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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신의 폭 더 좁아진 文대통령…제재 완화 공론화 '찬물'

등록 2020-06-16 20:05:02   최종수정 2020-06-22 09: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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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남북협력 상징' 공동연락사무소 일방 폭파

NSC "모든 책임 北에"…강력 대응 엄중 경고

정세현 "대미 특사, 남북합의 이행 여건 조성"

文 "국제사회 동의"…제재완화 공론화 나설 듯

靑 "외교적 노력 필요…제재 外 다른 접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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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2020.06.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태규 홍지은 기자 = 북한이 예고했던 대로 4·27 판문점 선언의 상징물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대폭 줄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지 하루 만에 행동에 나서면서 앞서 제시했던 남북협력 사업들을 이행하기 위한 여건 조차 날아가 버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16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후 2시49분 개성공단 지역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발표한 대남 비난 담화에서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가능성을 시사한 지 12일 만이다.

북한은 이날 오늘 인민군 총참모부 공개 보도 형태로 군사행동 돌입을 강하게 시사한 데 이어 반나절도 안돼 4·27 판문점 선언의 상징물을 폭파했다. 문 대통령이 전날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계기로 발신한 대화 메시지 하루 만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청와대는 이날 오후 5시5분부터 90분 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했다.

김유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NSC 긴급 상임위 결과 브리핑에서 "정부는 오늘 북측이 2018년 판문점선언에 의해 개설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일방적으로 폭파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측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파괴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라면서 "정부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측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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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16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 폭파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06.16.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는 그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남북이 '강대강(强對强)'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NSC 차원에서 북한을 향해 강력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과 문 대통령의 차원의 향후 접근은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가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NSC 본연의 임무라면, 정치·외교력까지 발휘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이 전날 남북 간 돌파구를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차원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전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며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확실한 결별'을 선언하며 보복을 경고한 김여정 부부장의 '최후통첩'에 대해 문 대통령이 직접 응답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후퇴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과 함께 역진 불가능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 선언의 국회 비준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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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축사를 영상을 통해 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맨 넥타이는 지난 2000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착용한 넥타이이고 연대는 지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에 사용한 연대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2020.06.15. [email protected]
문 대통령은 앞선 정부들에서 이뤄진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을 열거하며 "정권과 지도자가 바뀌어도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는 남북 공동의 자산"이라며 "한반도 문제와 남북문제 해결의 열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합의들이 국회에서 비준되고 정권에 따라 부침 없이 연속성을 가졌다면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됐을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서는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를 위해, 나아가서는 평화 경제의 실현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문재인정부에서 이뤄진 두 차례의 남북정상 간 합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도록 국회 비준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북한이 대북 전단(삐라) 살포 행위로 볼 때 정부의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자 이에 대한 확실한 담보 차원의 의미였다.

관심은 문 대통령이 향후 어떤 식으로 현재의 위기 국면을 돌파해 낼 수 있을지에 쏠린다. 우선 현재 북한의 강경한 태도로 볼 때 문 대통령이 올해 언급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 등의 사업들은 '올스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분간 경색 국면의 지속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우선 남북 간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후 미국을 상대로 대북제재 완화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이를 모멘텀으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미국이 발목 잡는 것을 풀어주는 조치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대통령 특사, 국무위원급 이상이 직접 미국 고위 간부를 만나 남북 합의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을 워싱턴에서 만들어서 와야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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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판문점 선언을 하고 있다. 2018.04.27.  [email protected]
한층 격앙돼 있는 북한을 상대로 특사를 보내봤자 받아줄 가능성이 희박하니, 원인 제공 측면이 있는 미국을 돌파구 삼아 대북제재 완화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전날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가는 노력도 꾸준히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9·19 평양선언 도출 직후인 2018년 10월 유럽 5개국(프랑스·이탈리아·바티칸·벨기에·덴마크) 순방길에 올라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론화를 본격 추진했었다.

첫 국가를 프랑스로 정한 것은 대북제재 결의안 해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P5(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중국)국가를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하지만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거부감만 확인했고, 결국 그로 인해 모든 남북협력 사업 추진도 미국과 논의하도록 한 한·미 워킹그룹 출범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과 10월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미 비핵화 대화가 장기 교착국면에 빠지면서 북미 대화 촉진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한다는 문 대통령의 '선순환론'도 힘을 받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올해 초 "남북 관계에 있어 운신의 폭을 넓혀 노력해 나가겠다(1월2일 신년 합동인사회)",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또 남북 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 협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1월14일 신년 기자회견)"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을 깔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 국면에서는 외교적 노력이 우선 필요한 것 같다"며 "지난 2년 간 북미 비핵화 대화가 장기 교착에 빠졌던 상황을 국제사회와 함께 복기하고, 제재 이외의 다른 접근 방식을 정상외교 차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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