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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의 흑역사, 된소리(ㅺ)와 긴소리(ㄲ)

등록 2019-07-09 06:02:00   최종수정 2019-07-15 10: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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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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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훈민정음 된소리 표기의 왜곡 역사. ㅅ과 ㅂ을 이용하던 것이, 조선총독부가 1912년엔 ‘ㅅ’만을, 1930년엔 각자병서로 왜곡함.

현재 우리는 ㄲ, ㄸ 등의 쌍자음을 ‘된소리’ 글자로 쓰고 있다. 그러나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이래 573년이 경과하는 훈민정음 역사 중, 우리가 세종대왕의 뜻에 어긋나게 쌍자음을 전면적으로 ‘된소리’ 표기에 사용한 기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진1>에서 보듯, 최초 훈민정음이 반포될 당시엔 된소리 표기는 된시옷과 된비읍을 사용했다. ‘地(따 지)’의 ‘따’는 ‘ㄸ’이 아니라 된시옷이 들어간 ‘ㅼ’을 초성에 썼다. 그리고 ‘隻(짝 척)’의 경우 ‘ㅉ’이 아니라 같은 치음끼리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된비읍이 들어간 ‘ㅶ’을 초성에 썼다.

그러던 것이 1912년 4월 일제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한국어 맞춤법인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선 된소리 표기가 오직 ‘된시옷’ 하나로 통일됐다. ‘된비읍’은 폐기되었고, 일생 동안 훈민정음 해례본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주시경의 각자병서(ㄲㄸㅃㅆㅉ)를 이용한 된소리 표기 주장은, 이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주시경은 1914년 7월에 사망했다.

그러다가 1930년 2월 들어 조선총독부는 된시옷마저 폐기하고 된소리 표기에 같은 글자들을 병서하는 주시경 식 ‘언문철자법’을 공표했다. 그 이래 오늘날까지 90여 년간,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전탁(全濁)’ 소리를 나타내는 ㄲㄸㅃㅉㅆㆅ 중 ㆅ을 제외한 다섯 글자가 우리말의 된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왜곡돼 쓰여 오고 있다.

언문철자법 이후 1940년에 기적처럼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본)이 발견됐다. 거기에 <사진2>에서처럼 ㄲㄸㅃㅉㅆㆅ의 ‘전탁 소리’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全淸並書則爲全濁, 以其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장에 대해 지금껏 우리 국어학계에선 “전청을 나란히 쓰면 전탁이 되는 것은 전청의 소리가 엉기면 전탁이 되기 때문이다.”로 번역해왔다. 이 문장의 핵심어인 ‘凝(응)’을 단순히 ‘엉기다’의 뜻으로 본 번역이다.

그러한 번역은 당연히 주시경의 된소리 이론과 일치해야 한다. 그래서 그를 추종하는 국어학자들은 전청이 엉기면 전탁 된소리가 되는 실제 예를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각가[가까], 받도록[바또록], 업보[어뽀], 짓소[지쏘]’ 등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업보’에서 ‘보’는 앞글자의 종성 ㅂ과 결합하여=엉겨 된소리 ‘뽀’로 발음된다는 것인데, 그러한 설명의 아킬레스건은 ‘ㅎ→ㆅ’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종성 ㅎ과 초성 ㅎ이 결합돼 된소리가 되는 예를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주시경 이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고 또 위 문장의 ‘凝(응)’을 ‘엉기다’로 본 것이 오역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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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훈민정음해례 “全淸之聲凝則爲全濁也” 속의 ‘凝(응)’은 ‘엉기다’가 아니라 ‘천천히 길게 끌다’의 뜻. 고로 전탁은 ‘된소리’ 아닌 ‘긴소리’.

그렇다면 위 문장에서 전탁 소리의 설명에 쓰인 ‘凝’은 무슨 뜻일까?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발간 ‘한한대사전’ 2권에 기재된 ‘凝’의 9개 의미 중 소리와 관련된 뜻은 단 하나, ‘문선(文選)’ 주석의 “徐引聲謂之凝(소리를 천천히 길게 끄는 것을 일러 ‘凝’이라 함)”을 근거로 한 ‘음조가 느리다’ 뿐이다. 따라서 그 문장은 “전청 소리를 천천히 길게 끌면 전탁이 되기 때문이다”가 바른 번역이다. 전청은 빠르고 짧은 소리며 전탁은 느리고 긴 소리인 것이다.

한편, 전탁 소리에 대한 해례본 설명문을 대할 때,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성대 진동’이라는 표현이 없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성대 진동’은 서구 언어학적 표현이다. 해례본 설명엔 주목하지 않고 현대적 관념에만 치우쳐 ‘전청은 무성음’, ‘전탁은 유성음’이라고만 하는 건 전체를 보지 못한 것이다. 동국정운에서 세종은 ‘大’의 정음을 긴소리 ㄸ을 쓴 ‘때’라 밝혔다. 그래서 후손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를 장음으로 발음한다. ‘韓’의 정음 또한 그 초성이 전탁 ‘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한국’의 ‘한’은 지금도 장음인 것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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