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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세종이 ‘여우’의 ‘엿’을 ‘ㅿ’으로 쓴 까닭

등록 2019-11-2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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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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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보면, 우리말 토속어 받침으로 8개의 종성 외에 ‘ㅿ’도 쓰였다. 받침에 ‘ㅅ’과 ‘ㅿ’을 쓰는 기준은 2음절어로의 변화유무였다.
【서울=뉴시스】 처음에 세종께서는 ‘ㅿ’자 또한 받침에 썼다. 그러던 것을 최종 ‘ㅅ’으로 표기하는 철자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과정에서의 고심은 매우 컸을 것이다. 동국정운(1447)에 쓰인 원칙적 조선한자음의 받침은 ‘ㆁ·ㄱ·ㄴ·ㅭ·ㅁ·ㅂ·ㅱ·ㅇ’의 8개자였다. 그에 비해 현대한국어에서 한자음을 적는데 쓰이는 받침=종성은 ‘ㄱ·ㄴ·ㄹ·ㅁ·ㅂ·ㅇ’의 6개자로 줄어들었다.

한자음이 아닌 토속어를 적음에 있어, 세종대왕이 최종 ‘팔종성가족용법’으로 규정한 받침은 ‘ㄱ·ㆁ·ㄷ·ㄴ·ㅂ·ㅁ·ㅅ·ㄹ’ 8개자였다(‘ㅅ’은 토속어용). 그런데 지금의 한글 체계에서는 그 수가 대폭 늘어난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ㄳㄵㄶㄺㄻㄼㄽㄾㄿㅀㅄㄲㅆ’의 27개자가 받침으로 쓰이고 있다. 받침 수의 증가는 우리글이 한층 더 복잡해졌음을 의미한다.
 
현대한국어 토박이말을 적는데 사용되는 받침은 형태적으론 27개이나 발음상으론 ‘ㄱ·ㄴ·ㄷ·ㄹ·ㅁ·ㅂ·ㅇ’의 7개 소리로만 구현된다. 받침에서 ‘ㄷ·ㅌ’은 물론 ‘ㅅ·ㅈ·ㅊ’은 모두 ‘ㄷ’ 소리로 발음된다. 일제 치하 시 제정된 ‘한글마춤법통일안(1933)’에서 위와 같이 받침 수를 대폭 늘인 까닭은 “철저하게 기본형과 어원을 살려 표기”하고자 함이었다. 다시 말해 표음문자를 가급적 한자와 같은 다양한 자형의 표의문자처럼 만들기 위함이었다.

본래 우리말 토속어 받침 수를 8종성법에 의한 것보다 더 많게 구상했던 최초의 인물은 세종대왕이었다. ‘훈민정음해례’ 편 18장에는 ‘곶·여ㅿ·갗’이라 하여 8종성에는 없는 ‘ㅈ·ㅿ·ㅊ’ 자도 받침에 쓰였다. 여기서의 1음절어 ‘여ㅿ(狐)’은 ‘여우’이다.

우리말 방언에선 아직도 ‘여우’를 ‘여시’ 또는 ‘여수’라고 부른다. 그 앞에 무시무시한 강조사가 덧붙어 ‘불여시’, ‘백여시’로 변모하는 ‘여시’는 ‘월인석보(1459)’ 권2가 증명하듯, 본래 ‘엿’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데 <사진>에서처럼 세종은 그 ‘엿’의 받침을 ‘ㅅ’이 아닌 반치음 ‘ㅿ’으로 기재해놓았다. 그와 달리 ‘호박엿’할 때의 ‘엿’은 지금처럼 ‘ㅅ’으로 적었다(해례 편 26장). 먹는 ‘엿’과 여우의 ‘엿’은 성조는 다르지만 그 발음은 서로 같은데, 세종께서 먹는 엿의 종성은 ‘ㅅ’으로 여우의 엿은 ‘ㅿ’으로 쓴 까닭은 무엇일까?

반치음 관련 지난 글들에서 밝힌 것처럼 ‘종성 ㅅ’과 ‘종성 ㅿ’은 혀의 위치와 모양, 발음이 완전히 같다. 세종은 그 점에 주목 및 고심했을 것이다. 귀에 들리는 ‘ㅅ, ㅿ, ㅈ, ㅊ’의 받침소리는 하나이나 눈에 보이는 공간의 여지는 둘 이상이다. ‘ㅅ’과 ‘ㅿ’ 둘 다를 활용할 수 있다면 달콤한 ‘엿’과 달콤하게 마음을 꾀는 ‘엿(여우)’, ‘갓(겨우, 방금)’과 ‘갓(가장자리)’처럼 우리말 토속어 중 동음이의어들은 자형 면에서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 같은 발상 하에, 먹는 ‘엿’은 종성을 ‘ㅅ’으로, 여우의 ‘엿’은 ‘ㅿ’으로 정했다. 아래아(•)자를 쓰는 ‘갓(방금)’은 석보상절(1447)에서처럼 ‘ㅅ’으로, ‘갓(가장자리)’은 용비어천가 68장에서처럼 ‘ㅿ’을 쓰는 것으로 정해 서로 자형을 달리했다. 그 정한 기준은 해당 1음절 단어의 2음절로의 변화 유무였다. 즉, 먹는 ‘엿’이나 ‘갓(방금)’처럼 1음절어로만 쓰여 변화가 없는 말은 받침에 치음의 기본자인 ‘ㅅ’을 썼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첫(初)’이 ‘처ㅿㅓㅁ’으로도 나타나듯, 세종 당시에 2음절어 ‘여ㅿ•(월인천강지곡 70)’도 동시에 존재했던 ‘엿(여우)’은  ‘여ㅿ•’에서 분명히 ‘ㅿ’이 드러남으로 그것과 맞추어 종성도 ‘ㅿ’을 썼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하면, 치음 종성은 ‘ㅈ’도 써야 되고 ‘ㅊ’도 살려 써야 한다. 종성의 수가 늘어날수록 훈민정음은 더 어려워진다. 숙고 끝에 세종은 백성들이 쉽게 익혀 일용에 편안하도록 귀에 들리는 발음을 기준으로, 토속어 받침은 8개자로써 족히 쓸 수 있다는 철자법을 최종 공포한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한글은 8종성법을 깨고 그 3배가 넘는 27개 받침으로써 표의문자화를 꾀했다. 쉽다면야 괜찮으나 지나치게 복잡해져 문제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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