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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폭력, 훈육과 학대의 경계는?…아이 마음 다치면 '정서적 학대'

등록 2016-06-07 09:58:43   최종수정 2016-12-28 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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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최근 폭력을 사용한 신체 학대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까지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가 법원에 나타나고 있다.

 아동학대 행위는 그동안 훈육이라는 이유로 교사나 부모의 체벌 또는 학대가 어느 정도 방치돼 온 측면이 있다. 지금도 훈육과 학대의 차이를 놓고 여러 주장이 엇갈리곤 한다.

 특히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와 관련해 법적 논란이 치열하곤 했다.

 아동복지법은 18세 미만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가로막을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아동학대'로 정의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금지행위 중에는 정서적 학대행위도 같은 법 제17조 5호에 포함돼 있다.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준 말이나 행동이 학대행위로 적용될 수 있는 조항이다.

 ◇마음에 상처 '정서적 학대'…법원, 적극적 인정 추세

 대법원은 최근 자신이 돌보는 만 3세 어린아이를 수업시간에 따돌리거나 밥을 느리게 먹는다는 이유로 식판을 복도에 내놓는 등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어린이집 보육교사 A(36)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확정했다.

 A씨는 2013년 9월 B(당시 3세)양 어머니로부터 아이의 이마에 난 상처를 묻는 내용이 담긴 항의 메모를 받자 화가 나 약을 발라주려다 A양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밀어버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한 B양이 밥을 느리게 먹는다는 이유로 식판을 복도 쪽으로 내놓고 수저통을 복도에 던지거나 수업 준비시간에 다른 아이와 어울리지 못하도록 따로 떼어놓고 앉게 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당시 A씨에게 정서적 학대 혐의가 아닌 '신체에 손상을 주는 학대'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폭력을 이용한 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행위가 검찰이 기소한 혐의인 아이의 신체에 손상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소장 변경 없이 직권으로 정서적 학대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다른 사례를 보자. 지방의 초등학교 교사인 C씨는 2013년 5월 학생 20여명을 불러 "D양과 놀지 마라. 투명인간 취급해라. 상대도 하지 마라"고 말하는 등 같은 해 4월부터 5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D(당시 10세)양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D양이 같은 반 일부 친구들에게 친하게 지내자는 내용의 편지를 건네는 것을 보고 학생들로부터 편지를 회수해 D양에게 편지를 찢게 하거나 같은 반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D양이 나쁜 짓을 하고 다니니 (자녀가) 같이 놀지 못하게 해라' 등의 말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을 맡은 법원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어린 피해자를 보듬고 마음을 헤아려보는 관용을 보여줬어야 했음에도 같은 반의 다른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까지 D양에게 면박을 주는 발언과 행동을 했다"며 "D양에게 매우 좋지 않은 정서적 영향을 주고, 이 사건으로 받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어서 범행의 죄질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C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 일반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10세의 D양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을 계속해 아이에게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줬음을 인정한 것이다.

 의정부지법도 지난달 4일 낮잠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며 다른 아이들의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3세 남자아이의 발목을 양팔로 잡고 3m 떨어진 원장실로 끌고가 문을 닫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육교사에게 정서적 학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심지어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어린이집 원장도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학대에 고의 없었다?…위험 가능성 인식만으로도 성립

 사례와 같이 최근 법원이 신체적 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에게 신체적 학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정서적 학대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실제 아동학대 유형 중 정서적 학대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난해 7월 내놓은 '2014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신고, 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는 총 1만27건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 세분화하면 여러 학대 유형이 겹쳐 발생하는 중복학대가 4814건(48%)으로 나타났으며 아이를 내버려두는 방임이 1870건(18.6%)으로 뒤를 잇고 정서적 학대 1582건(15.8%), 신체적 학대 1453건(14.5%), 성적 학대 308건(3.1)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보다 오히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보고서에 따르면 중복학대를 별도로 분류하지 않고 각각의 학대 유형에 중복해서 포함하면 1만27건의 학대 건수는 1만5458건으로 늘어나고 이 경우 정서적 학대는 40%에 해당하는 6176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서적 학대가 폭력 등 물리력을 이용한 신체학대나 방임 등 다른 학대와 함께 복합적으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서학대를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 대부분은 훈육 차원이었음을 강조한다. 교육의 일환이지 아이에게 학대를 하려는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라 함은 현실적으로 아동의 정신건강과 그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나 가능성이 발생한 경우도 포함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반드시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의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위험이나 가능성이 있음을 미필적으로 인식하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올바르게 지도한다는 교육 목적이더라도 아이에게 상처를 줘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학대에 해당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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