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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600년 지나 적중한 최만리의 예언

등록 2019-09-17 10:00:00   최종수정 2019-09-23 09: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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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세종대왕이 사용한 ‘언문(諺文)’의 정확한 뜻은 지금도 모른다. 중국 漢典(한전)의 ‘비언(鄙諺)’ 설명과 달리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품위가 매우 낮은 말이나 속담’으로 비하적 정의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표음문자로 너무나 감사한 훈민정음이지만, 1444년 1월 창제 이후 반포 시행되는 과정에서 첨예한 갈등이 없진 않았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필히 그 반대되는 움직임 또한 생겨나는 것이 세상 법칙이기 때문이다.

1444년 양력 1월19일자 세종실록은 “이달에 주상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창제하였는데…이것을 일러 훈민정음이라 하였다”고 알렸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 내 정인지의 다음 증언과 완전 일치한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는, 그 용례와 의미들을 간략히 들어 보여주시면서,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諺(언)은 ‘상말=상어(常語: 일상어)’ 및 ‘속어=통속어’를 뜻하므로, 조선왕조실록에서의 ‘언문(諺文)’은 조선의 일상어 또는 민간 통속어를 표기하는데 쓰는 표음문자로, ‘훈민정음’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여러 국어사전들에서는 ‘언문’을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로 정의하고 ‘상말’에 대해서는 ‘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문’을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비하하는 용어라고 곡해한 것이다. 한자어의 본뜻을 왜곡하는 이런 부정적 시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훈민정음 창제 후 두 달 여 지난 1444년 양력 3월9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송처검·조근 등 총 7명이 훈민정음의 시행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세종이 1444년 1월에 집현전의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 등 총 8명에게 자신의 간략한 훈민정음 예의(例義)본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는 해설서를 만들라고 명을 내리자, 훈민정음을 과거 과목으로 선정 범국가적 시행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그에 대한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이다. 그 상소문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언문을 시행하신다면 관리된 자들은 오로지 언문(한글)만을 습득하고 학문하는 문자(한자)를 살펴보지 않게 돼 관리들은 둘로 나뉠 것입니다. 진실로 관리 된 자가 언문을 배워 입신한다면, 후진들이 모두 그걸 보고 생각하기를, ‘27자(28자의 잘못)의 언문만으로도 족히 세상에 입신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심해가며 성리의 학문을 궁구할 것인가?’ 할 것입니다. 이리 되면 수십 년 후엔 한자를 아는 자가 필히 적어져, 언문으로 관리업무를 집행할 수 있다 해도, 성현의 문자를 모르고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마주 한 것처럼 사리의 옳고 그름에 어두울 것이니, 언문만 배워 익힌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누적해온 학문숭상의 교화가 점차로 땅을 쓸어버린 듯 없어지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세종대왕은 여러 사항들을 고려하면서 순 한문으로 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작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뜻을 갖고 있는 어떤 한자들에 대해 읽는 이 또는 후손들이 오해치 않도록 ‘4성 권점’을 붙이고 또 한문 사이에 구두점을 찍는 등 정교하게 조치하여 1446년 9월 해례본을 완성, 반포한다. 그리고는 음력 12월26일부터 시작, 1447년 음력 4월20일엔 범국가적으로 각 관아의 이과 시험에 모두 훈민정음을 시험토록 명했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1948년 10월9일 대한민국 정부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공포한다. ‘한글 전용(한글만 오로지 쓰기)’ 곧 최만리 등의 상소문에서 언급한 “언문만 배워 익힌”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현 세대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중요 문구들을 이해치 못함은 물론, ‘속어, 언어(諺語)’와 동의어인 최만리 상소문 중의 ‘鄙諺(비언)’을 ‘야비하고 상스러움’으로 곡해하는 불통세대가 되었다.

세종의 의도는 한자를 버리고 오직 한글만 쓰라고 한 건 당연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조상들의 축적된 학문과 단절됨이 계속되고 있으니 최만리 등의 예언은 일부 적중한 셈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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