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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설가 김초엽 "지구를 구하는 건 영웅 아닌 식물입니다"

등록 2021-08-28 06:45:00   최종수정 2021-09-06 10: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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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지구 끝의 온실' 출간 동시 베스트셀러

"원예학 전공 아버지 덕분에 탄생...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는 말 인상적"

"코로나로 독자들 직접 못 만나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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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작가 김초엽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현주 기자 =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이 인기다.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높은 관심도를 실감케 하고 있다. 작가는 2019년 펴낸 단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주목받는 소설가로 떠올랐다.

"바깥세계가 멸망한 가운데 고립된 유리로 갇힌 공간 안에 있는 과학자가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실험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고 소설을 구상했어요. '지구 끝의 온실'이란 제목도 초기에 바로 붙였죠."

김초엽 작가는 최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첫 장편이라 엄청 긴장하고 부담이 됐는데 출간 이후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해주셔서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구 끝의 온실'은 노출만 되어도 죽음에 이르는 먼지 '더스트'로 한 차례의 대멸종이 일어난 먼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다.

김 작가는 "온실 이미지를 얻고 바로 쓴 것이 박물관에서 식물에 대한 전시회가 열리는 마지막 장면"이라며 "식물이 우리를 구했다,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수십년 후 정말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이 지구를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역으로 생각해봤어요. 처음 떠올린 건 결국 온실이 세상을 지킨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지구 끝의 온실'이란 제목도 구상 초기에 바로 만들었어요."

원예학 전공인 아버지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풀 초(草)'에 '나뭇잎 엽(葉)'인 '초엽'이란 이름도 무관치 않다.

"부모님이 식물을 좋아해요. 제 이름도 그래서 '초엽'으로 지어졌죠. 저는 처음엔 식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소재로 삼고 나니 뒤늦게 관심이 생겼어요. 아무 곳이나 퍼져나가는 식물이 허황된 게 아닐까 과학적으로 고증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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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작가 김초엽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그는 "아버지가 내게 해준 말은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정말 다양한 식물이 있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식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간은 살아가는 데 식물이 필요하지만 식물은 살아가는 데 인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작품 속 지구를 구하는 건 일부 엄청난 영웅이 아니다.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딱히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고 글을 써내려갔다"며 "온실, 마을의 공간은 불안정하지만 절대적인 환대를 제공한다. 이 짧은 환대의 시간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꿀수 있는까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더스트로 멸망한 지구가 환경 문제를 떠오르게 한다는 지적에는 "사실 이 소설은 환경 문제보다는 재난 상황에 집중한 아포칼립스 소설"이라며 "그런데 나중에 다시 보니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도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환경, 기후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 외의 것들을 무시해서 생겨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라 생각하지만 사실 지구, 자연에 기대고 있잖아요. 그런데 벌레나 곤충 등이 없어지는걸 너무 쉽게 생각하고. 인간만 중시하는 그런 태도에서 지금 당면한 위기가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온실'에 대해서는 '최후 도피처'라는 설명이다. "온실은 '돔시티와 대비되는 개념이에요. 돔시티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나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권력 공간이고 온실은 식물들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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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작가 김초엽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과학적 내용이 많이 담겨있는 만큼 독자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그는 "예전에는 너무 어렵게 쓰면 독자들이 이해를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오히려 독자들은 어렵게 쓰든 쉽게 쓰든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야기 자체의 중심이 확실하면 독자들은 과학적인 내용도 잘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이번 '지구 끝의 온실'은 굳이 과학적인 내용을 쉽게 쓰려고 하진 않았어요. 전공자는 바로 알 수 있지만 아닌 사람들은 무슨 단어인지 모르는 단어들도 있죠. 그래도 독자들은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생화학 석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우연히 흘러흘러 작가가 됐어요. 취미로 소설을 썼는데 대학원 졸업 무렵 공모전이 열렸죠. 공모전에 당선돼 상금을 받았고, 한번 1년 정도만 전업작가로서 활동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왔네요."

이력만 보면 전문적이고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은 '쉬운' 글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이야기라도 가치가 있지만, 전 제 글이 잘 읽히고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재미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재미를 추구해요. 그러다보니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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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작가 김초엽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08.28. [email protected]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는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는 "솔직히 책을 처음 쓸 때는 최대한 코로나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며 "코로나는 지금 당장 일어나는 현실이라 제대로 다룰수도 없고, 다 끝난 다음에 되돌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긴 시간 장편을 쓰다보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을 쓸 때도 무의식 중에 묻어난 것 같다"며 "우리가 이제 다시 재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책에도 반영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책 속 '아영'이 연구하는 것은 더스트 이후 변해버린 지구에 대한 연구죠. 거대한 재난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국 흉터처럼 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도 마찬가지죠."

코로나로 김초엽 작가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뭘까. 그는 "사실 소설가는 다른 예술계에 비해 영향을 덜 받은 것 같다. 대중음악 등은 타격이 크다고 알고 있다"며 "굳이 꼽자면 북토크를 못하는 점을 들 수 있다. 독자들을 직접 못 만나는 것이 제일 아쉽다"고 밝혔다.

10대 후반 3급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는 "데뷔 초기에는 별로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었다"며 "장애와 과학 기술을 다룬 논픽션을 쓴 적이 있다. 장애도 내 정체성 중 하나인데, 소설을 통해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애는 저뿐 아니라 사회의 많은 이들이 가진 정체성 중 하나죠. 질병 등과도 연계될 수 있구요. 사회가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SF로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 작품들에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네요."

올 가을 두 번째 소설집이 나온다. 그는 "우리와 다른 감각이나 인지체계를 가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예를 들면, 다른 행성에 사는 인류의 후손들, 지금 지구인과는 다른 상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주 얘기가 많이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답답한 시기 글을 통해 독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온실을 떠올리며) 방에 갇혀서 글을 써서, 더 많은 작품을 더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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