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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비는 단 6명...'왕비로 산다는 것'

등록 2020-10-07 16:06:44   최종수정 2020-10-19 09: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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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왕비로 산다는 것 (사진=매일경제신문사 제공) 2020.10.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시대 왕비는 왕권과 신권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살얼음판 같은 왕실에서 자신의 것을 지켜야 했다.

왕비가 되는 일반적인 코스는 남편이 세자인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세자가 왕이 되면 된다. 세자빈으로 들어오는 경우 대개 10세를 전후한 나이에 삼간택의 과정을 거친다.

정작 이 코스를 거쳐 왕비가 된 인물은 단 6명이다.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 박씨,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 김씨,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 어씨가 이 코스를 거쳤다. 

왕비의 인생은 화려하기보다 살얼음판 같았다.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에서, 가문과 왕실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 속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했다.

계유정난, 단종의 폐위, 두 차례의 반정 등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들이 등장하고, 장자가 아닌 차남이나 손자의 즉위, 여기에 후궁 소생의 왕들이 즉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양녕대군의 세자빈과 같이 세자가 교체되는 바람에 대군 부인으로 강등된 사례도 있고, 인수대비로 널리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는 남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세자빈의 지위를 잃기도 했다.

소현세자의 세자빈 강씨는 남편의 의문의 죽음으로 세자빈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물론 사약까지 받았다. 혜경궁 홍씨 역시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자빈의 지위를 잃었다.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 왕비, 그리고 아들 숙종이 왕이 되면서 대비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왕비 집안에 대한 정치적 견제도 심했다. 태종이 원경왕후의 처남들을 처형한 사례나 태종이 왕비의 부친인 심온을 처형한 사례와 같이 왕비가 된 순간 가족들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세종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정순왕후는 폐비가 된 후, 현재의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 년 만인 숙종 때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을 일반인으로 살았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폐위로 폐비가 된 폐비 신씨와 폐비 유씨의 삶도 남편의 몰락과 함께 참담했다.

자신의 정치력을 관철시킨 왕비도 있다. 원경왕후는 남편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고 정희왕후는 남편 세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데 도움을 줬지만 훗날 성종을 대신해 수렴첨정을 했다. 이후 성격은 다르지만 문정왕후, 인순왕후의 수렴첨정이 이어진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정설과 사실에  근거하여 왕비를 다룸으로써 그들의 실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신병주 지음, 436쪽, 매일경제신문사, 1만9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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