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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품어야"…첫차 타는 사람들

등록 2017-01-10 06:50:00   최종수정 2017-01-16 1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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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3일 이른 새벽 서울 지하철 3호선 첫차로 출근하는 시민의 모습. 2017.01.03.

 chocrystal@newsis.com
어제의 끝과 오늘의 시작을 잇는 시간, 새벽은 언제나 그렇듯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첫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해가 바뀐 새벽이라도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습니다.

 혹자는 첫차를 타는 사람들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라고 합니다. 하지만, 새벽녘 깨어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을 본다면 공허한 소리입니다. 곱씹을수록 반감이 들기도 합니다.

 첫차에는 대부분 생업을 위해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몸을 싣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시간은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새벽이 간절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지만, 거드름도 게으름도 피울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하루의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노동은 신성함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이자 고단함입니다.

 저마다 첫차에 몸을 싣는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억척스럽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하리라는 당찬 희망을 품으며 누구보다 하루를 먼저 시작합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 첫차를 타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았습니다. 새해에는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비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정유년 새해 첫 출근일인 지난 2일 어슴푸레한 새벽 5시 지하철 4호선 범계역(경기 안양시). 동이 트기 전이라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았다. 을씨년스런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찬바람을 맞으며 첫차를 기다리는 승객들. 어디를 향해가는 것일까. 첫차가 오기까지 20여 분이 남았지만, 플랫폼에는 서울로 향하는 전동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낡은 가방을 손에 든 아주머니들과 깊게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들이 유독 많았다. 생업을 위해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이었다. 비가 내린 탓인지 이들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아 보였다.

 무채색 계열의 두꺼운 겨울 외투와 목도리, 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은 차가운 날씨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애타는 눈빛으로 전동차 알림판과 휴대전화 시계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들은 애써 감싸 올린 목도리에 얼굴을 깊게 파묻거나, 양손은 외투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고 추위를 달랬다.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전화에 열중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첫차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감내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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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3일 이른 새벽 서울 지하철 4호선 열차로 출근하는 시민들의 모습. 2017.01.03.

 chocrystal@newsis.com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는 강모(65)씨는 "첫차를 타는 사람들은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래도 이 나이에 일할 수 있고, 무엇인가를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경비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막내아들 결혼 비용을 위해 적금을 붓고 있다"며 "새벽 첫차가 있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교통비도 절감되고, 마음 편하게 일터로 출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첫차를 탄다. 24시간 교대제로 격일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출근하는 날에는 늦지 않기 위해서 집에서 오전 4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검은색 패딩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서복자(65·여)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새해 첫 출근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다. 당장 생계가 중요한 사람들에게 첫차는 없어서는 안 된다"고 기자에게 답하는 사이에도 연신 전동차 알림판을 바라봤다.

 밤샘 근무를 마친 사람에게도 첫차는 고마운 존재다.

 이날 새벽 4시까지 대리운전 일을 하다가 첫차를 타고 귀갓길에 오른 정모(41)씨는 "한 푼이 아쉬워서 밤일하는 사람들에게 첫차는 차비도 아끼고 피곤한 몸을 뉘일 수 있는 고마운 존재…"라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대답했다.

 첫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당고개행 열차가 들어오겠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타는 곳 안쪽으로 한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은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한 자리씩 차지했다. 정씨도 대답을 끝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은 정씨는 휴대전화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한 건이라도 더 잡아보려 애썼지만 마땅치 않았다. 어느새 정씨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거리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은 열차에 오르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잔뜩 웅크리고 부족한 잠을 청했다.

 출입문이 닫히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 안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최종 목적지를 알리는 전광판 불빛만 연신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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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3일 새벽 시민들이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 구파발로 향하는 지하철 3호선 첫차에 올라 출근하고 있다. 2017.01.03.

 chocrystal@newsis.com
출입문과 맞닿은 가장자리에 앉은 최영순(66·여)씨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도 꾸준히 하고, 우리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 그것뿐이지 뭐…"

 사당역 인근의 한 건물 청소일을 하는 최씨는 쑥스러운 듯 애꿎은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정해진 시간 내 일을 마치려면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한단다.

 비정규직인 최씨는 정규직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나타났다 사라져야 한단다. 이제 포기했는지,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최씨는 자신을 '유령'에 빗댔다.

 열차 안에는 새해 벽두부터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만 한 수첩에 무언가를 계속 적고 있는 직장인이 눈에 띄었다.

 2년 전 취업에 성공한 한모(32)씨다. 한씨는 올해부터 1시간 먼저 출근하기로 다짐했다.

 "새해 첫 출근이라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오늘부터 출퇴근길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스스로 약속했어요. 작심삼일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 자신이 없어요"

 한씨는 회사와 가까운 이수역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파묻고 다른 한 손으로 수첩의 빈칸을 채웠다.

 커다란 가방을 멘 휴학생 김구민(27)씨는 1년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학원 수업은 오전 7시에 시작하지만, 강의실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일찌감치 나왔단다.

 김씨는 의자에 몸을 기대 챈 경찰공무원 교재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에게 올해 소망에 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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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3일 새벽 시민들이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 구파발로 향하는 지하철 3호선 첫차에 올라 출근하고 있다.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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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최종 합격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것이 새해 소망입니다."

 첫차 안에는 자녀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가장도 몸을 실었다.

 2년 전 사업 실패로 서울 동대문의 한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박모(54)씨는 "딸 아이 대학 등록금 걱정으로 혼자서 끙끙 속병을 앓고 있다"며 "대학에 합격한 딸이 기뻐하면서도 집안 사정을 걱정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바라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아버지로서 미안하고 안타깝다"며 '딸아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생각…"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씨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사랑하는 내 딸 XX'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전 6시가 가까워지자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앳된 얼굴의 한 여성이 혜화역 도착 안내방송이 나오자 열차 출입문 창문을 바라보며 옷매무시를 하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일터로 향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 여성은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일터로 향하는 아버지, 가족의 건강이 제일이라는 어머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졸음을 쫓아가며 도전에 나선 20대 청춘까지. 첫차는 저마다 소중한 희망을 품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첫차를 타는 사람들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해 첫 새벽에도 어김없었다. 누구보다 하루를 일찍 열었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오전 6시께 어슴푸레 빛이 들며 동이 트기 시작했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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