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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잃어버린 세대’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등록 2021-10-12 17:15:51   최종수정 2021-10-12 17: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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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왼쪽)과 스콧 피츠제럴드.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란 꿈을 잃고 자포자기한 젊은 세대를 일컫는 표현으로, 요즘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후인 1920년대에 전쟁의 상흔과 물질주의 삶에 회의를 느낀 젊은이들이 기존의 가치와 관념을 상실하고 방황하던 것을 문학에 반영한 미국의 작가들을 의미했다. 대표적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암 포크너, 존 더스 패서스, 아치볼드 매클리시 등이다.

헤밍웨이는 20대 시절 캐나다 토론토 데일리스타지의 파리 특파원을 맡아 1921년부터 1928년까지 파리에 거주했다. 그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셔우드 앤더슨, 맥스 이스트먼, 헨리 밀러, 존 스타인벡, 피카소, 후안 미로, 마티스, 마네 등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 중 특히 스타인과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 여러모로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헤밍웨이는 1924년 데일리스타지를 그만두고 1926년에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 Rises)’를 발표한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란 말은 이 작품의 서문에 처음 등장하는데, 스타인이 한 말을 헤밍웨이가 인용한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1900년대 초 일찌감치 파리로 건너간 스타인은 헤밍웨이보다 25세나 많은 작가 겸 시인이었다. 그녀는 10대때 부모를 여의고 얻은 막대한 유산으로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피카소 등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를 후원했다. 헤밍웨이에게는 삶의 멘토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다. 주말에는 갤러리가 살롱이 돼 기라성 같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와인과 샴페인을 마시면서 어울렸다.

스타인은 대단히 주체적인 삶을 산 레즈비언이었다. 1920년대 파리에 머물던 작가들의 생활을 시간여행 형식으로 다룬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케티 베이츠가 역을 맡아 등장한다.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와도 가깝게 교유했다. 피츠제럴드가 파리로 이주한 1년 후인 1925년 두 사람은 파리에 있는 ‘딩고 바(Dingo Bar)’에서 처음 만난다. 스타인, 이사도라 던컨, 피카소 등 예술가가 자주 드나들던 이 바는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둘이 만남이 이루어진 때는 피츠제럴드가 미국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출판한지 2주가 지난 즈음이었다. 이때 피츠제럴드는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작가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으나, 헤밍웨이는 아직 작가로서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였다. 가족의 외식도 경마에서 돈을 땄을 때 했을 정도였다. 막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헤밍웨이가 장편 소설을 쓰는데 영감을 줬다. 나중에 이 관계는 역전된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3년 정도 더 파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1940년 피츠제럴드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직접 만나거나 편지를 통해 애증이 교차하는 교유를 계속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헤밍웨이는 플로리다에 집이 있었지만 쿠바,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프리카의 초원을 누비며 다녔다. 반면 피츠제럴드는 앨라배마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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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1920년대 헤밍웨이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헤밍웨이 가족이 아팠을 때는 집을 통째로 빌려주기도 했고, 1928년 헤밍웨이의 아버지가 자살했을 때는 기차를 타고 달려가 직접 돈을 전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가 되자 헤밍웨이는 뜨는 별이 됐고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 등으로 쇠락해갔다. 1934년 피츠제럴드가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를 발표한 후 헤밍웨이에게 피드백을 요청했을 때, 헤밍웨이는 새로운 작품이 피츠제럴드가 가지고 있는 역량에 미달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글을 쓰고 술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주인공들이 폭음을 하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피츠제럴드는 내성적이면서 섬세하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반면 헤밍웨이는 모험적이면서 복싱, 사냥, 낚시를 좋아하는 등 마초적이었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스페인 내전과 2차 대전에는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피츠제럴드는 1차 대전 이후에 유럽에 와서 프랑스 남부에 거처를 마련하고 미국에서 재즈 거장들을 초청해 자주 파티를 열며 재즈 음악을 유럽에 소개하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거칠었으나 피츠제럴드는 낭만적이었다. 헤밍웨이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했으나 피츠제럴드는 외국어에는 관심이 없었다. 두 사람 다 알코올 중독으로 폭음을 할 때가 많았지만 헤밍웨이는 글을 쓸 때는 술을 자제했던 반면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1950년 헤밍웨이는 파리에서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운이 좋아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보낼 수가 있다면, 그 경험은 나중에 당신이 어디를 가든 여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Moveable Feast)’이기 때문이다.”

1921년부터 1926년까지의 파리 시절을 회상한 글을 모아 1964년 사후에 출간한 ‘a Moveable Feast’(우리나라에서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로 소개됨)라는 제목은 여기서 왔다. 다음 편은 헤밍웨이가 좋아한 와인과 바와 작품 속 와인 관련 장면을 따라간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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