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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변했다고? 그들이 바라는대로 살 이유는 없다"

등록 2016-10-06 08:29:52   최종수정 2016-12-28 17: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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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김기덕(56) 감독의 스물 두 번째 작품 '그물'은 다른 영화다. 이 작품은 북한 어부 남철우(류승범)이 우연히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철우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여전히 첨예한 한반도의 남과 북을 오가면서 내면이 파괴당하는 인물이다. 남과 북은 모두 그를 간첩으로 의심하고,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만약 김기덕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이 작품을 본다면, 쉽게 김기덕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없다. 김기덕의 영화를 꾸준히 봐온 관객이라면, 국가에 대해, 남과 북의 관계와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하고 말았다.

 그의 변화는 2014년 '일대일'을 만들었을 때부터 감지됐다. 그는 당시 시사회 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며 "노 전 대통령께 드리는 고백이자 자백인 영화"라고 했다. 그는 "나 또한 정치적 공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날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일대일' 이전 그가 만든 작품은 '뫼비우스'(2013)와 '피에타'(2012)였다. 두 작품은 그의 영화 세계를 그대로 대변하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그곳의 양상을 강렬한 이미지로 영화화하는 것, 그리고 그 이미지들이 남긴 파장을 지켜보는 것, 그게 바로 김기덕이다. 그래서 김기덕의 변화는 너무 극적으로 느껴진다. 정치와 국가도 모두 인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뭉뚱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기덕 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일대일'부터 신작 '그물'까지, 김기덕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매우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전작들이 개인의 내면을 다뤘다면, 최근작들은 매우 직선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컴퓨터에도 여러가지 방, 디렉토리가 있지 않나. 내게도 인간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이 있고, 인류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이 있을 것이다. 또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도 있는 거다. 이전에는 인간이라는 방, 인간 내면의 방에서 이전투구하면서 인생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고민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현재 나를 휘감는 불안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지금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거다."

 -같은 말일 수는 있겠으나 결국 한국 사회 자체가 감독의 이전 작품 세계를 이어갈 수 없게 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 극적인 변화가 아닌가. 어떤 계기가 없고서는 이런 변화가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예술도 안전해야 한다. 두려움과 공포가 없어야 한다는 거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왜 예술을 안 하고 계몽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내게 의미 없는 질문이다. 그건(예전과 같이 개인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 관객이 내게 바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사람들이 바라는대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변화를 '그물'과 연관지어서 설명을 해준다면 어떤가.

 "'그물'이 지금 이 순간에는 가장 중요하달까. 열강들의 경쟁 속에서 우리가 우리를 냉정하게 되돌아볼 기회가 됐으면 한다. 왜 우리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른 체 하나. 열강들은 남과 북이 내분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그들의 바람대로 행동하는 게 맞냐 이거다. 물론 굉장히 정치적인 부분이기는 하다. '그물'은 재밌는 영화가 아니다. 가슴 아픈 영화다. 관객의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씩 주는 그런 영화다. 아트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다. 이런 진단을 통해서 답을 조금씩 찾기를 원한다."

 -또 한 가지 의아했던 건 기자간담회 때 감독이 잠시 언급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성인의 세계관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김기덕 감독은 부친이 한국전쟁 참전용사라고 말했다. 몸에 총탄 네 발을 맞았고, 이때문에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고, 이때문에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했다고 했다.)

 "아버지를 정말 미워하고 싫어했다. 너무 많은 폭력을 썼고, 너무 많은 공포를 조장했다. 당시에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항상 피해다녔고, 그래서 해병대로 도망갔다. 하지만 군대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알았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버지의 몸에 너무 깊에 배어있어, 그 기억들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그래서 '타도 공산주의'를 외치면서 누구보다 해병대 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그런데 그런 분노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해안선'에서 광적인 애국주의를 다룬 것도 그런 이유다. 서서히 남과 북을 공평한 기준으로 보게 됐다. 열강들의 이전투구라는 국제 관계 안에서 남북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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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지가 중요하다보니 영화 자체도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직설적인 느낌이다. 전작들에 비해 쉬운 영화인 건 분명해 보인다.

