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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아리랑 통일과 북핵 한·미 공조

등록 2015-06-02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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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50년 전 미국행 보잉707 기내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육영수 여사. 존슨 대통령이 가난한 한국의 대통령 부부에게 보내준 전용기여서 주변에 미국인들이 보인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20>

 한·일 회담은 ‘김·오히라 메모’에서 출발했다. 1962년 11월 김종필(89) 중앙정보부장이 오히라 마사요시(1910~1980) 일본 외상과 맺은 대일청구권 관련 비밀 합의각서다. 당시 각서 교환을 위해 도쿄의 외무부 별실로 두 대표가 들어섰을 때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4시간 회의 끝에 각서에 서명하고 만년필을 놓는 순간 다시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뿐만 아니다. 회담의 종결인 양국 비준서 교환식장인 중앙청에서 한국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대신 아리랑을 연주,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일본에 대한 국민의 적개심을 감안한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의 연출이다. 대신 만찬장에서는 기미가요를 들려주는 묘수를 썼다.

 박정희는 아리랑을 사랑했다. 1960년 6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1890~1969)을 비롯, 국빈이 오면 아리랑으로 영접하는 전통을 세웠다. 1961년 11월 존 F 케네디(1917~1963) 대통령과 박정희가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미국 해병대 군악대는 아리랑을 선곡했다. 박정희가 1963년 12월 독일의 한인 광부와 간호사들에게 남긴 휘호 또한 ‘아리랑의 집’이다. 1977년 호주의 정치 저널리스트 마이클 키온(1918~2006)이 쓴 ‘박정희 대통령 전기,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Korean Phoenix, A Nation from the Ashes) 143쪽에도 박정희가 아리랑을 노래하는 장면이 기록돼 있다.

 아리랑 연구의 태두인 김연갑(61)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키온이 지어 세계에 보급된 전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아리랑관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명난다는 아리랑은 매우 유명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과 동일시한다. 가는 님을 적극적으로 잡지 못하고 10리 쯤 가다 발병을 핑계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나약함이 표현된 것이다. 밀양아리랑의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끗’ 역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노래의 탄식조는 ‘못살겠다’, ‘죽겠다’와 같은 패배의식의 일면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아리랑에 반영된 한국인의 민족성에 주목한 것이다. 국민과 함께 부르는 아리랑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동력을 얻으려는 고심이 드러난다. 그 결과, 진취적이고 적극성을 담은 ‘새마을 노래’가 탄생했다. 단순한 개작 정도가 아닌,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이라고 풀이했다. “아리랑을 매개로 한 박정희의 소통은 차원을 달리한 혁명적인 부분”이라는 의미 부여다.

 아리랑 사랑은 박근혜(63)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3년 2월 국회의사당은 온통 아리랑판이었다. ‘희망 아리랑’ 그림이 설치된 취임 축하무대에서는 소통 축전을 표방한 ‘아리랑 판타지’가 펼쳐졌다. 대통령은 그해 10월 청와대에서 ‘아리랑, 문화융성의 우리맛 우리멋’ 공연을 열었다. 문화융성의 구심체로 아리랑을 지목했고, 그 상징을 구현했다. 가수가 마이크를 들이대자 아리랑을 한 소절 하기도 했다. 

 16일 워싱턴DC에서 버락 오바마(54)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대통령은 아리랑을 즐겨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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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근혜 대통령
정무·경제 등 양자 차원의 협력 제고방안 외에도 동아시아와 세계 주요정세 평가, 북핵 문제 등 대북공조, 동북아 국가 간 협력, 글로벌 보건안보, 에너지·기후변화, 개발협력, 사이버, 우주 분야 등 한·미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등 상호 관심사를 교환하는 이번 자리에서 아리랑은 뜬금없는 존재가 아니다.

 ‘북핵 문제 등 대북공조’ 부분에서 아리랑은 매력적인 카드로 작용할 수도 있다.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서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2012)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리랑 민요’(2014)로 분단돼버린 아리랑을 다시 통일시키자는 뜻을 전하는 것이 시작이다. 70년 대치상황에서도 남과 북은 아리랑으로 교류했다. 만나면 아리랑을 불렀고, 단일팀의 국제경기 단가도 아리랑이었다. 남과 북이 아리랑을 UNESCO에 공동등재하자고 운부터 떼고 볼 일이다. 흥얼대는 노랫가락 이상의 생명체가 아리랑이기 때문이다. 저항·대동·상생의 아리랑 정신은 통일과 일맥상통한다.

 1965년 5월 린던 B 존슨(1908~1973) 대통령과 회담차 미국을 향하는 항공기 안에서 영부인 육영수(1925~1974)는 아리랑을 노래했다. 정확히는, 아리랑 합창을 이끌었다.  

 편집부국장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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