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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조선영화인들이 부러워했던 일 봉준호가 해냈다

등록 2021-01-04 10:22:46   최종수정 2021-01-04 12: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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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발행 안철영 '성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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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안철영 '성림기행'(사진=한상언 제공)2020.12.2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8년 3월 20일 저녁, 필립안의 집에서 나온 자동차가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슈라인 오디토리움(Shrine Auditorium)으로 향했다.

시상식장이 있는 웨스트 제퍼슨 거리(W. Jefferson Blvd.)에는 이미 자동차가 가득했다. 교통경찰들은 거리에 가득 찬 군중들을 정리해 질서를 유지했고 그 사이로 느릿느릿 차가 움직였다. 행사장 앞에 도착하자 10여대의 서치라이트가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마치 빛으로 만든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 보였다.

스타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의 아우성 소리로 가득 찬 광장에 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필립안은 동행한 안철영과 김소영의 팔을 양쪽에 끼고 레드카펫을 걸어 행사장으로 향했다. 군중들은 필립을 연호하였고 필립은 다른 때보다도 훨씬 더 감격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그들에게 인사 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양인 배우인 필립안과 할리우드를 둘러보고 있던 영화감독이자 군정청 예술과장이던 안철영, '반도의 봄'의 주인공인 배우 김소영은 조선영화인을 대표하여 1948년 제20회 아카데미시상식에 초대받았다.

필립안은 고국에서 온 영화인들에게 미국의 영화계를 참관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고 때마침 아카데미시상식이 열리는 시기라 조선에서 온 이들 영화인들은 아카데미시상식을 참관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안철영은 마치 취재기자가 된 것처럼 아카데미시상식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독일에서 사진공학을 공부했던 그는 귀국하여 영화 '어화'(1938)를 연출하였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예술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선진 미국의 영화산업을 시찰하는 임무를 띠고 할리우드에 왔다.

당시 미국은 신생독립국의 지식인들에게 미국을 체험하게 함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풍요로움과 물질문명의 우월성을 보여주어 체제경쟁중인 소련에 대한 비교우위를 점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획은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영도 그 기획에 따라 미국에 왔다. 마찬가지로 김소영 역시 무용가인 남편 조택원과 함께 같은 이유로 미국에 와 있었던 것이다.

안철영은 여느 영화인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에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같은 거대 영화회사가 만들어져 영화가 예술이자 산업으로 성장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워너브러더스나 유니버설의 거대 스튜디오는 물론 필립이 출강하는 연기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시설을 둘러보며 머릿속에는 거대한 청사진을 그렸지만 문제는 항상 자본이었다.

할리우드를 방문하기 전부터 하와이의 교민들을 통해 자금을 얻는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안철영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안창호 목사가 1926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하와이에서 활동하고 있었기에 아주 허황된 꿈은 아니었다. 안철영은 하와이에서 조선영화에 투자할 사람들을 만났고 그 와중에 교민들의 생활과 풍속을 담을 칼라 기록영화 '무궁화동산'(1949)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칼라영화였다.

1947년 12월부터 다음해 봄까지 이어진 할리우드 방문을 마친 안철영은 예술과장 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영화 활동에 나섰다. 1949년에는 할리우드를 시찰하면서 적었던 메모들을 토대로 '성림기행'이라는 제목의 기행문을 수도문화사에서 발행했다. 하지만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안철영은 행방불명되었다. 그의 원대한 계획은 전쟁과 함께 사라졌다.

한국영화 100년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다. 시상식장을 종횡무진으로 휘어잡은 봉준호는 그 날의 주인공이었다.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참관하였던 안철영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영화인의 생일잔치”라며 부러워했다. 세월이 흘러 그 생일의 주인공이 봉준호가 될 줄은 안철영도 김소영도 필립안도 상상하지 못했다. 안철영의 '성림기행'을 읽으면서 봉준호의 기특한 수상 소감이 생각났다. 어디선가 봉준호의 수상을 기쁘게 축하해 주었을 이들, 어쩌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1948년의 조선영화인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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