 "'계몽'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런(직설적인) 측면에 있다. 가령 '빈집' '섬' '나쁜남자' '뫼비우스'는 대사가 없다. 반면 이번 작품은 대사를 통해 많은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고백, 자백이라는 측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화법의 차이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내 전작들과 최근작들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질문하지만, 차이는 없다. 홍상수 영화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런 거 아니다.(웃음)"

 -전작들과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 차이가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나. 가령 '남철우'(류승범)는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는 인간이다. 이런 인물은 감독의 전작에서 찾을 수 없었다. 김기덕이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게 매우 생경하기도 했다.

 "가족을 이야기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뫼비우스'는 '가족은 곧 성기다'라는 주제로 접근했고, '붉은 가족'(김기덕 제작·각본)에서는 이데올로기가 다른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족과는 큰 차이가 있지 않나. 이번 작품에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철우네 가족은 판타지다. 남철우와 부인과 딸, 가족이라는 건 하나의 거대한 규칙같은 것인데, 이걸 가장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거다. 국가라는 체제에 동의하는 것도 가족을 지킬 수 있고, 또 그것을 위해서가 아니겠나. 하지만 현재의 국가는 가장(家長)을 이데올로기라는 그물로 잡아서 그의 가족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다. 60년이 넘게 지속된 남과 북의 이 강박증이 한 개인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남철우가 뭘 잘못했나. 왜 그가 더이상 발기가 안 되는 인간이 되고, 감시 대상이 돼야 하나. 배가 고장난 것 뿐이었다. 우리 사회에 60년 동안 존재했던 유령들이 끊임없이 넌 누구 편이냐고 묻는다. 답을 요구한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철우가 돼야만 이해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 때 했던 발언에 대해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 그때 "현실이 영화와 반대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그물'은 어떤 희망도 남기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인가. 꼭 그래야만 했나.

 "희망을 줄 거라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일말의 여지가 있었다면 이 영화를 애초에 출발시키지 않았을 거다. 엔딩이 비극적인 건 이 비극을 넘어서야 희망이 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극의 다음 페이지는 희망이다. 비극의 정점이 나올 때 우리가 고민하는 걸 볼 수 있는 거다. 다시 말하자면, 물론 이 엔딩은 뻔한 결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토록 적나라해야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이 영화의 희망이라고 한다면, 이원근이 연기한 '오진우' 아니겠나. 그는 올바른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 튀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순수한 인물이랄까.

 "필요한 양심이었다. 이런 사람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추상적으로 만들어진 인물이기는 하지만, 더 크고 거국적인 고민과 걱정을 하는 인물들은 있을 거다. 복잡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필요한 캐릭터였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건 남과 북 조사원들의 행태다. 남한의 조사원들은 이데올로기적인 반면, 북한의 조사원들은 자본주의적이다. 우리의 상식과 부합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그런 부분이다.

 "반대가 된 설정인데, 사실은 그게 더 현실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건이 터지면 애국심에서 일어난 오류라고 한다. 북한 국경에서는 너도나도 달러를 챙기려고 한다. 사실은 북한이 더욱 자본주의화되고 있고, 남한이 더 이데올로기적이다. 우린 먹고 사는 게 해결되니까 무슨 일만 일어나면 좌파우파 나누면서 이데올로기를 팽창시키고, 북한은 먹고사는 게 해결되지 않으니까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거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니까 결국 당신의 영화 세계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국가에 대해서 논하는 시기까지 오지 않았나. 어디까지 나아갈 생각인가.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다루는 소재가 다르다고는 해도 이 모든 게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도 내가 다음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나도 모른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를 둘러싼 이야기가 '그물'이라는 거다. 이번에도 그랬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다. 힘들고 어렵다. 하지만 절대 도망치지는 않는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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