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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혁 덕분이다, 관악기 콤플렉스 마침내 탈피한 한국

등록 2018-07-30 10:30:21   최종수정 2018-08-07 10: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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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뉴시스】 이재훈 기자 = "벅찼어요.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한 사흘 안에 하나의 팀이 돼 만족스런 팀워크를 보인 것 같아요."

28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펼쳐진 콘서트 '고잉 홈'은 제15회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하이라이트였다. 손열음(32) 음악감독이 구성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이다.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20, 30대 쟁쟁한 젊은 연주자들이 주축이 된 100여명으로 이뤄졌다. 

세계 정상급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인 조인혁(35)은 이 드림팀을 통해 평창 대관령 음악제에 처음 참여했다.

이날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러시아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지휘로 들려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에는 호평이 쏟아졌다. 불과 4차례 리허설로 일궈낸 탄탄한 호흡이다. 다른 클라리넷 연주자들인 조성호, 이창희와 함께 정갈한 목관 악기의 매력을 뽐냈다.

공연 다음날 조인혁은 "처음에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 소리가 맞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서로 듣고 맞춰보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꾸준히 오케스트라를 경험하다 보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서로 맞추려고 하죠. 다들 그런 경험이 자연스레 우러나온 거 같아요. 첫날에는 혹자의 말을 빌리면 카오스 상태였거든요. 하하. 둘째 날부터 많이 달라졌죠."

조인혁은 손열음과 한국예술종합 학교 동기생이다. 한예종 시절 후배인 조성호, 이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종종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또래 젊은 연주자들이 주축이 됐지만 친분을 우선시한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맹활약하는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들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형성된 라인업이다. "그런 연주자들을 찾다 보니 구성원이 젊어졌어요. 목관 섹션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한명도 없더라고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물 흐르듯 세대가 교체된 클래식 음악계의 트렌드도 확인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맏형 격이자 10여년 전부터 명문 도쿄 필하모닉의 바순 수석으로 있는 최영진은 "손열음과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저희가 선배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데 말이죠. 이렇게까지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많은 지 모르셨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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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과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수학한 조인혁은 우연히 클라리넷을 시작했다. 부친이 취미로 불던 클라리넷을 창고에 보관했는데, 조인혁이 발견한 것이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이후 취미로 하다가 고향 동네에서는 드문 일이어서 인근 대도시인 대구로 나가 배웠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했고 예고로 진학했다.

 한예종에 입학했지만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이 모인 곳인만큼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견학을 갔다가 수업진행 방식에 끌려 이곳에 입학했다. 오케스트라 드 파리 연주자였던 스승의 눈에 띄었고,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악단 입단이 꿈이 됐다.

그러나 유럽의 악단 입단은 쉽지 않았다. 9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꽤 많은 시간과 돈도 들였다.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도 있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스위스 명문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게 됐다. 이후 가속도가 붙었다.

스위스 빈터투어 뮤직콜레기움 오케스트라, 스위스 바젤심포니의 클라리넷 종신 수석이 됐다. 2016년에는 수많은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들의 '꿈의 단체'로 통하는 뉴욕 메트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겼고 올해 초 종신 수석이 됐다. 이 악단의 목관 악기 수석을 아시아인이 차지한 것은 조인혁이 처음이다.

1883년 설립한 메트 오페라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조인혁의 이 오케스트라 입단이 특히 주목 받은 데는 '블라인드 오디션'이 있다. 1, 2, 3차 오디션을 치르는 동안 오직 소리로만 단원을 선발한다. 그가 오디션에 지원할 당시 미국의 다른 명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포함해 총 180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제가 뽑힐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우선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 때 미국에 처음 가봤거든요.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은 아시아인이 뽑힌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고 현지에서 얘기해요. 제 이름이 어려워 다들 그냥 미스터 조라고 해요.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조인혁을 비롯헤 이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참가한 연주자들은 한국이 '관악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해줬다는 평도 듣는다. 그간 피아니스트, 현악 연주자, 성악가에 비해 한국의 관악기 연주자들은 취약했기 때문이다.

조인혁은 "전 세대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 자양분이 됐다"며 겸손해했다. "세대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발전하게 된 거죠. 체질이 천천히 개선됐다고 봐요. 자연스럽게 악기를 연주하는 인구도 늘어났고요. 덕분에 함경(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제2오보에) 같은 연주자들이 나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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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스트로만 부각되기를 원한 예전의 클래식계 분위기와 달리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또 다른 연주자의 길을 개척하는 젊은 연주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클래식 문화가 성숙해졌다"고 봤다. "이제 (한국에서도) 현대음악이 성숙해지면서 최소한 모든 것을 갖춰지게 됐다"는 판단이다. 

조인혁은 자신이 받은 자양분을 이미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년 전 여름부터 목관 악기 제작사인 부페 크람퐁의 지원을 받아 유망주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다.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FO)'처럼 되기를 바란다.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3주간 다양한 음악회를 소화하는 프로젝트성 교향악단으로 유럽 정상급 악단들의 악장과 각 악기 수석 연주자 등이 모여 '오케스트라의 드림팀'으로 불린다.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투어도 돈다.

"저희도 같은 멤버로 서울과 전국에서 공연하고 아시아 투어도 돌면 뿌듯할 거 같아요. 아직은 첫 해니까 해를 거듭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루체른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것이 꿈이듯 평창 대관령 음악제가 그에 부럽지 않은 축제가 됐으면 해요."
  
조인혁은 이어지는 평창 대관령 음악제에서 8월1일 체임버뮤직시리즈 '100℃', 2일 목관을 위한 세레나데 '그랑 파르티타', 8월4일 폐막공연인 '한여름 밤의 꿈'에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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