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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갑의 질서Ⅰ-②]공직사회, 김영란법 '열공'·매뉴얼마련 분주…현장활동 위축 우려

등록 2016-08-25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7: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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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정책팀 = "(일반인과) 식사를 했을 경우 나중에 신고와 반환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죠?", "부하 직원의 인사에 대한 부탁은 할 수 없게 되나요?", "재직 중 재취업 준비는 금지되나요?"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관련 국무총리실 직원 교육 시간에 강사에게 쏟아진 질문이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라는 넓은 영역을 규율하는 법이다 보니 법 조항이 모호하거나 복잡한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공직사회 내에서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김영란법 시행을 한달여 앞두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은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최근 각 부처들은 앞다퉈 외부 강사를 섭외해 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여러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강사를 초빙하다 보니 '구인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24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강사를 초빙하려고 했지만 최근 강연 수요가 늘어나 김영란법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대학교수나 변호사 명단을 구해 섭외 중"이라고 전했다.

 기관별 부서별 업무 내용에 맞게 자체 매뉴얼을 마련하는 기관도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재부는 언론을 상대하는 부서, 기업을 상대하는 부서,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부서 등으로 업무 성격이 다양하다"며 "부서의 업무 성격에 맞게 행동수칙이나 매뉴얼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공직 사회 내에서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법의 적용 범위가 방대한데다 상황별로 적용되는 규정이 다양해 실제 업무 현장에서 단기간에 정착되기는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금품수수의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100만원(1회)-300만원(1년)'의 규정이 적용된다.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 등의 목적으로 '3만원(식사)-5만원(선물)-10만원(부조)'까지 허용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가성이 있을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된다.

 부정청탁 관련 조항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부정청탁의 유형은 인허가, 처벌 감경, 인사 개입 등 15개나 되는데다 성립 요건도 복잡하다. 다양한 예외 사유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이 업무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 법의 내용을 열심히 숙지하고 일반인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게 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총리실의 한 사무관은 "2시간의 강의 만으로는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이고 어떤 행위가 허용되는지 잘 파악하기 힘들다"며 "될 수 있으면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자는 분위기가 있는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기재부의 한 사무관도 "친구나 지인, 동료들을 만날때도 밥값을 어떻게 계산할지,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당분간은 저녁 약속을 만들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간과의 접촉면이 넓은 기관일수록 이런 고민은 더 크다.

 한 경제부처의 국장급 간부는 "공무원들이 규제나 인허가권을 이용해 '갑질'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규제를 개선하거나 기업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현장 활동도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도 법 시행 초기에는 일정 부분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홍성칠 전 권익위 부위원장은 "공직자들이 당분간은 법이 엄격하게 시행된다고 보고 지나치게 경계하고 조심하게 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유지해온 관습과 문화를 바꾸려는 엄청난 시도인 만큼 당분간은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검찰·법원도 대책 마련에 분주…전담부서·처리기준 마련에 고심

 법을 집행해야할 수사·사법 기관들도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우선 법 시행 이후 업무 처리 문제가 법원과 검찰의 고민이다.

 당장 검찰로서는 법 위반 사범을 맡아 처리할 부서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처리 기준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수사기관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지적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어느 부서에서 전담할지 정해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으면 약식명령을 청구할지 정식재판에 넘길지,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인지 등 일선청에서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기준을 세울 필요는 있다"며 "내부적으로 검토해 계획을 마련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법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법원은 법 위반 사범에 대한 과태료 부과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업무 가중을 우려하고 있다.

 애초 과태료 부과기관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맡기로 했지만, 법 위반 실태조사를 비롯해 과태료 부과까지 너무 많은 권한이 권익위에 집중된다는 지적에 법원에서 담당하도록 변경됐다.

 이에 대해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사건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정도일지 현재론 가늠이 안 되고, 더 큰 문제는 통상 과태료 부과처분 사건보다 까다로울 것이 뻔해 실질적인 업무 부담은 가늠조차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직 김영란법 위반 사례가 없어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위반 행위를 특정하는 과정에서 사실관계 다툼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혐의 사실을 따져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 법원 입장에서는 말이 과태료 부과처분일 뿐 형사 재판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변호사 업계는 법 적용 혼선으로 법률 자문을 요청하는 요구가 늘면서 때아닌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대형로펌을 중심으로 전담팀을 꾸려 맞춤형 대응에도 나서고 있다.

 김영란법 전담팀을 맡고 있는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각 로펌들이 기존 송무 등 기존 그룹에서 인력을 조정해 전담팀이나 대응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며 "기업의 다양한 활동과 업무 방식에 따른 매뉴얼과 지침을 만들어 법 위반 사항에 저촉되지 않도록 돕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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