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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다 이해하지 못해 슬픈…'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등록 2017-12-05 11:42:43   최종수정 2017-12-12 09: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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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두 여자의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간단히 정리해버리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감독 청궈샹)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친구와 이들의 엇갈린 사랑,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이 작품을 간편하게 취급하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마음이 남는다. 이 작품의 상투성 끝에는 결코 진부하지 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어떤 짐작 때문이다.

 열세살에 만나 스물일곱살까지 함께한 칠월(저우동위)과 안생(마쓰춘)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현지 제목은 이보다 더 간단한 '소울메이트'다. 관객으로 하여금 '우정' 혹은 '사랑' 같은 단어를 강제하는 단어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다르다. '칠월과 안생', 이 말에는 감성은 없고 두 사람만 있다. 다만, 성의 없어 보일 정도로 건조한 이 제목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속 슬픔의 정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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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안생이 칠월이 인터넷에 올린 '칠월과 안생'이라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13살 첫 만남이 시작된다. 플래시백은 새로울 게 없는 형식. 많은 영화가 사용하고, 단순히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목적 없이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플래시백에는 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이 방식이 영화의 실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라는 점이다.

 플래시백의 근거가 되는 칠월의 글이 소설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소설은 결국 허구일테니 글에 담긴 안생의 삶은 칠월이 추측해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지고보면 칠월과 안생은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었다. 두 사람은 네 번 이별했고, 함께해서 좋았던 시간만큼 함께한 탓에 눈물 흘린 기억도 많았다. 성격마저 반대였던 이들의 인생은 고등학교 진학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엇갈린다. 영화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끔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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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월과 안생이 첫 번째 이별을 맞을 때, 이같은 대사가 들어간 건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날 칠월은 한참을 울었다. 가명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헤어짐이 슬픈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이었다. 안생을 자신만큼 사랑할 수 없어 실망했고, 안생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낙담했다. 예전에는 미처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란 걸." 칠월은 결코 안생과 영혼까지 나눌 수 없었다는 것. 안생도 마찬가지다. 그는 친구 칠월의 삶을 독자로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안생(安生)이 그의 이름처럼 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한다는 걸 칠월은 알지 못했다. 안정지향적인 칠월(七月)이 그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1년 중 가장 밝고 뜨거운 7월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걸 안생 또한 몰랐다. 두 사람 삶에 모두 개입한 남자 가명이 끝내 고개를 떨구고 눈물 흘리는 것 또한 그가 사랑했던 두 여인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해서다. 칠월과 안생의 우정에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은 건 신파가 아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관계의 한계에 좌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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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보여주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전개는 통속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칠월과 안생의 불완전한 관계와 이해를 110분 안에 담기 위해서는 더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을 거라는 게 첫 번째 변론. 통속성은 어쩌면 필부필부의 삶을 더 명확히 보여주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게 두 번째 변론이다. 세 번째 변론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과정은 관습적이지만 뻔하지 않은 결론을 내놨다면 그것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후반부 반전보다 중요한 건 영화가 칠월과 안생의 관계를 끝내 낭만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칠월은 안생의 삶을 살고, 안생은 칠월의 삶을 산다. 이 양상이 두 친구가 서로의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저 두 사람은 각자 진정 원했던 다른 길을 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랜 친구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확장됐을 뿐이다. 그들은 영혼까지 공유하는 소울메이트가 아니라 단지 '칠월과 안생', 달라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해피엔딩일 수 없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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