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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훈민정음 초성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

등록 2019-10-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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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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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훈민정음해례본 맨 앞쪽 ‘어제훈민정음’ 편 안에 수록된 초성 23자에 대한 세종의 노랫말 ‘세종어제명칭시가’. (해석 박대종)
【서울=뉴시스】 단군께서 조선을 개국한 이래, 우리 민족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두 분의 위인을 들라면 단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손꼽힌다. 두 분 다 문무를 겸비했지만, 특히 세종은 영원의 문업(文業)을 이루었고 충무공은 불멸의 무업(武業)을 달성했다. 

세종대왕은 ‘성군’ 또는 ‘어진 임금’의 대명사다. ‘어진 임금’은 한자어로 ‘賢君(현군)’이다. 세종은 ‘어린 백성(愚民)’을 사랑한 현군이었다. 노자는 도덕경 15장에서 “옛날에 도를 잘 행하는 현자들은 미묘한 지혜와 하늘과 상통하는 이해력이 있어,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고 했다. 이로 보아 ‘어짐’과 ‘어림’의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이해의 심도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자는 ‘결과’라는 한쪽만 보지만, 현자는 그 ‘결과’를 있게 한 ‘원인=근본’까지의 전체를 본다. 세종께서는 나라의 부강과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역대 여러 나라들의 ‘흥’ 또는 ‘망’의 발생 원인을 깊이 살폈다. 정음 반포 10년 전, 집현전의 이계전이 쓴 ‘역대세년가’ 서문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천하 국가의 치란흥망은 실로 제왕의 귀감이자, 배우는 이들이 마땅히 강구해야 할 바이다. 우리 전하께오서 文을 숭상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조상으로서 교훈을 남겨 후손들을 유복케 하려는 뜻은 아아! 지극하도다.”
 
놀랍게도, 위 “文을 숭상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조상으로서 교훈을 남겨 후손들을 잘살게 하려는” 세종의 지극한 뜻은 훈민정음해례본 맨 앞쪽 ‘어제훈민정음’ 편 안에 수록된 초성 23자에 대한 노랫말 속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초성 23자를 하나의 시가로 엮은 세종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군왕과 용왕이 기뻐하는 과업은, 두성의 밝은 빛이 미치고 에워싸 천하가 평안한 것이니라. 활이 뒤틀리면 화살의 진행은 방향을 잃고 활시위는 느슨해지는(근본이 틀어지면 나랏배는 표류하고 기강이 해이해지는) 즉, 그로 인해 흉년이 들고 만사가 어그러질 것을 가엾이 여겨, 허공의 큰물(은하수)을 두수로 떠서 마을마다(방방곡곡) 풍년 들게 하고 싶어라: 君虯快業, 斗覃呑那, 彆步漂彌, 即慈侵戌邪, 挹虛洪欲 閭穰” 
 
입술소리 네 글자 彆步漂彌(별뽀표미: ㅂㅃㅍㅁ)에 대한 직역은 ‘활이 뒤틀리면 화살의 진행은 방향을 잃고 활시위는 느슨해진다’이다. 그것을 뒷말과 연계하여 의역하면 ‘근본이 틀어지면 나랏배는 표류하고 기강은 해이해진다’가 된다. 그리고 이때의 ‘근본’은 ‘서경·오자지가’에 나오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 및 향후 온 나라 사람들의 어문 생활에 있어서 근본이 될 ‘훈민정음’을 아울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1444년 음력 2월 20일 세종께서 최만리 등에게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4성7음에 자모가 몇 개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겠느냐?”라고 일갈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위 어제명칭시가의 “근본이 틀어지면 나랏배는 표류하고 기강은 해이해지는 즉, 그로 인해 흉년이 들고 만사가 어그러질 것”을 역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근본이 바로잡히면 나랏배는 순항하고 기강은 엄정하게 되는 즉, 그로 인해 풍년이 들고 만사가 형통할 것”이 되니, 이게 바로 교훈을 남겨 나라와 후손들을 부강케 하려 한 세종의 깊은 뜻이다.

무릇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표현하는 말과 글이 어그러지면, 바벨탑 이야기처럼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 나라는 정치·경제·안보 등 온갖 분야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이젠 1차 중종 때 최세진에 의한 왜곡, 2차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 의한 왜곡 등을 훈민정음으로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그래야 진정한 광복과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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