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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28자, 천문 28수를 따랐다?···오해

등록 2019-08-06 06:01:00   최종수정 2019-08-12 09: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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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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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宿)는 중앙과는 무관한 동서남북 4방의 별자리. 왼쪽 ‘정음 28자 천문도’에는 중앙토에 해당하는 ㅁㅂㅍ과 무방위 중성 ‘ㅣ’가 없음.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28자의 창제와 관련하여 몇 년 전 “28수(宿) 천문도가 그 배경”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러더니 최근엔, 훈민정음 28자의 숫자 28은 천문 28수에 맞춘 것이라는 식으로 변질되어 어느 영화에 나타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세종께서 “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28자를 맹가노니”라고 천명한 28자는 초성 17자와 중성 11자이다. 초성 17자는 아설순치후의 순서대로 ㄱㅋㆁ,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ㆆㅎㅇ의 15자와 ㄹㅿ 2개자이다. 중성 11자는 천지인을 상형한 기본자 3개(•, ㅡ, l)와 초출자 4개(ㅗ, ㅏ, ㅜ, ㅓ) 및 재출자 4개(ㅛ, ㅑ, ㅠ, ㅕ)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천문 체계에서 28수는 동청룡 7개(角각, 亢항, 氐저, 房방, 心심, 尾미, 箕기), 북현무 7개(斗두, 牛우, 女여, 虛허, 危위, 室실, 壁벽), 서백호 7개(奎규, 婁루, 胃위, 昴묘, 畢필, 觜자, 參삼), 남주작 7개(井정, 鬼귀, 柳류, 星성, 張장,  翼익, 軫진)의 별자리다.

<사진>의 천문도들에서 보듯, 28수는 동서남북 4방에만 관계하지 5방 중 ‘중앙’과는 무관한 부분적 방위 개념이다. 우리와 중국의 고대 천문 체계는 방위 상 중앙의 3원(三垣)을 포함한 ‘3원 28수’의 전체적 개념이었다. 하늘 중앙에 있는 3원은 중심점인 북극성 주위의 ‘자미원’을 비롯하여, 태미원 및 천시원을 이른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바라본 하늘의 별자리는 중앙의 3개와 사방 28개를 합쳐 모두 5방 31개 체계였다.

고로 세종께서 시종일관 고대 하늘의 천문도를 염두에 두고 훈민정음을 거기에 맞춰 인위적으로 제작하였다면 31개로 맞추지 28개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훈민정음 28자 중 중성 ‘ㅣ’자를 제외한 나머지 27개자는 하늘의 31개(3원+28수) 별자리처럼 방위와 관계가 있기는 하다. 초성 중에서 아음 ㄱㅋㆁ은 28수 중 ‘각항저방심미기’처럼 동쪽, 설음 ㄷㅌㄴ은 ‘정귀류성장익진’처럼 남쪽, 치음 ㅈㅊㅅ은 ‘규루위묘필자삼’처럼 서쪽, 후음 ㆆㅎㅇ은 ‘두우여허위실벽’처럼 북쪽을 나타낸다.

하지만 순음 ㅂㅍㅁ과 ‘•, ㅡ’는 방위가 ‘중앙’이어서, 중앙과는 무관한 동서남북 4방의 28수에 대응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28수 천문도가 훈민정음 28자의 창제 배경이라고 주장했던 연구자가 작성한 <사진> 내 ‘정음 28자 천문도’를 보면, ‘ㅂㅍㅁ’이 없다. 그러한 주장이 합당하려면, 동서남북의 28수만 가지곤 아니 되므로 중앙의 3원 별자리까지 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28+3=31이 되어 ‘중앙’을 내포한 훈민정음 28자와는 맞지 않게 된다.

그 주장과 관련한 논리적 모순은, 중앙 없는 동서남북의 28수와 중앙을 포함한 훈민정음 28자간의 충돌만이 아니다. 그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 거쳐야 할 난관이 또 있으니, 훈민정음 28자 중 사람을 상형한 ‘ㅣ’가 바로 그것이다. 중성 ‘ㅣ’는 방위 상 동서남북은 물론 ‘중앙’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훈민정음해례 7장에서는, “ㅣ만이 유독 방위와 수가 없는 것은, 대개 사람은 무극의 본성과 음양오행의 정기가 묘하게 합하여 응집된 것으로 본디 일정한 방위와 일정한 수로써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사진> 내 ‘정음 28자 천문도’에 중성 ‘ㅣ’가 없음은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이 3원 28수와 무관함을 증명한다.

세종께서는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나랏말소리를 적는 표음문자를 창제하셨다. 중국음을 적는 글자들을 제외하고,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에 기재된 초성의 수는 17자+전탁6+된소리7+기타4=34이고, 중성의 경우 11자+10자(1자중성과 ㅣ의 합침)+4자(2자중성과 ㅣ의 합침)=25 하여 모두 60여 개다.

2018년 11월 20일자 ‘세종대왕의 양심’ 편에서 밝힌 것처럼, 세종께서 이 60여 개 중, 각자병서와 합용병서 및 ‘ㅣ’와 합친 중성 14개자의 글자들은 빼고 셈한 결과, ‘28자’란 수가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다. 고로 28수 천문도에 맞춰 인위적으로 훈민정음의 수를 28개로 맞춘 것 아니냐는 시각은 오해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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