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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살어리랏다①]서울 속 단절된 섬 '노량도(島)', 합격만이 '탈출구'

등록 2016-11-22 15:50:00   최종수정 2016-12-30 16: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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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노량진(鷺梁津)'은 '백로(白鷺)가 노니는 나루터'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한강진(漢江鎭)' '양화진(楊花津)' 등과 함께 도성을 지키기 위해 군대가 주둔하는 '삼진(三鎭)'으로 통했다.

 과거 급제를 통해 '입신양명(立身揚名)'하려는 조선 시대 선비들은 남태령을 넘고 장승배기를 지나 노량진을 거쳐 도성으로 입성했다.

 노량진에는 더는 백로가 노닐지 않는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변한 지 않는 것이 있다. 입신양명하려면 과거 급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불문율'이 그렇다. 

 백로가 떠난 노량진 빈자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생'들이 채웠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 65만2000명 중 25만6000명이 공시생이다. 10명 중 4명이 과거 급제를 위한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지난 6월 9급 지방공무원 시험에는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인 21만여 명이 응시했다. 평균 1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니 설사 노량진에 백로가 다시 날아온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마땅치 않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노량진 고시촌에 잠시 터를 잡은 공시생들의 목표는 단 한 가지. '합격'이다. 이를 위해 물러설 수 없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초조한 승부수를 띄운다.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 노량진에 날아들었다 찬바람이 불면 말없이 훌쩍 떠나는 백로와 공시를 앞두고 찾아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공시생은 알게 모르게 닮았다. 노량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철 지난 가방과 무릎이 반쯤 나온 무채색 계열의 운동복, 패딩 점퍼가 신분증이 돼버린 노량진 고시촌 청춘들의 삶과 고민을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봤다. [편집자 주]

 재수학원서 고시촌으로 변모  찬바람 불면 토착인과 이방인 뒤섞여  최순실 게이트, 고시촌 허탈감 팽배

 청춘의 애환이 서린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상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35년 동안 노량진 고시촌을 꿋꿋하게 지킨 육교가 지난해 철거되고 그 빈자리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대신한다. 

 지갑이 얇은 공시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노량진 대표 명물 '컵 밥' 노점상들은 사육신공원 맞은편으로 터전을 옮겼다.

 노량진 고시촌은 늘 정체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무릎이 반쯤 나온 운동복과 두꺼운 패딩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을 옮기는 젊은 청춘들. 공무원 시험 수험생인 이른바 '공시생'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모습이다. 늘 봐왔던 것처럼.

 이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저마다 정한 규칙대로 생활한다. 고시촌의 잠시 터를 잡은 공시생들은 분초를 다투며 공부한다.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반복적인 일상이다.

 줄기를 떼어놓고 곁가지만 보자면 그렇다.

 감춰진 '민낯'과 마주하려면 새로 생긴 횡단보도를 건너고 학원가를 넘어 고시촌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여느 미취업자들과 다른 그들만의 일상.

 혹자는 '도전 정신도 없고,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나약한 청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청춘들은 '나약한 청춘', '무기력한 청춘'이니 하는 핀잔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공시생들은 꿈을 갖고, 인생을 걸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낸다. 그들에게 합격은 좁은 취업 문을 피해 달아난 '차선책'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하는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합격을 향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청춘들. 한 번 들어가면 합격할 때까지 외부와 단절되는 고시촌이지만, 늘 그렇듯 찬바람이 불면 변하기 시작한다.  

 ◇ 재수학원에서 공시생 '성지'로 우뚝 선 노량진

 노량진은 처음부터 공시생의 '성지'가 아니었다.

 그 시작은 이러했다. 1970년대 서울 종로에 재수생을 위한 대입 전문 학원들이 속속 들어섰다. 학원들이 세종사거리에서 종묘까지 줄을 이었다. 학원가 전성시대의 서막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정부는 도심 인구 밀집을 막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종로 소재 학원들을 사대문 밖으로 이전시켰다.

 3대 입시 전문 학원 중 한 곳은 용산동으로, 다른 한 곳은 중림동으로 각각 향했다. 나머지 한 곳이 한강을 건너 노량진동으로 옮겼다. 본격적인 노량진 학원가 시대의 시작이었다. 

