 무용의 혁명가'로 통하는 독일 출신의 거장 안무가 피나 바우쉬(1940~2009)도 정재일에게 영감의 샘이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던 지난해 9월에는 아테네 올림픽(2004)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던 그리스 거장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가 연출한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신작 '신스 쉬(Since she)'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 카탄차로 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저를 압도하는 예술을 알기 전과 알게 된 후의 저는 달라요. 그래서 그런 예술들을 계속 찾아다니는 거죠."

하지만 일상에서 정재일은 평범함 소시민을 자처했다.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한 구절을 인용했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인생이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활개 치며 자신의 시간을 보내다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는 가련한 배우.'

정재일은 "'맥베스'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이에요. 사실 인생은 별 거 없어요. 특히 저는 '쫄보 소시민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다른 이들에게 최대한 폐를 안 끼치도록 노력하며 살 뿐이에요."

천재적 영감으로 매번 묘수를 두는 기교의 예술가가 아닌, 성실한 노동자로서 꾸준히 악보를 꼼꼼히 그려나가는 음악가의 진짜 근육을 마침내 이날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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