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보국' 1세대들. 역사의 무대 떠났다

등록 2016-10-10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7: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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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먹고살기조차 힘들던 시절 한국의 식품업계를 이끌었던 거목들이 별처럼 지고 있다.

 ‘껌’ 하나로 굴지의 유통제국을 일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올해 들어 롯데제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일평생을 조미료 개발에 바친 임대홍(96) 대상그룹 창업주, 한국 간장의 역사를 써내려간 박승복(95) 샘표 회장, 케첩과 카레를 국내에 들여온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86) 회장은 생을 달리했다.

 외국에서 기술력을 벤치마킹해 국내 기술력으로 라면, 과자, 설탕, 밀가루 등을 내놓으며 ‘보국’(報國)을 외치던 1세대 창업자들이 물러난 자리는 글로벌 무한경쟁에 뛰어든 2세대들이 메우고 있다. 대상은 2세 임창욱 회장이, 오뚜기는 2세 함영준 회장이, 샘표는 3세 박진선 사장이 이미 경영권을 물려받은 상태이며, 향후 더 자기색깔이 선명한 경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회장, 등기이사직 물러나

 ‘껌’ 하나로 굴지의 유통제국을 일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올해 들어 롯데제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뗐다.

 울산 울주군에서 5남5녀의 맏아들로 태어난 신격호 총괄회장은 19살이 되던 1941년 돈을 벌기위해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는 일본의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신문, 우유배달 등을 했다. 당시 작가를 꿈꿨던 그는 세계문학가인 괴테를 동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기술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느끼고 와세다대 화학공학과에 입학, 1944년에 졸업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후 신 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도쿄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걸고 비누와 크림을 만들어 팔았다. 이 비누가 불티나게 팔렸고, 신 회장은 이 자금을 이용해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리고 껌을 개발했다. 1948년 신 총괄회장은 신주쿠에 종업원 10명을 둔 롯데를 탄생시켰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인 샬롯데에서 회사의 이름을 따왔다.

 그는 껌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일본의 10대 재벌로 올라섰고, 1965년 한일 수교로 한국 투자가 가능해지자 국내에 롯데알미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이어 호텔롯데, 전자롯데, 롯데기공, 롯데칠성음료, 대홍기획 등을 설립하며 식품·유통·관광·금융 등을 아우르는 국내 재계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홀수 달에는 한국에,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흘러가는 세월은 막지 못했다. 올해로 94세인 그는 치매를 앓게 됐고, 60년 동안 일군 롯데제국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을 지켜봐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국민조미료’ 만든 임대홍 회장

국민조미료 ‘미원’을 만들어낸 대상 창업주 고(故) 임대홍 회장은 지난 4월6일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2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이리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고창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던 1950년대 30대의 젊은 사업가였던 임 회장은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글루탐산’의 제조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여의 노력 끝에 조미료 제조 공법을 습득한 임 회장은 1956년 부산으로 돌아와 150평 규모의 작은 조미료 공장을 세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미료 공장인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로, 이곳에서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조미료 ‘미원’이 탄생했다.

 미원은 조미료 불모지였던 한국을 조미료 강국으로 끌어올렸고, 1970년대에는 인도네시아, 일본, 홍콩 등 해외 수출을 본격화했다. 대상은 이후 청정원, 종가집, 순창고추장, 홍초 등의 브랜드를 가진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미원을 개발한 임 회장의 또 다른 히트상품은 클로렐라다. 그는 대상 웰라이프 클로렐라를 개발해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챙겨먹었고, 클로렐라는 이 때문에 더 유명세를 탔다.

 ◇‘간장의 역사’ 쓴 박승복 회장

 한국 간장의 역사를 써내려간 고 박승복 샘표 회장은 지난달 23일 노환으로 작고했다.

 샘표 오너2세인 박 회장은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후 창업주인 선친 박규회 회장의 뒤를 이어 1976년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 오늘날의 샘표를 일궜다. 박 회장은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최고 품질의 간장을 만들겠다는 바람으로 1987년 단일 품목 설비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간장 공장을 지었다. 고인은 1985년 한 방송국에서 불법으로 간장을 만들어 파는 현장을 방영하며 샘표가 오해를 받았을 대는 직접 TV광고에 출연해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고 밝히며 정면 돌파를 하기도 했다. 이 CF는 CEO가 광고에 출연한 국내 첫 사례다.

 박 회장은 ‘식초전도사’로 유명했다. 매일 하루 세 번 식후에 식초를 마시는 박 회장의 특별한 식초 건강법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식초 건강법을 제품에 접목해 흑초음료 ‘백년동안’을 개발하기도 했다.

 ◇카레·케첩 대중화 함태호 회장

 카레와 케첩을 대중화시킨 고 함태호 오뚜기 회장 역시 지난달 12일 별세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함 회장은 국내 식품에 대한 불신이 컸던 시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식품을 공급하기 위해 1969년 오뚜기식품공업을 설립했다.

 함 회장은 오뚜기 설립 첫 해 5월 카레를 국내에 처음 대중화시켰다. 뒤이어 마요네즈를 국내 최초로 상품화하고 샐러드드레싱, 식초, 순식물성 마가린, 레토르트 제품 등을 국내에 선보이며 식문화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과거 산업화 시절 간장, 케첩, 설탕, 라면 등 주력 제품을 갖고 식품보국을 꿈꿨던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오너 2, 3세들이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껌은 롯데, 간장은 샘표, 라면은 삼양식품·농심 등의 공식이 사라지고, 가정간편식(HMR) 등의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식품업체별로 분명한 전문분야가 있었고, 이를 침범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농심과 오뚜기가 라면 경쟁을, 롯데와 농심이 과자 경쟁을 벌이는 등 업계 내에서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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