 노량진 학원가의 번성을 이끈 주역은 교통망이다.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잘 갖춰진 지하철 교통망은 대입 준비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또 강북 도심과 여의도, 강남을 잇는 한강대교를 비롯한 사통팔달 도로망을 갖췄다는 입지 요건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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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속속 생겨난 대입 종합 학원들과 단과 학원들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호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졌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5급 이상 고급 공무원 얘기가 아니다. 7급 공무원도 사치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잇단 악재를 겪으면서 정년과 법적 지위가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과거 박봉 때문에 선호하지 않았던 9급 공무원이라도 감지덕지하는 시대가 됐다.

 그 여파는 노량진 풍경을 바꿔놓았다. 대입 전문 학원들은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경찰·공무원·임용고시 학원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성지로 변모했다.

 현재 어림잡아 100여 개의 공무원 관련 학원과 300곳 넘는 고시원이 가득 메우고 컵밥 등 각종 음식을 파는 노점상부터 스터디룸, 독서실, 밥집, 술집, 당구장, 피시방, 코인 노래방까지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노량진 고시촌은 공시생들에게 약속의 땅, 기회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 찬바람이 불면 떠나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이 교차한다 

 "눈 감으면 불안했고, 눈 뜨면 정신없었습니다."

 올해 2차 경찰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하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가는 김성현(35)씨의 이삿짐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철 지난 옷가지와 냄비, 수저, 물병, 고시 서적 몇 권이 다였다.

 노량진 고시촌에 오기 전까지 출판물 디자이너로 5년을 일한 김씨는 다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 이후 출판사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 온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누구나 꿈꾸고 고시촌에 들어오지만 합격은 아무나 할 순 없는 일이네요. '노량도(島)'를 탈출하는 또 다른 방법은 포기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이 갖고 싶다는 생각에 떠밀리다시피 고시에 도전했던 지난 3년을 김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노량진이 외부와 단절된 섬이라는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횡단보도 인파 속으로 금세 사라졌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보기 전부터 공무원 준비를 결심했어요.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졸업해도 취직하기도 어려운데, 차라리 공무원이 훨씬 낫죠."

 서울의 한 상업계열 학교에 다니는 김서형(19)양은 9급 일반 행정직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 고시촌을 처음 찾았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이미 검색을 끝낸 유명한 고시학원과 고시원 전화번호 등이 빼곡하게 저장돼 있었다.

 그는 '공무원 시험 준비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냐'는 기자 질문에 "일반 기업에 취직해도 정년까지 보장받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노량진 고시촌에는 찬바람 불면 이사행렬이 줄을 잇는다.

 지난 8일 오후 노량진역 횡단보도.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에도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 한 무더기 사람들이 길을 건넜다. 길 건너 맞은편 인도에 다다르자 사방을 퍼진 사람들이 뒤섞였다. 노량진 고시촌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로 기자를 맞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차려입은 '토착민'에게 새로 입성하려는 이주민은 늘 '이방인'이다. 이방인의 얼굴에는 아직 화장기가 선명하다. 형형색색의 외투와 끝이 뾰족한 구두 따위는 고시촌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토착민의 전언이다. 토착민은 자신과 닮지 않은 이주민을 경계한다. 그래서 '이방인'이라 부른단다.     

 노량진 고시촌에 찬바람이 불면 시험에 떨어지고 떠나는 토착민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새로 들어오는 이방인이 교차한다.

 늘 겪는 일이다보니 둔감해졌을 뿐, 매년 반복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가 토착민인지, 누가 이방인인지 구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그저 합격만이 고시촌에 사는 공시생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 최순실 게이트, '허탈'을 넘어 '분노'… 공시생 '부글부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전횡은 노량진 고시촌을 비껴가지 않았다.

 자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최순실 게이트는 공시생의 허탈과 분노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든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박모(여·25)씨는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며 "공무원 세계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순실 측근들이 30대 나이에 2·3급으로 고속 승진하고, 청와대에서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시생들을 더욱 들끓게 하고 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9)씨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2·3급까지 승진하는 데 평균 30년 넘게 걸린다"며 "다른 곳도 아닌 공무원 집단에서 노력보다 보이지 않는 '빽'이 작용한다는 게 정상이냐"고 반문했다.

 경찰 공무원 최종 면접을 앞둔 전준호(31)씨는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그래도 공직만큼은 공정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허탈하기만 하다"며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공직이라면 어느 누가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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