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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ㄹ’과 ‘ㅿ’자에 숨겨진 비밀

등록 2019-10-2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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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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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사진1>현존 가장 오래된 중국의 등운서(초간 1161년) 중 하나인 ‘운경(韻鏡)’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반설음’과 ‘반치음’을 설명한 부분.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28자 중, ‘ㄹ’과 ‘ㅿ’의 제자 원리는 아직껏 비밀에 쌓여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반적 상식은 ‘ㄹ’은 반설음, ‘ㅿ’은 반치음이라는 정도뿐이다. 대체 세종께서는 어떤 원리, 어떤 방법에 의해 ‘ㄹ’과 ‘ㅿ’의 자형을 창제하신 것일까? 매우 설명키 어려운 일이나 한 번 그 족적을 좇아가본다.

<사진1>에서 보듯, 해례본에는 ‘ㄹ’과 ‘ㅿ’의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은 없어도, 그 제자원리에 대한 단서가 되는 문구는 있다. 훈민정음해례 편 2장 앞면의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 無加劃之義焉”이 바로 그것이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반설음 ㄹ과 반치음 ㅿ자 또한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으나 그 자형은 (혓소리 ‘ㄷ, ㅌ’, 잇소리 ‘ㅈ, ㅊ’과는) 달리하였는데, (앞서 설명한 대로 소리가 점점 더 빠르게 나기 때문에 획을 덧붙인 ㄱ→ㅋ, ㄴ→ㄷ, ㅇ→ㆆ과 같은) 가획의 뜻은 없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정인지는 증언했다.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는, 신하들에게 그 용례와 의미들을 간략히 들어 보이며,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보다 상세히 해석을 가한 설명서를 작성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도록 명하셨다.” 하지만 각종 컬러사진 자료 및 최첨단 인쇄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하는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ㄹ’과 ‘ㅿ’에 대한 해례본의 설명은 빈약하다. 해례본에서 ‘ㄹ’과 ‘ㅿ’을 설명할 때 집어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대목이 ‘운경(韻鏡: 사진1의 왼쪽)’에 보인다.

남송 때의 ‘운경’은 현존 가장 오래된 중국의 등운서(초간 1161년) 중 하나이다. ‘동국정운’ 서문에서 신숙주가 증언한 것처럼 세종은 성운학에 마음을 두고 고금의 운서들을 두루 참작하였다. 그러니 ‘운경’에 나오는 다음 내용 또한 세심히 살폈을 것이다.

“혓소리 중에 잇소리가 함께 있고, 잇소리 중에 혓소리가 함께 있는 게 있으니, 옛사람이 ‘來(ㄹ)’와 ‘日(ㅿ)’의 2개 자모를 세웠다. 각각 半徵(반치)와 半商(반상)을 갖추어 그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니, ‘來(ㄹ)’로 말할 것 같으면 ‘혀’가 먼저고 ‘이’는 나중이어서 ‘舌齒(설치)’라 이르고, ‘日(ㅿ)’자의 경우엔 ‘이’가 먼저고 ‘혀’는 나중이므로 ‘齒舌(치설)’이라 부른다. 그래서 둘로 나뉘고 이 둘을 5음에 통하여 7음이라 한다.”(해석: 박대종)

다시 말해, 반설음이나 반치음이나 모두 ‘설음’과 ‘치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반설반치음’의 준말인 ‘반설음’은 반이 설음이나 나머지 반인 치음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 ‘반치반설음’의 준말인 ‘반치음’은 치음이 노출돼있으나 뒤에 설음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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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뉴시스】<사진2>‘ㄹ’과 ‘ㅿ’의 제자원리. ‘ㄹ’과 ‘ㅿ’ 모두 설음·치음의 양쪽 속성을 지닌 글자인데, 세종은 ‘ㄷ+ㅅ=ㄹ’, ‘ㅅ+ㄴ=ㅿ’의 합성자를 절묘하게 구현했다.
세종은 ‘운경’의 위 설명에 주목했다. 덧붙여, 우리나라 한자음 중 종성 ‘ㄹ’은 본래 입성 ‘ㄷ’ 소리가 변하여 가볍게 된 것이라는 결론(해례편 19장)을 도출했다. 그 사항들을 근거로 반설음은 <사진2>처럼 ‘ㄷ’ 위쪽에 ‘ㅅ’을 절묘하게 합성한 뒤, 숨은 그림 같은 ‘ㄹ’의 글꼴을 만들어냈다. 해례본 ‘ㅅ’들은 내각이 80° 이상으로 직각에 가깝다. 우로 약간 돌리면 ‘ㄱ’과 흡사한데, ‘ㄷ’에 붙인 후 ‘ㄷ’의 왼쪽 돌출 꼭지를 떼고 높이를 조절해 ‘ㄹ’을 완성했다.

반치음은 치음 ‘ㅅ’자 아래에 설음 ‘ㄴ’의 가로선을 합성하되 ‘ㄴ’의 세로선은 숨겨 ‘운경’의 설명대로 치음 안에 설음이 감춰져 있는 형상을 세종은 완벽히 구현해냈다. 정리하면, 반설음 ‘ㄹ’은 설음 ‘ㄷ’ 위쪽에 치음 ‘ㅅ’이 숨겨져 있는 합성자이고, 반치음 ‘ㅿ’은 치음 ‘ㅅ’ 아래에 설음 ‘ㄴ’이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합성자이다. <계속>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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