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박대종 문화소통]3·1 조선독립 천세 아닌, 대한독립 만세···왜?

등록 2019-02-27 06:12:00   최종수정 2019-03-04 10:52:5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1919년 3월 1일 그 날 이 땅의 우국지사들은 ‘조선독립천세’가 아닌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두 외침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세종대왕 때도 외치지 못한 ‘만세’ 소리를 그 날 지구촌이 떠나라 하고 크게 외친 것이다. 그 날 이후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망각된 채 단지 무의식적으로만 쓰고 있는 그 함성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원한은 원한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다. 서로 이웃나라로서 보다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선린 관계를 지향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간 얽힌 은원 관계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고려 말기 이성계 장군과 일본의 명장이었던 아기발도 얘기부터 해야겠다.

고려의 제32대 우왕(禑王: 1374∼1388) 때 왜적 5백 척이 충청도 서천군 남쪽의 진포에 정박했다. 노략질 및 사람들을 마구 죽여 시체가 산을 덮을 정도였는데 그간 왜구의 환란이 있은 이래 가장 심한 피해였다. 고려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3도 도순찰사로 삼고 진압하도록 했다. 함양·남원·운봉·인월 등에서 적의 세력은 매우 치열했다.

<용비어천가> 제50장에 기록하기를, 당시 적장 가운데 15~16세 남짓한 자가 있었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미남인데다가 용맹하기가 비할 데 없었다. 아군에서는 그를 아기발도(阿其拔都)라 부르며 다투기를 꺼려했다. 비록 적이지만 이성계는 그 용맹함을 아껴 여진족 출신 명장 퉁두란에게 사로잡으라고 명하면서 계책을 논의했다. 아기발도는 몸은 물론 얼굴에도 철갑을 썼기 때문에 활을 쏠 틈이 없었다. 일단 투구를 벗겨야만 승산이 있었다. 이성계가 먼저 말을 달려 활을 쏘아 투구의 꼭지를 정통으로 맞히니 투구 끈이 끊어져 투구가 비스듬히 벗겨졌다. 아기발도는 급히 투구를 바로 했다. 이성계가 재차 쏘니 또 꼭지에 맞아 드디어 투구가 떨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퉁두란이 그를 쏘아 죽였다. 이로 인해 왜적의 기세가 크게 꺾이고 패주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나라를 구한 커다란 공들이 이어져, 마침내 이성계는 1392년 음력 7월 17일 백관의 추대를 받아 조선의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원년이라 할 수 있는 1393년 정월 초하루에 백관의 조하를 받고, 명나라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하여 새해를 축하하는 의식을 가진다. 이 날 잔치에서 좌시중 조준이 “새해 아침에 신 등은 큰 경사를 감내하지 못하여 삼가 천세수를 올립니다.”라고 하자, 여러 신하들이 모두 ‘천세(千歲)’를 세 번 외쳤다. 고대 봉건사회의 예법에 따르면, 황제국만 ‘만세’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불변하는 것은 없다. 황제국이 제후국이 되고 제후국이 황제국이 된다. 일본이 또다시 이 땅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임진왜란(1592~1598년)이 끝나고, 얼마 후 1616년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여 후금국을 세우고, 1636년 태종 때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개칭하였다. 한반도 내에서 발원하고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퉁두란의 그 여진족이 황제국 ‘대청제국’을 세운 것이다. 명심하자. 고대 용법에 따르면 황제국은 앞에 ‘大’자를 붙인다.

국제정세가 이렇게 변하는 과정에서, 조선 또한 1897년 10월 12일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바꾸고, 고종은 황제가 되었다. 이때부터 왕의 명령은 황제의 명령처럼 ‘칙(勅)’이라 호칭됐고, 고종은 스스로를 부를 때 황제의 용어인 ‘짐(朕)’을 사용했다.

그 후 1910년 8월 ‘대한제국’의 국권이 역시 황제국을 표방한 ‘대일본제국’에 의해 피탈되었다. 외세의 통제를 받는 ‘비독립’의 상태에 이른 지 9년 뒤인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고, 많은 참가자들은 2월 1일 대한독립선언 때와 마찬가지로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그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기 전이니, 그 함성 속의 ‘대한’은 당연히 황제국인 ‘대한제국’을 나타낸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텝진으로 위클리 기사를 읽어보세요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