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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vs 美 셰일…제2라운드 접어든 '석유 치킨게임'

등록 2016-04-04 11:09:53   최종수정 2016-12-28 16: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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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할 수 없는 OPEC과 셰일업계  40달러 선 회복한 국제유가…셰일업계 수익분기점  

【서울-뉴시스】강덕우 기자 = 20달러 선까지 폭락했던 국제유가가 최근 바닥을 친 듯 반등세를 타고 40달러 선을 회복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온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 셰일업계 간 '석유 치킨게임'이 종결됐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이번 국제유가 반등은 지난 2월16일 OPEC의 맹주이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원유생산국 장관들이 카타르 수도 도하에 모여 산유량을 지난 1월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폭락이 미국 셰일업계에 맞서 사우디 등 OPEC 회원국들이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산유량을 대거 늘리면서 시장의 수요-공급 균형을 무너뜨린 '석유 치킨게임'으로 촉발된 것을 감안했을 때 산유량 동결로 치킨게임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시장이 사우디의 동결합의를 패배 선언으로 받아들이면서 국제유가가 반등했다는 풀이다.

 하지만 2014년부터 이어진 공급과잉 장기화로 쌓인 수억 배럴의 원유 재고량이 여전히 남아있고, 감산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치킨게임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국제유가가 미국 셰일업계 수익 임계점으로 인지되는 40달러 선에 도달하면서 치킨게임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석유 치킨게임' 촉발한 美 셰일혁명

 미국 셰일업계가 남아있는 이상 치킨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월22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IHS-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 연례회의에서 OPEC은 셰일업계와 공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을 정도로 두 산유주체 간 합의는커녕 타협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압달라 엘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이날 개막연설에서 "(우리가 감산해서) 원유가격이 오른다면 셰일업계가 즉시 산유량을 늘려 상승분을 메꿀 것"이라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미국 셰일업계와 같이 살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OPEC이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지만, 셰일업계와 같이 빠르게 가격변동에 대응하고 저유가에 강하게 저항하는 급유주체와 맞닥뜨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유가폭락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원유 공급과잉을 일으킨 셰일혁명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주로 셰일오일로 이뤄진 미국 원유생산량은 저유가 기조에도 불구하고 2021년까지 하루 평균 130만배럴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해 치킨게임 장기화를 시사했다.

 노르웨이 에너지 자문업체인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 비에리니스 빌라누에바 트리아나 연구원은 CNN 머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석유 생산량은 셰일업체를 중심으로 (국제유가 폭락에 대해) 강한 저항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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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셰일업계가 '치킨게임'으로 인한 충격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텍사스에 있는 국제기업법률사무소 '헤인즈앤분(Haynes and Boone)'에 따르면 지난해 파산한 북미지역 석유·가스 생산업체들은 42개에 달하며, 올해에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의 기업들이 파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셰일업계는 지난 10년 동안 각종 기술적 혁신을 통해 시추 하나당 생산량을 늘리고 장비 가격 등 운영경비를 줄여 원유생산 효율성을 대폭 개선해 온 결과 유가폭락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오히려 늘릴 수 있었다.  

 또 셰일업계는 주기적으로 모임을 하는 OPEC과 러시아와 달리 수천개의 사기업들로 이뤄지고 다국적 기업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므로 집단적 감산합의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 셰일기업이 저유가를 못 이겨 생산량을 줄인다고 해도 다른 기업이 이를 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결과 현재 셰일업계는 미국 총 원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00년에는 2만3000개의 셰일시추가 하루에 10만2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지만, 지금은 30만개의 셰일시추가 430만배럴을 뽑아내고 있다.

 셰일업계도 급감하는 원유 가격에 끝없이 맞설 수는 없다. 골드만삭스 제프리 커리 원자재 분석 책임자는 26일 CNBC에 출연해 "원유 공급과잉으로 저장고가 한계치에 이르고 있다"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20~40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면 유전을 폐쇄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40달러를 웃돌면서 셰일업계가 다시 증산할 수 있는 시장환경이 형성되고 있어 제2의 치킨게임이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시름 깊어지는 사우디

 원유 증산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장악하기 위한 치킨게임을 주도해온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3년 동안 오히려 주요시장 점유율을 잃는 등 미국 셰일업계보다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너지 자문업체 FGE가 집계한 자료를 인용해 사우디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등 9개 주요 원유수입국에서 점유율이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FGE에 따르면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인 중국에서 사우디의 점유율은 2013년 19%에서 2015년 15%대로 쪼그라들었다. 사우디는 아직 중국 최대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같은 기간 러시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늘어나 사우디 점유율을 위협하고 있다.

 남아공에서 점유율은 2013년 53%에서 2015년 22%까지 급락했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나이지리아와 앙골라가 시장을 잠식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셰일업계 발전으로 원유 수입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사우디의 점유율은 17%에서 14%로 줄어들었다.

 이 밖에도 한국과 태국, 대만 등에서도 사우디 점유율이 치킨게임 기간 동안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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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C은 사우디는 유럽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며, 2015년 원유수출량은 전 세계 수요의 8.1%를 차지해 2013년(8.5%)에 비해 큰 변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 등 대형시장에서 점유율 감소는 이미 재정적자에 시달려 올해 재정지출을 지난해보다 13.8%나 감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사우디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유가가 40달러 선까지 추락했을 때 사우디 외환보유액이 2018년 8월에 바닥날 것으로 내다봤던 CNBC는 국제유가가 30달러 초반 선까지 떨어진 현재, 사우디의 재정지출 예산 감축만으로는 파산시점이 2019년 5월쯤으로 미뤄질 뿐이라고 분석했다.

 만약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폭락할 경우 2018년 10월에 파산에 이를 수 있으며, 40달러 선을 회복한다면 2020년 2월, 50달러 선에는 2021년 5월에 파산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수입의 75%를 석유수출액으로 조달하는 사우디가 재원을 다양화하지 않으면 5년래에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OPEC이 원유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레이딩파트너스의 밥 라치노 석유트레이더는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셰일업계 성장으로 "이제 OPEC이 아닌 미국이 주요 산유주체이며, 앞으로 OPEC이 아닌 미국이 산유량 조정으로 가격을 조작하는 시대"라며 "OPEC은 더 이상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엘바드리 OPEC 사무총장이 IHS-CERA 연례회의에서 원유시장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는 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유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다"며 2014년 11월 감산 거부 결정 이후 일주일 만에 국제유가가 40%나 폭락할 줄은 자신들도 몰랐다고 인정하면서 OPEC이 원유시장에 대한 통제능력을 잃어버린 것을 시사했다.

 바클레이즈는 산유국들의 산유량이 이미 최대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동결합의는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도 이미 산유량이 더 늘어날 수 없을 것으로 예측했었기 때문에 동결만으로는 원유시장 전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에너지애스팩트에 따르면 수억배럴에 달하는 원유재고량 중 약 2억9000만 배럴이 중국시장으로 흘러들어 갈 것으로 가정해도 동결만으로는 특별한 수요 변화가 있기 전에는 2021년은 돼야 원유 재고량을 모두 소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석유 치킨게임 2라운드가 어떻게 종결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결국 감산으로 인한 수요-공급 균형 외에는 국제유가를 관리할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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