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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정의 포토에세이]지리산 자락, 산골마을 함양 겨울맞이 이야기

등록 2016-12-14 08:51:15   최종수정 2016-12-28 18: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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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지리산 자락 함양의 겨울맞이.지리산 참옻나무 '화칠' 채취.   2016.12.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지리산 자락 함양 산골마을의 겨울' - 서울 사는 아줌마 사진기자 취재기

 지리산 자락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경남 함양군 산골마을 주민들은 농한기임에도 불구하고 농번기처럼 분주합니다. 

 마천면 금계마을 옻 작업장에서 안재호(56)씨와 지역 주민들이 전통 방식으로 지리산 토종 참옻나무에서 옻 진액 '화칠(火漆)'을 채취합니다. 작고한 그의 부친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온 오수봉(87) 어르신은 직접 제작한 칼로 참옻나무 겉껍질을 빙 둘러 깎아 화칠을 채취할 홈을 팝니다. 안씨 모친 심상달(76) 어르신은 화로에 참옻나무를 굽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참옻나무에서 옻 진액이 지글지글 끓으며 흘러나옵니다. 안씨는 불씨가 채 꺼지지 않은 참옻나무를 붙잡고 대나무 채집통으로 진액을 긁어모읍니다. 손발이 척척 맞는 3인 1조 '드림팀'입니다. 

 옻나무 진액은 채취 시기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6월부터 7월 중순까지는 '초칠', 7월 중순부터 삼복더위를 전후한 8월 중순까지는 '성칠',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는 '말칠',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는 '화칠'이라 칭합니다. 겨울에는 진이 나오지 않아 물에 담가놓은 옻나무를 화롯불에 가열해 흘러나오는 진을 채취하는데 이것이 화칠입니다. 화칠은 약용으로 많이 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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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지리산 자락 함양의 겨울맞이. 곶감 말리기.  2016.12.13.  [email protected]
 시중가는 1㎏에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데요. 매우 높은 가격에 판매되다 보니 진액을 받아내는 대나무 통에 묻은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 들통에 담습니다.

 직접 나무를 베어다 물에 담갔다 홈을 파고 불에 그을리고….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농민들은 전통 방식을 고집합니다. 값싼 중국산보다 품질이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농민들은 지역 인구 노령화 등으로 더는 일을 배울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어 찾은 곳은 휴천면 송전리 견불사(見佛寺)입니다. 주지 보덕스님이 지역 특산물인 곶감을 만듭니다. 건조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햇살을 받으며 점점 더 예쁜 주홍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엄청나게 많은 감을 보니 스님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스님 입술이 다 부르텄습니다. 

 서하면 오현마을 곶감 건조장에서는 김남희(56)씨와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곶감을 말립니다.  

 조선 시대 임금님께 진상했을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난 지리산 함양 곶감은 8일 서하면 곶감 경매장에서 열린 초매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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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지리산 자락 함양의 겨울맞이. 목화솜 수확과 목화솜 이불 만들기.  2016.12.13.  [email protected]
 지난해에는 비가 많이 내려 곶감이 잘 마르지 않은 탓에 농가들의 근심이 깊었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행히도 꾸덕꾸덕 잘 말라가고 있긴 한데요. 감 농사가 풍년이다 보니 곶감 가격도 하락할까 걱정이라고 합니다. 농사가 잘 안 돼도, 반대로 너무 잘 돼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건조장에는 곶감 말고 감 말랭이도 있습니다. 감 말랭이를 열심히 담고 있는 한 어머니의 손에서 소녀 감성을 발견했습니다. 지난 초여름부터 손톱을 곱게 수놓다 이제는 끝에 살짝 흔적만 남은 봉숭아 물이 감 빛깔처럼 붉고 곱습니다.  

 꼬들꼬들 잘 마른 감 말랭이 하나를 입에 넣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맛입니다. 한 웅큼 집었는데 금세 빈손이 됩니다. 옻 작업장 심상달 어르신과 보덕스님이 주신 곶감이 보드라운 달콤함을 선사했다면 감 말랭이는 또 다른 미각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함양읍 백천리 2000평 규모의 목화밭을 찾았습니다. 수확기를 맞은 목화는 꽃봉오리에서 몽글몽글 하얀 솜을 툭툭 터트렸습니다. 이곳에서 10년째 목화 농사를 짓는 농민 임채장(63)씨가 목화솜을 따느라 분주합니다. 열심히 수확한 목화를 갖고 인근 면업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임씨는 장판 위에 방금 수확한 목화를 넓게 펼쳐 말립니다. 그다음엔 그동안 말려뒀던 목화에서 씨를 털어내고 남은 부드러운 솜을 솜틀기에 넣습니다. 솜틀기가 열심히 뱅글뱅글 돌아가니 목화솜이 어느덧 넓적하고 도톰한 이불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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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뉴시스】조수정 기자 = 5일 경남 함양군에서 지리산 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2016.12.07.  [email protected]
 임씨는 우리 목화로 만든 좋은 이불솜이 값싼 중국산에 밀려 잘 안 팔린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임씨는 형편이 어려운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매년 직접 지은 목화솜 이불 10채씩을 기부한답니다. 금액(200만원 상당)을 떠니 목화솜 이불 만큼 따뜻한 나눔입니다.

 문득 조선 제21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중전 간택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후보들이 "장미" "모란" 등을 꼽은 것과 달리 그는 꽃 모양이 볼품없는 "목화"라고 답한 뒤 "추운 겨울 백성을 따뜻하게 해줄 의복을 짓는 목화솜을 만들게 해주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죠.  

 딱 여기까지 취재를 마치니 지리산 능선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습니다.

 산골 마을의 겨울, 카메라를 든 채 이곳저곳 누비느라 손도 발도 참 추웠습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마치 옻나무 그을리는 화로 앞에만 있었던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산골마을의 후한 인심, 진한 정 덕이었다고 굳이 이유를 밝히면 사족(蛇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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